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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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신문에서 처음 만났다. 한겨레 ESC 섹션의 에세이를 쓰는 사람으로.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라는 제목의 에세이 속 주인공이 바로 그다. 정말 신기한 사람이다. 직장에서 받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야식으로 해결하려 한 나머지 다이어트라는 또다른 역풍을 맞는 와중에도 매일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씻고 나와 회사 근처 카페에서 아침 8시 55분까지 글을 쓰고 출근을 했던 사람. 정말 신기하지 않나. ‘나태하지만, 동시에 무섭게 성실한 사람’ 이란 표현이 이보다 더 딱 들어맞는 경우가 또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퍽이나 곤란해하며. ‘나는 성실하지도 않으며 내 생활은 건강하지 않다’고 적었다.

“나는 다 쓴 치약을 쥐어짜듯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뿐,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매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작가가 되었고, 책을 가지게 되었고, 내 글을 실을 작은 지면을 얻을 수 있었으나 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거나 나의 일상을 가꾸는 방법, 내가 나를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믿음을 완벽하게 잃어버렸다.”

이 글을 읽은 후, 더욱 그가 마음에 들었다. 해서 지금까지 잊지 않고 꼬박 챙겨 읽고 있다. 그의 글이 실리는 날은 강원국, 김보통의 글도 함께 실리는지라 기다리고 찾아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이쯤해서 책 이야기.
고백하자면, 난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없다. 신문에 연재하는 글로 사람 박상영은 익숙한데, 소설가 박상영은 처음인지라...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받은 <대도시의 사랑법>에 수록된 <재희>를 읽은 후 적잖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기억이 맞다면, 청첩장과 관련된 그의 글에서 <재희>가 언급된 적이 있다. 자신은 자발적 비혼자이나, 가까운 친구들의 결혼은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종종 사회를 보거나 축가를 부르기도 하는데(소설 속에서, ‘영’이 축하를 부르는 장면, 정말이지 웃겨 죽는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단편소설을 썼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재희>였던 것. 굳이 적자면 퀴어소설, 퀴어문학이다.

어디까지가 작가의 경험일까. <재희>를 읽는 내내, 읽고 난 후에도 나는 그게 그렇게 궁금하더라. 그런데 내 안에 동동 떠있던 뭔가 호들갑스럽던 물음을 걷어내자, 한심하고 처량한 기분이 들고 말았다. 부글거리는 거품만 걷어냈을 뿐인데 내용물이 반 이상 사라져버린 냄비를 들여다 봤을 때 드는 감정과 비슷하다면 웃긴가.

‘성소수자 문제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서 꼭 이야기되어야 할, 더 이상 나중으로 미룰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몸 사리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작품도 점점 그렇게 쓰려고 노력 중이며, 피해가지 않’겠다는 작가의 다부진 말에 뜨끔한 면도 없지 않지만...

이제는 알지 않나. 사랑의 스펙터클한 스펙트럼을. 저마다 속과 결이 다른 사랑을 알기에 그 사랑들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여름 밤, 나의 아름다운 도시, 어쩌면 너 때문에.”

하지만...

“모든 아름다움이라고 명명되는 시절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재희는, 이제 이곳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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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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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G. 제발트.

낯설지만 기대감이 컸다. 새로운 존재에 대한 쓸데없이 왕성한 호기심을 마음껏 적었더랬다. 해서 받게 된 책. 특이하게 스케치 노트도 함께 왔는데, 둘째 녀석에게 넘길까 하다가 내 것으로 고이 남겨뒀다. 그 시절 그때처럼, 그림을 한 번 그려봐야지 생각했다.

낯설고도 낯선 이름이다. 그런데 옮긴이는 적었다. 현재 가장 많이 토론되고 있는 독일작가라고. 도대체누가, 어디에서? 막 이랬다. 주체가 빠졌으니 온당치 않은 말이라고 삐딱하고 건방지게 생각했다. 돌아보니 책을 쫌(헙!!) 읽는다 자부했던 나의 자존심을 슬쩍 건드렸다 여긴 모양으로, 이에 대한 혼자만의 소심한 응징이 아니었나 싶다. 아, 부끄럽고 민망하다. 어쩌랴, 그게 나인 걸.

