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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2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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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띈다는 건 무언가 어색하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84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구성은 내게 낯설고 생경했다. 단선적인 시간 개념에 익숙한 내게 ‘태고의 시간들’은 하나의 서사 속에서 여러 개의 시간이 동시에 숨쉬는 세계를 들이밀었다.

이야기는 폴란드의 가상 마을 태고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이 소설은 ‘흐른다’는 표현보다 ‘넘실거린다’는 말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시간과 기억, 정체성을 짊어진 채 현실과 신화를 넘나들며 살아간다. 한 사람의 시선으로 이 세계를 단정 짓기란 불가능하다.

- 어쩌면 시간은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과거를 먼지처럼 흩어지게 해서 결국엔 돌이킬 수 없이 부서뜨리길 바라는 게 아닐까?(p.365)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원이며, 때로는 원조차도 부정하는 나선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고 여러 시간과 공간에서 바라보고 해체해본다면 삶은 또다른 방향으로 흐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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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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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눈에 띈다는 것은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아주 보기 좋거나 아주 보기 싫거나. 이 책에 눈길이 끌렸던 건 후자에 가까웠다. 보기 싫다기보다는 ‘불편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페미니즘, 미투 운동, 나이 듦, 중독, 우울증, 코로나 등 21세기 현대 사회의 문제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세상은 편리하고 좋아졌지만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악화된 지금,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뭘까.

소설은 사십대 남성 작가 오스카가 인스타그램에 오십이 넘은 여배우 레배카의 외모를 비하하는 피드를 업로드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피드를 본 레베카는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라는 제목으로 오스카에게 메일을 보낸다. 오스카는 회신을 하며 최근에 자신의 도서 홍보 담당자였던 이십대 여성 조에로부터 미투 고발을 당한 사실을 전하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한다.

왜 조에는 자신의 페미니즘 블로그에 오스카와 일하며 겪은 성추행과 부당한 해고 등의 대해 포스팅을 했어야 할까? 왜 오스카는 어릴 적 누나의 친구였고 현재는 톱스타인 레베카에게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해 항변하는 걸까. 대해 변론할까? 왜 레베카는 열 세 살부터 지금까지 마약에 중독된 걸까?

아마도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레베카는 ‘조에 카타나의 언어를 듣는 법을 배웠(p.119)’고 또한 오스카에게 ‘젊은 친구. 나는 당신 말을 듣고 있(p.110)’다고 말한다. 그녀는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p.102)’고 묻는다. 그렇다면 왜 듣지 않는 걸까. 나는 책의 후반부에서 그 이유를 찾은 것 같다.

  • 당신들 모두, 남자든 여자든 결국 종착지는 같습니다. 가장 비열한 곳으로 가죠. 그것은 극우파입니다. 진흙탕에서 살아가며 멸시받는 것을 즐기죠. 그 사람들에게는 금기가 없습니다. 실용적이죠. 그거 권력만을 원합니다. 그것 외에는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조금의 권력 말고는요.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p.388)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권력’이다. 권력자가 타인의 의견을 말살하는 순간, 사람들은 어떻게서든 그 ‘권력’을 가지려고 한다. 그것이 때로는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칼날임에도 서슴치 않는다. 혐오의 시대는 이렇게 탄생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듣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함께 울고 보듬어주는 사람들 덕에 지금 이 사회가 존속되고 있다. 개자식도 ‘친애’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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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다미 넉 장 반 타임머신 블루스 다다미 넉 장 반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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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다미 넉 장 반의 세계에 또 초대되었다. 무려 16년만에 새로 나온 ‘다다미 넉 장 반 타임머신 블루스’는 모리미 도미히코와 극작가 우에다 마코토(최근 작품은 일드 ‘시간을 달리지마, 연인들’)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우에다 마코토의 ‘썸머 타임머신 블루스’가 모리미 도미히코를 만나 다다미 넉 장 반의 세계로 들어왔다.

    ‘유쾌한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의 캐릭터들이 더운 여름, 콜라를 쏟아 망가진 리모콘을 되찾기 위해 타임머신을 탔다!’ 이런 코미디 같은 상황에서도 주인공 ‘나’와 아카시 군은 미래 세계에 영향을 미칠 과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과거에서 그렇게 애를 쓴 덕분에 미래에 조금도 영향도 주지 않는 채로 현재에 돌아왔지만, 결국 그들은 현재를 위해 과거에 무수히 노력하고 ‘결단’한다. 아,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건가.



