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서 앤더 시티 - 마리사 아코첼라 마르케토의 실제 이야기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마리사 아코첼라 마르케토 글.그림 / 세미콜론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책에 대한 첫 느낌]

유방암을 극복한 뉴욕 잇걸('it' girl)을 다룬 책을 남자가 읽는다는 것이 처음에는 다소 불편했다. 보편적 가치가 많이 작용하는 만화라는 장르가 남녀 구분법 사고를 많이 희석시켜주긴 했지만, 다루고 있는 소재는 평생 경험할 수 없는 내용이라 생뚱맞은 느낌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 난제를 극복하게 한 것은 ‘책’이라는 매체가 갖는 힘이었다. 책이라면 사두고 보는 습성과 ‘어떤 책이라도 나의 삶과 무관한 책은 없다‘는 평소의 소신이 암에 대한 호기심에 더해져 드디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즐거운 일이었다.

[책을 처음 펴고 30페이지 가량 읽고 난 후의 감상]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만화라는 장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 글이 춤을 추고 만화가 실감났다. 글이 만화이고 만화가 움직이는 글이었다. 참으로 묘한 인상을 받았다. 이런 느낌을 갖게 된 데는 소민영씨의 탁월한 번역이 큰 역할을 하였다. 큰 박수를 보낸다. 보통 만화라면 앉은 자리에서 금방 다 읽는 것이 예사인데 이 책은 ‘만화책’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도 힘들 정도로 책을 읽는 것과 같은 정도의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했다는 점 또한 한번 읽고 나면 그만인 가벼운 책은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책을 이끄는 인물과 인물들]

주인공 마리사는 만화작가로서 여러 출판사에 자신의 만화를 팔면서 살아가는 직업여성이다. 뉴욕의 유행을 선도하는 ‘잇 걸’로서 당당하고 자신에 찬 여성이다. 그러나 야하고 무뇌적인 인간일 뿐인 화려한 족속과 명품족인 자신과는 철저히 차별한다. 진실, 선, 개성과 부도덕, 불성실, 거짓을 구분할 줄 아는 멋진 여성이다. 처음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실과 더 이상 여성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고 약속한 결혼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원망이 그녀를 사로잡는다. 여느 여성처럼 낙담하고 실망하고 원망하는 그녀가 너무도 인간적이라서 좋았다.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 결혼을 약속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경영자인 실바노 역시 너무도 멋진 남성이다. 그에게 치근대는 뭇여성을 마다하고 마리사와 결혼하기로 한 실바노는 마리사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에도 전혀 애정이 식지 않았고, 오히려 더 따뜻하게 자신의 진실과 사랑을 보여주었다. 또한 마리아가 실수로 들지 못했던 의료보험으로 엄청난 비용을 부담하게 되자 자신이 돈을 감당할테니 건강에만 신경을 쏟아라는 그의 여유로움이 한편으로 부럽고 돈이 여유와 행복을 만들구나 라는 자본주의의 일면을 생각하고 약간 씁씁하였다. 이 책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인물이 한명 있다. 마리사의 엄마이다. 그녀의 호들갑과 딸에 대한 애정은 과히 한국의 극성적인 어머니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녀의 분주함과 엉성함이 세상 어디에나 있었으면 좋은 엄마의 성격으로 비쳤다. 엄숙하고 자애로운 엄마의 상이 사람을 어느 정도 질식하게 한다면 마리사의 엄마는 자녀에게 자유와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가벼움이 때로는 인생의 진수가 아닐까 싶다. 그 외 많은 베프(Best Friends)와 가족들은 여러 모습, 여러 성격, 여러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료와 가족을 사랑하고 배려해 준다는 점에서 너무도 행복한 시티의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만나서 그들의 생활과 생각을 엿볼 수 있었던 것만 해도 책읽기 시간이 너무 보람되었다.

[책을 끝내고 난 후]

무릇 책이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책 속 등장인물들의 삶이 나의 삶과 결코 무관할 수 없는 것은 그들도 나와 같이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한 생명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생존 이유가 어떤 경우라도 활자라는 매개물을 통해서 읽는 이의 마음을 울려 어떤 형식이든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이번 마리사의 암 투병기를 다룬 ‘캔서 앤더 시티’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인간적인 고민, 희망, 사랑, 관계의 모든 면을 다 보여준 훌륭한 책이었다. 우리나라 만화가들도 세계에 내놔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난 그들도 이보다 더 훌륭한 울림이 있는 만화를 그려 세계 사람들이 공감하고 즐겨 읽는 책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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