읽기 시작.
가만 있어봐. 누가 말하는 거야, 생각이야, 말이야. 실존 인물인지, 가공한 인물인지. 역사적 사실인지, 허구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문단 구분도 없고, 그저 줄줄줄 이어지는 문장, 문장들. 도레미’파’ 정도의 음조로 담담하게 이어지는 글을 쫓으려니 꽤나 힘들었다.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려 ‘솔’음으로 소리내 읽기도 했지만 솔직히 몇 번 졸기도 했다.

시종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울지도 웃지도 않고, 크게 감탄하지도 실망하지도 않는, 감정 변화가 거의 없는,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화자는 나지막이 읊조린다. 걸으며 보이는 풍경, 떠오르는 사람, 그곳의 역사, 사물 등에 대해서. 듣고 흘려버려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툴툴거렸는데, 어느 순간 행여 한 단어라도 놓칠까 그의 곁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쫑긋 귀를 세우고 있는 나를 보고 말았다.

어떤 책이든 어렵사리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아하! 하며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이 <토성의 고리>역시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른채 그저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소설의 중반에 이르자 훅! 하고 홀라당 넘어가고 만 것.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어느 순간 온몸이 흠뻑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행색이랄까.

화자가 만난 작가 마이클 햄버거. 그는 일찍이 고국 독일을 떠나 영국에 정착한 작가다. 어느 날, 그는 고향 도시를 찾고 그곳에서 ‘뜻밖에도 온전히 남아 있는’ 자신이 살았던 집과 마주한다. 이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에피소드임에도 나는 꽤나 후들거렸다. 몇 년 전, 나의 경험과 정확히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도 그랬다. 내가 살던 집을 올려다보며 ‘내가 어떤 수수께끼를 올바로 풀어내기만 하면’ 우리가 그 집을 ‘떠난 뒤에 일어난 전대미문의 사건들을 되돌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치 이제 모든 일이 내게 달린 것처럼, 정신을 약간만 집중하면 그간의 일 전체를 철회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었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아빠와 언니가 예전처럼 우리 곁에 살고 있을 듯했다. ‘한순간만 매우 집중하면, 수수께끼에 숨겨진 핵심 단어의 음절들을 조합해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예전으로 되돌아갈 것’만 같았는데... 그랬었다. 조금 슬펐던가. 잘 모르겠다. 하긴 이제와서 어쩌자고. 잊혀진 것인지, 잊어간 것인지도 모를 희미해진 기억을 애써 떠올릴 필요는 없다 생각했다. ‘이미 모든 시간이 지나갔으며, 우리의 삶이란 돌이킬 수 없는 과정의 여운이 비치는 것일 따름’인 것이기에.


W.G. 제발트.

낯설지만 기대감이 컸다. 새로운 존재에 대한 쓸데없이 왕성한 호기심을 마음껏 적었더랬다. 해서 받게 된 책. 특이하게 스케치 노트도 함께 왔는데, 둘째 녀석에게 넘길까 하다가 내 것으로 고이 남겨뒀다. 그 시절 그때처럼, 그림을 한 번 그려봐야지 생각했다.

낯설고도 낯선 이름이다. 그런데 옮긴이는 적었다. 현재 가장 많이 토론되고 있는 독일작가라고. 도대체누가, 어디에서? 막 이랬다. 주체가 빠졌으니 온당치 않은 말이라고 삐딱하고 건방지게 생각했다. 돌아보니 책을 쫌(헙!!) 읽는다 자부했던 나의 자존심을 슬쩍 건드렸다 여긴 모양으로, 이에 대한 혼자만의 소심한 응징이 아니었나 싶다. 아, 부끄럽고 민망하다. 어쩌랴, 그게 나인 걸.

읽기 시작.
가만 있어봐. 누가 말하는 거야, 생각이야, 말이야. 실존 인물인지, 가공한 인물인지. 역사적 사실인지, 허구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문단 구분도 없고, 그저 줄줄줄 이어지는 문장, 문장들. 도레미’파’ 정도의 음조로 담담하게 이어지는 글을 쫓으려니 꽤나 힘들었다.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려 ‘솔’음으로 소리내 읽기도 했지만 솔직히 몇 번 졸기도 했다.