    “모든 게 정해져 있다는 말이군.”
    “만약 미래에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그 사실은 당연히 그 책에 쓰여 있을 거예요. 그럼 타임머신이 일으킬 사태도 마찬가지로 책에 쓰여 있죠. 그러니까 ‘과거를 바꿀 수 없다’란 건 엄밀히 말하면 다를지도 몰라요. 모두 이미 일어난 거예요. 바꾼다, 바꾸지 않는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하지만 그래선 미래에 자유가 전혀 없는 것처럼 들리는데.”
    “우리는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면 뭐든 할 수 있어요. 그럼 자유가 있는 게 되지 않을까요?” (p.202)



    과거에서 미래인 ‘현재’에 살고 있으니 우리는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며 살아간다. 그럼 지금 현재가 과거인 미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그 답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 비채 서포터즈 3기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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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다다미 넉 장 반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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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정말 엄청나다. 다다미 넉 장 반으로 이런 스토리를, 이런 멀티버스를 표현해내다니 상상 그 이상이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것은 난 여전히 선입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는 거다. 왜냐하면 이 책의 겉표지를 보자마자 ‘아하, 서포터즈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이 책 읽고 싶지 않은데…’라는 생각이었으니까.

    책이나 영화, 음악을 감상할 때 관련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읽고 보고 듣고난 후 나의 감상은 대게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게 이런 의미였어?’하며 놀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 역시 그랬다. 작가 소개에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다는 것도 쓰여 있었는데 난 알고도 왜 이렇게 이 책을 얕잡아본걸까. 반성 또 반성.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는 2008년에 출간된 소설로 앞서 말했듯 이미 TV 애니메이션으로 나올만큼 굉장히 인기 있는 작품의 원작 소설이다. 대학교 3학년인 주인공 ‘나’는 지난 2년 간의 대학 생활을 허송세월로 보낸 것을 한탄하며 새내기 때 다른 동아리에 들어갔다면 더 유익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며 작금의 상황을 후회한다. 총 4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저마다 비슷한 듯 시작하지만 각기 다른 동아리에 들어간 주인공 ‘나’의 대학 생활을 보여준다. 다른 선택을 했지만 ‘나’라는 사람이 달라진 게 아니기 때문에 동일한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달라지게는 없는 걸까?

    • 허나 나는 깨달았다. 아주 작은 결단의 차이로 나의 운명은 변화한다. 나는 매일 무수한 결단을 내리니 무수한 다른 운명이 생겨난다. 무수한 내가 생겨난다. 무수한 다다미 넉 장 반이 생겨난다. (p.364)

    그러니 다른 동아리를 선택했다는 걸로만은 나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나의 ‘결단’,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삶을 달라지게 하는 힘이 아닐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의 명장면을 봤다.

    나 : 전 자기의 가능성을 믿고 여기까지 왔어요. 어떻게든 잘 해 왔지만 왠지 마음이 추워요. 제가 선택해야 할 것은 좀 더 다른 가능성이었을지도, 1학년 때 선택을 잘못했을지도 몰라요.
    히구치 : ‘가능성’이라는 말을 무한정으로 써서는 안 돼. 자네는 바니걸이 될 수 있나? 파일럿이 될 수 있나? 아이돌 가수가 필살기로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될 수 있나?
    나 : 될 수 없어요.
    히구치 : 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있지도 않는 것에 눈을 빼앗겨서는 아무것도 안 돼. 자기의 다른 가능성이라고 하는 의지가 안 되는 것에 희망을 맡기는 게 모든 악의 근원이지. 지금 여기에 있는 자네 이외 다른 누구도 될 수 없는 자기를 인정해야만 하지. 자네가 유익한 학생 생활을 만낄할 수 있을 리 없어. 내가 보증할테니 진득하게 지내도록 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보다는 지금의 선택에 나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럼 다른 다다미 넉 장 반의 세계가 열릴지도 모른다.

    • 비채 서포터즈 3기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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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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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동물원 사육 동물들의 탈출 속보나 겨울철 먹잇감을 찾아 민가를 습격한 야생 동물의 출몰 소식을 뉴스로 접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장 먼저 동물을 위협의 대상으로 인지한다. 그러다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줄어들었다는 기사를 보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한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는 늘 교만한다.

      나스탸샤 마르탱은 프랑스 인류학자로 러시아 극동의 캄차카 반도의 선주민인 에벤인에 대해 연구하며 그곳에 머물던 어느 날, 산에서 곰을 마주한다. 곰의 습격으로 머리를, 턱을, 다리를 크게 다쳤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여기서 ‘살아남았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는 그녀를 곰의 습격을 받은 가여운 사람으로 바라보고, 또 누군가는 바이러스(곰) 감염자로, 누군가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녀를 정의할 수 없다. 그녀는 곰과의 만남으로 인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고 인간도, 곰도 아닌 그 경계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일들을, 그때의 감정을 쏟아내듯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은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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