시종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울지도 웃지도 않고, 크게 감탄하지도 실망하지도 않는, 감정 변화가 거의 없는,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화자는 나지막이 읊조린다. 걸으며 보이는 풍경, 떠오르는 사람, 그곳의 역사, 사물 등에 대해서. 듣고 흘려버려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툴툴거렸는데, 어느 순간 행여 한 단어라도 놓칠까 그의 곁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쫑긋 귀를 세우고 있는 나를 보고 말았다.

어떤 책이든 어렵사리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아하! 하며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이 <토성의 고리>역시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른채 그저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소설의 중반에 이르자 훅! 하고 홀라당 넘어가고 만 것.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어느 순간 온몸이 흠뻑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행색이랄까.

화자가 만난 작가 마이클 햄버거. 그는 일찍이 고국 독일을 떠나 영국에 정착한 작가다. 어느 날, 그는 고향 도시를 찾고 그곳에서 ‘뜻밖에도 온전히 남아 있는’ 자신이 살았던 집과 마주한다. 이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에피소드임에도 나는 꽤나 후들거렸다. 몇 년 전, 나의 경험과 정확히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도 그랬다. 내가 살던 집을 올려다보며 ‘내가 어떤 수수께끼를 올바로 풀어내기만 하면’ 우리가 그 집을 ‘떠난 뒤에 일어난 전대미문의 사건들을 되돌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치 이제 모든 일이 내게 달린 것처럼, 정신을 약간만 집중하면 그간의 일 전체를 철회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었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아빠와 언니가 예전처럼 우리 곁에 살고 있을 듯했다. ‘한순간만 매우 집중하면, 수수께끼에 숨겨진 핵심 단어의 음절들을 조합해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예전으로 되돌아갈 것’만 같았는데... 그랬었다. 조금 슬펐던가. 잘 모르겠다. 하긴 이제와서 어쩌자고. 잊혀진 것인지, 잊어간 것인지도 모를 희미해진 기억을 애써 떠올릴 필요는 없다 생각했다. ‘이미 모든 시간이 지나갔으며, 우리의 삶이란 돌이킬 수 없는 과정의 여운이 비치는 것일 따름’인 것이기에.

“햇빛과 그것이 저물던 모습....
마음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때 이런 기억의 파편이 떠오르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기억을 되살려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론 실제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 많은 건물이 무너졌고, 너무 많은 잔해가 그 위에 쌓였으며, 퇴적물과 빙퇴석 또한 극복할 수 없다.” (208쪽)

작품을 관통하는 어떤 정서가 있는데, (용기내어) 거칠게 단순화시켜 그것을 ‘덧없음’ 으로 적어본다. 앞에서 잠깐 얘기한 작가가 취한 글감의 사실 여부는 하등 중요하지 않구나 여겨지는 지점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하리’ 라는 식의 현실을 달관 혹은 초월한 듯한 냉소적인 면모가 강하다고 할까.

밑줄을 긋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일부분을 발췌해본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들의 불가시성과 불가해함, 이것은 우리의 세계란 다른 세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28쪽)

“인생이란 좋든 싫든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연기해야 하는 희비극 - 꿈은 많고 행복의 빛은 드물며, 약간의 분노에 환멸이 더해지고, 고통의 세월 뒤에 끝이 오는 것이지요.” (141쪽)

“케이스먼트의 동성애가 그에게 사회계급과 인종의 벽을 넘어서 권력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억압과 착취, 노예화와 불구화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주었다는 것이다.” (161쪽)

“역사란 해변으로 거듭 몰려오는 파도처럼 우리를 덮치는 불운과 시험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니 지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날 가운데 어느 한순간도 진정으로 근심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래는 오로지 우리가 현재 지닌 두려움과 희망의 형태로만 현실성을 지니며, 과거는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182쪽)

“고등식물의 목탄화, 모든 가연성 물질의 지속적인 연소는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을 확산시키는 동력이다.연소는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사물의 내적 원리다. 우리가 고안해낸 기계들은 우리의 신체나 우리의 동경처럼 서서히 작열하는 심장을 갖고 있다. 인간 문명 전체는 애당초부터 매시간 더 강렬해질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서서히 사그라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장은 우리의 도시들이 빛을 발하고, 아직은 불이 번져간다.” (199쪽)

옮긴이는 작품 속 화자가 ‘진지한 비가적 어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끊임없이 ‘파괴의 현장’을 만난다. ‘파괴에 대한 백과사전적 인식을 보여준다’고 할 정도니 그의 슬픔이 쉽게 잦아 들리 만무하다.

“역사의 과정에서 파괴된 채 잊혀가는 것들을 복원해내고 우리 앞에 드러내는 것이 그가 소설에서 해내고자 하는 작업이다. 이런 그의 시선은 비단 유대인이나 노예화된 민족, 제국주의의 희생자, 문명의 흐름에서 비켜난 삶을 살아간 아웃사이더 등의 인간집단에만 머무르지 않고, 갑작스런 병의 확산으로 파괴된 느릅나무 숲, 버려진 공장, 몰락하는 도시, 대규모의 산업적 규모로 살해된 청어와 누에, 나아가 사라지고 잊힌 과거의 텍스트 들까지 아우르고 있어 가히 파괴에 대한 백과사전적 인식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348쪽)

파괴의 현장을 제 발로 찾는 작가(화자, 그 구분이 사실 무의미하다.)의 속내가 궁금하다.작가는 오늘날 계몽과 진보,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찬란한 기념비적’ 성과들이 그것이 낳은 파괴의 지점에서부터 성찰되고 재해석되어야 함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것으로 마무리하기엔 또 찜찜하다. 그 파괴의 현장은 결국 몰락의 현장. 그곳에서 화자는 슬픔은 물론 ‘지상의 모든 것의 덧없음’을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둘을 어떻게든 한데 잘 엮어 이 책의 주제는... 하고 명쾌하게 정리하고 싶은 마음을 ‘관성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으려나. ‘관성의 법칙’이란 과학용어가 나오니 순간 뇌리를 스치는 ‘로슈한계’ 맨 앞 토성의 고리에 대해 작가가 인용한 부분에 나온다.
다시 처음으로!
제목이 <토성의 고리>
왜 제목을 ‘토성의 고리’라 했을까. 작가가 인용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본다.

토성의 고리는 적도 둘레를 원형궤도에 따라 공전하는 얼음결정과, 짐작건대 유성체의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과거에 토성의 달이었던 것이 행성에 너무 가까이 위치하여 그 기조력으로 파괴된 결과 남게 된 파편들인 것으로 짐작된다. (로슈한계 : 위성이 모행성의 기조력에 부서지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한계거리)

흠.
일단 생각나는 대로 막 적어본다.
토성은 자신이 갖고 있던 달을 파괴했다. 그런데 그 파편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파편들은 토성을 감싸 돌고 있다. 희한하게도 그로 인해 토성은 더욱더 개성있고 독자적인 존재가 되어 있다.

이런! 더더욱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개미지옥같은 ‘토성의 고리’라니!!!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아주 흐릿하게만 기억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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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2 세트 - 전2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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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이 발간된 1993년. 그로부터 26년의 시간이 흘렀다. 일본편을 4권으로 마무리해 나온지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중국편까지.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만 있느냐, 것도 아니다. 막대한 사료와 막강한 입담으로 추사를 재조명한 <추사 김정희>가 나온 것도 불과 일년 전. 이쯤되니 유홍준 이 양반, 정체가 의심스럽다. 사람이 아닐 수도! 인공지능이 소설도 쓴다는 요즘, ‘합리적 의심’이라 말하기에 충분하지 싶다.

그의 정체가 무엇이든,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점점 더 이야기가 재미를 더해간다는 것. <추사 김정희>를 인상 깊게 읽은 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부터 차례로 틈틈이 읽어나가는 요즘, 필독서로 그저 읽어내기에 급급했던 학창시절에는 1도 느끼지 못했던 감흥으로 희희낙락하고 있다. 나이가 일정 궤도에 올랐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무언가가 분명 있는 것이다. 가히 나이듦의 축복이라 할 만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중국편> 사전 서평단 신청을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믿고 보는 유홍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일단 2편으로 마무리 되었으나 어디까지나 시작이라고 본다. 중국이지 않은가. ‘역사가 무려 3천년. 게다가 면적은 한반도의 약 40배, 남한의 약 100배 크기이고 인구는 남북한의 약 20배’에 달하는, 중국. 그가 왜 하필 이 넓고 넓은 대륙의 많고 많은 유적지 중 ‘돈황, 실크로드’를 중국 답사 일번지로 삼았을까 의문이 든 것은 찰나였을 뿐. 솔직히 내겐 아무 의미 없다. 그곳이 어디든, 지금처럼 입을 헤 벌리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감탄을 연발하며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갈 것임에 틀림없기에.

사실, 처음에는 꽤나 속상했다. 실크로드. 달랑 4글자만 머릿속에 남아있을 뿐, 그것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는 현실이라니! ‘김정희 - 추사체’ 반사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오지만, 떠오르는 작품 하나가 없음을 알아챘던 <추사 김정희>를 읽었던 그때와 비슷한 심경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요만큼이라도, 알고 있어서 지금에 이르러 더 잘 보이고, 들리고, 이해하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다시 또 새롭게 알게 되는 기쁨의 힘이 제법 세긴 했다.

본래 안다는 것은 지적 희열을 동반한다. 안다는 것도 전혀 모르던 것을 새로 알게 될 때보다 대충 알던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을 때 더 기쁘고, 꼭 알 필요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숙제를 끝낸 것 같은 후련함이 있다. 이럴 때면 공부보다 재미있는 것은 없다. (1권, 324쪽)

1권에는 서안에서 하서회랑을 거쳐 돈황 명사산에 이르기까지가 실렸다. 나는 ‘맥적산석굴’을 단연 1위로 꼽겠다. 80미터 높이에 달하는 벼랑에 4세기부터 천년을 두고 굴착된 석굴사원이라니! 211개의 석굴과 그 속 7천 8백의 불상이 존재하는 곳. 특히 중국 불교미술의 제1차 전성기라 일컫는 북위시대에 대대적으로 조영되어, 맥적산석굴의 반이 북위시대 석굴이지만 ‘동양의 조각관’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각 시대마다 조영된 많은 불상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에 기대 각양각색 불상 사진을 보며 어느 시대의 불상인지 추측해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북위시대 불상들은 처음에는 서역 양식에 의지하다가 점차 벗어나 마침내는 중국 불상으로 토착화되었다. 그래서 북위시대 불상을 보면 부처님의 얼굴이 서역이 아니라 중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고, 법의도 남쪽 인도의 얇은 사라를 걸친 편단우견이 아니라 북부 중국의 기후에 맞는 두툼한 옷을 양 어깨에 통으로 걸치고 있으며 옷자락의 주름이 겹겹이 흘러내린다. 신체는 이 시대의 미인관에 따라 호리호리한 편이고 목이 굳센 듯 길고 얼굴에는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래서 중국미술가들은 북위시대 불상을 일컬어 수골청상이라는 표현을 쓴다. 빼어난 몸매에 해맑은 인상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이는 중국 불교미술의 제2차 전성기인 당나라 시대의 불상이 풍만하고 역강한 육체미를 자랑하는 것과 크게 구별된다. 북위 불상에 소박하고 진솔한 고졸미가 있고 당나라 불상엔 화려하고 역동적인 사실미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나라 불상에는 절대자(부처)의 위엄이 강조된 반면 북위시대 불상엔 절대자의 친절성이 나타나 있는 점이다.” (1권, 116~117쪽)

사진으로 보는 맥적산 전경도 기가 막힌데, 잔도에 이르러서는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사람이 다닐 수 없는 벼랑에 선반을 매듯 인공 오솔길을 만들어 절벽 전체를 석굴로 굴착한 중국인의 슬기와 정교한 토목기술이 낳은 실로 위대한 문화 유산이다.

생애 최초 영접한 석굴사원인 맥적산석굴의 첫 인상이 워낙 강렬했기에 뒤에 이어지는 병령사 석굴, 심지어 2권의 막고굴조차 크게 와닿지 않았다. 물론 석굴 그 자체가 주는 느낌에 한해서라는 점. 소심하게 밝혀둔다.

2권은 대망의 막고굴. 막고굴을 두차례에 걸쳐 답사한 감상기가 실렸다. 그 유명한 돈황문서에 얽힌 이야기가 2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무엇보다 2권에서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막고굴 제45굴 속 성당시대의 보살상. 1권에서 시대별 불상을 두루 살펴본 경험이 톡톡한 역할을 했을 터다. 저자가 서양의 비너스상에 비견하며, 아주 생생하고 섬세하게 묘사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 본다. 저자의 미술학도 면모가 여실없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고귀한 풍모의 보살상은 가벼운 트리방가로 우아한 자태를 자랑한다. 아름다운 얼굴과 하얀 피부가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복스럽게 살진 몸매를 한 보살상의 하반신에는 화려한 빛깔의 얇은 치마가 바지처럼 두 갈래로 드리워져 있고, 물에 젖은 옷주름이 다리에 밀착되어 몸매를 은근히 드러낸다. 붉은 천의자락과 금목걸이만 걸쳐진 상반신은 배꼽까지 맨살이 드러나 있어 육감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보살상의 표정을 보고 누군가는 “웃는가 하면 웃지 않고, 기뻐하는가 하면 기뻐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다양한 심리가 응축되어 있다”고 했다. 이상적인 여인상으로서 보살상의 모습이다. 중국의 불상조각은 여기에서 클라이막스를 이루었다는 느낌이다.” (2권, 96쪽)

돈황의 석굴을 둘러본 후, 나 역시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석굴이 없을까 생각했다. 약간의 문화적 열등감을 속에 담은 채. 저자는 기다렸다는 듯, 시원하게 대답을 쏟아낸다. 하나씩 짚어가며 조목조목 설명해주는 것은 기본이요, 결론에 이르면 그보다 더 명쾌한 답은 없지 싶다. 유쾌함을 넘어서는 통쾌함까지 느껴지는 일갈이 아닐 수 없다. (1권, 138쪽~141쪽) 이왕이면 앞으로 돌아가 ‘중국 답사기를 시작하며’ 글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는 것도 좋다. 저자가 콕 집어주는 대로 중국 문화를 보는 시각을 재설정 할 수 있다면, 우리 문화 유산의 진정한 가치와 자랑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됨은 물론 서로 다른 자연과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한 ‘다름’을 그 어떤 열패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중국은 우리와 함께 동아시아 문화를 주도해나가는 동반자일 뿐 아니라 여전히 우리 민족의 운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막강한 이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중국을 더욱 깊이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의 감동적인 체험과 견문, 그리고 다방면에서 얻은 유익한 정보들을 생생히 담고 있는 이 책은 그것의 단초가 되기에 충분하다.

“나의 중국행은 언제나 즐거운 여행의 놀이터이자 중국 역사와 문화의 학습장이면서 동시에 우리 문화의 특질을 동아시아의 지평에서 재인식하는 현장이었으며, 나아가서 오늘날 국제사회 속에서 우리의 좌표를 생각게 하는 세계사의 무대였다. 내가 중국 답사기를 쓴 소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중국편 1,2>
중국, 그 왕년의 누부신 실력이 촤르륵 펼쳐진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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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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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레몬> 사전 서평단에 선정되었다. 권여선 작가를 향한 무한 사랑을 피력한 글을 써 보낸 기억이 떠올라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밤에 쓴 연애 편지를 아침에 읽었을 때의 느낌, 딱 그거다.

모집 공지 글을 자세히 살피고 읽었어야 했는데, 나 또한 출간될 책의 ‘일부’ 내용만이 담긴 얇은 가제본 책을 받아 들고 적잖이 놀랐다. 나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나 보다. 책과 함께 온 안내문을 읽어보니 활동 내용이 바뀌었다. 서평 쓰기에서 기대평 쓰기.

톡 까놓고, 개인적 기대평은 사실 쓸 것도 없다. 내겐 권.여.선. 이름 석사만으로 충분하다. 잘 마시지도 못하지만, 술 생각이 간절해지는 이름이기도 하다. 권여선, 술을 부르는 존재. 우리의 강렬했던 첫만남 <사랑을 믿다>에서도 술이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고, ‘주류(酒類) 문학의 위엄’이라고 일컬어지는 <안녕 주정뱅이>는 말해 무엇하리. 더구나 <오늘, 뭐 먹지?>는 ‘음식’ 산문을 가장한 ‘안주’ 산문집. 먹고 마시는 이야기가 한 상 가득 차려진다. 해서 그의 작품을 읽을 때는 커피 대신 술이 제격. 이왕이면 소주. 맑고 투명한, 알맞게 채워져 찰랑거리는 소주 한 잔이면 딱 좋다. 곁에 두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차차!
<레몬> 이야기를 해야지. 이번에 새로 나온 장편 소설이다. 순식간에 읽었다. 소설의 극히 일부만이 담긴 가제본이기에 양적인 한계가 있지만, 강한 흡입력은 절대 무시 못한다. ‘그 일부를 절묘하게 잘도 뽑아냈군’ 하며 마케터 능력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이내 머릿속을 떠다니는 온갖 물음표들로 고구마 백 만개는 먹은 듯한 답답함에 정말이지 미치는 줄 알았다. 해서 한동안 애써 외면했다. 보면 읽게 되고, 읽으면 궁금해지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벌써 오늘. 마감일은 이미 지났고, 책도 서점에 출간이 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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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랫동안 열리지 않던 문이 열리고 노란 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듯했다. 노란천사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레몬, 이라고 나는 의미 없이 중얼거렸다. 복수의 주문처럼, 레몬, 레몬, 레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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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저러나 술이 단 한 방울도 안 나오는 소설을 쓰겠노라 술김에 다짐한 작가가, 고생을 바가지로 하며 썼다는 작품이 혹시 이 소설일까. 관건은 마지막 장면. 주인공이 술집에 들어가긴 했으나 밥만 먹고 나오는 장면으로 가까스로 마감했다고 했다. 고구마 백 만개가 더 얹혀지고 말았다. 당장 서점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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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 의사 아빠의 안전한 육아
김현종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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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만으로 책의 거의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응급의학과 의사 아빠. 자신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 곳곳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안전 사고에 대한 상식은 물론 위급시 보호자가 취할 수 있는 행동 지침이 담겨 있겠다.

“이 책을 통해서 저는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다쳐서 병원에 오는지, 그렇게 병원에 오면 어떤 치료를 받게 되는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도 아이들이 가급적 다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예방을 할 수 있을지,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10쪽)

8살 터울의 오누이를 키우고 있다. 고백한다. 내 안에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시건방진 마음이 떡 하니 자리잡고 있음을. 그래서 처음에는 건성건성 휘리리릭 읽고 덮었다. 일침을 가한 건 첫째다. “그렇게 대충하면 안 돼!” 어느 날,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둘째가 카시트를 완강히 거부하는 거다.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며 그냥 품에 안았다. 그랬더니 첫째가 내게 한 말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녀석에게 냅다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알아서 해!” 알아서 하기는 개뿔. 나는 도착할 때까지 둘째를 안고 있었다. 이 무슨! 자존심 아니 똥고집도 부려야 할 때 부려야지 말이다. ‘아이를 안고 차를 타는 동안 사고가 나면 아이는 어른의 에어백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랬다.

“아이의 안전 습관을 만드는 일은 타협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봅시다. 정말 ‘아이가’ 힘들어해서 카시트를 ‘못 쓰고’ 있나요? 혹시 아이가 아직 적응을 못해 보채고 우는 것을 보는 ‘내가’ 힘들고 귀찮아서 ‘안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103쪽)

그날 밤,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앎과 삶의 일치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 법. 개인의 각성은 물론 각고의 노력에 더해 제3의 눈, 감시자가 있다면 완벽한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진 셈인데, 요즘 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예전에 비해 몇 배는 강력한 눈빛으로 나를 관리 감독하려 드는 큰 녀석 때문(덕분)에 ‘안전한 육아’ 영역에서 만큼은 앎과 삶의 일치를 구현하고 있다.

책은 안전 육아를 기치로 일상 곳곳의 상황을 제시하며 이미 알고 있지만 안 하고 있는 것,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들을 조목조목 알려 준다. 어르고 달래듯 조근조근 친절하게, 나즈막이 타이르기도, 단호하고 엄중하게 경고하기도, 막 고레고레 고함을 지르며 혼내기도 한다. (느낌표를 찾으면 된다.)

그동안 미처 몰랐기에 평소에 놓치거나 챙기지 못한 부분을 알게 되고 보완할 수 있었던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카시트

“대부분의 카시트는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고, 햇볕에 노출되는 일이 많아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강도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회사마다 좀 차이는 있지만 대략 5~6년 이상 사용하지 않도록 권하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사고 이력’이 없는 카시트인지 꼭 물어보세요. 사고로 충격 받은 적이 있는 카시트라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보호 능력이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105쪽)

나이와 체중에 맞는 카시트를 사용했다 자부했다. 허나 중고사이트와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카시트였다. 사고 이력은커녕 얼마나 썼는지도 물어보지 않았다. 마침 주니어 카시트로 바꿀 시기라 완전 유용.

#119

“119의 주요 업무는 아니지만 급한 경우 구급 요원에게 간단한 의학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할 경우, 지역에 따라서는 구급대원들과 함께 일하는 ‘지도의사’라는 분들과 통화하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상담 결과 상황이 급박하다면 바로 구급대 출동을 요청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119의 주 업무가 ‘상담’은 아니니 일반적인 의학 상담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192쪽)

“119는 세금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돈을 내지는 않습니다. 간혹 남용하는 분들이 있어서 문제가 되지만, 아이가 아파 119를 부르는 것을 주저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199쪽)

아픈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기도 직접 운전을 해서 병원으로 가기가 힘든 적에도 119 도움을 받을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몰랐던 것이 큰 이유겠지만 좋은 이웃이 곁에 있고, 그간 일촉즉발의 위급하고 위중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았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달빛어린이병원
#소아응급실

“야간에 아픈 아이를 위해 365일 연중무휴로 밤 12시까지 진료를 합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상주하고 있어 영유아를 둔 부모들에게는 좀 더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그 수가 많지는 않기에 관련 사이트(moonlight.e-gen.or.kr)에서 미리 근처 달빛어린이병원의 위치와 전화번호를 확인해두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집 근처에 소아응급실이 있다면 이곳도 미리 알아 두세요. 아무래도 일반 응급실보다는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한결 편안하고, 역시나 소아청소년과 전담 의사가 상주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192쪽)

그래서 검색했다. 시흥, 용인, 일산, 평택에만 있다. 안양에는 없다. 하지만 소아응급실은 한림대성심병원, 샘병원 등에서 운영하고 있다.

책은 마지막으로 반드시 배우고 익혀둬야 할 응급처치를 안내한다. 익히 들어왔던 것이나 과연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정확히 실행할 수 있을까. 안내된 응급처치만큼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사람이라면 이유불문 누구나 반드시 배우고 익혀야 할 응급조치겠다.

#심폐소생술
‘중단없는, 강하고 빠른 가슴 압박’
너무 빠르지 않은 속도로 충분한 깊이로 가슴 압박을한다. 환자가 움직이고 숨을 쉬거나 교대해줄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 까지 쉬지 않고 계속할 것!

#자동심장충격기
자동심장충격기 작동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일단 전원을 켜고, 이후 과정은 자동심장충격기 음성 지시를 차분히 따르기만 하면 된다.

#하임리히법
‘뒤에서 안고 복부를 밀어 올린다’ 가 기본 지침이다. 하지만 연령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시행 방법이 다르니 정확하게 숙지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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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를 다시 읽는다. 에필로그가 없기도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 프롤로그를 읽는 건 나의 버릇이다. 프롤로그 제목이 눈길을 잡는다. ‘아이가 안전한 세상은 부모로부터 시작합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마음이 저릿하다. 다시 마주한 노란빛의 4월. 부모로부터 안전한 세상이 시작되면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고 말았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어딘가 데거나, 떨어져서 혹은 부딪혀서 다친 아이들을 만납니다. 아직 움직임과 주의력이 여물지 못해 다치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다친 이유들을 듣다 보면 때로는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곁에 있던 어른들이 조금만 주의를 했으면 응급실에 오는 일을 피할 수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9쪽)

나는 이 글이 너무 아프다.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다. 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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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서 시작된 안전한 육아의 바통이 온전하고 완벽하게 사회와 국가에게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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