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2 세트 - 전2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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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이 발간된 1993년. 그로부터 26년의 시간이 흘렀다. 일본편을 4권으로 마무리해 나온지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중국편까지.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만 있느냐, 것도 아니다. 막대한 사료와 막강한 입담으로 추사를 재조명한 <추사 김정희>가 나온 것도 불과 일년 전. 이쯤되니 유홍준 이 양반, 정체가 의심스럽다. 사람이 아닐 수도! 인공지능이 소설도 쓴다는 요즘, ‘합리적 의심’이라 말하기에 충분하지 싶다.

그의 정체가 무엇이든,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점점 더 이야기가 재미를 더해간다는 것. <추사 김정희>를 인상 깊게 읽은 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부터 차례로 틈틈이 읽어나가는 요즘, 필독서로 그저 읽어내기에 급급했던 학창시절에는 1도 느끼지 못했던 감흥으로 희희낙락하고 있다. 나이가 일정 궤도에 올랐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무언가가 분명 있는 것이다. 가히 나이듦의 축복이라 할 만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중국편> 사전 서평단 신청을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믿고 보는 유홍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일단 2편으로 마무리 되었으나 어디까지나 시작이라고 본다. 중국이지 않은가. ‘역사가 무려 3천년. 게다가 면적은 한반도의 약 40배, 남한의 약 100배 크기이고 인구는 남북한의 약 20배’에 달하는, 중국. 그가 왜 하필 이 넓고 넓은 대륙의 많고 많은 유적지 중 ‘돈황, 실크로드’를 중국 답사 일번지로 삼았을까 의문이 든 것은 찰나였을 뿐. 솔직히 내겐 아무 의미 없다. 그곳이 어디든, 지금처럼 입을 헤 벌리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감탄을 연발하며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갈 것임에 틀림없기에.

사실, 처음에는 꽤나 속상했다. 실크로드. 달랑 4글자만 머릿속에 남아있을 뿐, 그것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는 현실이라니! ‘김정희 - 추사체’ 반사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오지만, 떠오르는 작품 하나가 없음을 알아챘던 <추사 김정희>를 읽었던 그때와 비슷한 심경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요만큼이라도, 알고 있어서 지금에 이르러 더 잘 보이고, 들리고, 이해하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다시 또 새롭게 알게 되는 기쁨의 힘이 제법 세긴 했다.

본래 안다는 것은 지적 희열을 동반한다. 안다는 것도 전혀 모르던 것을 새로 알게 될 때보다 대충 알던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을 때 더 기쁘고, 꼭 알 필요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숙제를 끝낸 것 같은 후련함이 있다. 이럴 때면 공부보다 재미있는 것은 없다. (1권, 324쪽)

1권에는 서안에서 하서회랑을 거쳐 돈황 명사산에 이르기까지가 실렸다. 나는 ‘맥적산석굴’을 단연 1위로 꼽겠다. 80미터 높이에 달하는 벼랑에 4세기부터 천년을 두고 굴착된 석굴사원이라니! 211개의 석굴과 그 속 7천 8백의 불상이 존재하는 곳. 특히 중국 불교미술의 제1차 전성기라 일컫는 북위시대에 대대적으로 조영되어, 맥적산석굴의 반이 북위시대 석굴이지만 ‘동양의 조각관’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각 시대마다 조영된 많은 불상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에 기대 각양각색 불상 사진을 보며 어느 시대의 불상인지 추측해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북위시대 불상들은 처음에는 서역 양식에 의지하다가 점차 벗어나 마침내는 중국 불상으로 토착화되었다. 그래서 북위시대 불상을 보면 부처님의 얼굴이 서역이 아니라 중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고, 법의도 남쪽 인도의 얇은 사라를 걸친 편단우견이 아니라 북부 중국의 기후에 맞는 두툼한 옷을 양 어깨에 통으로 걸치고 있으며 옷자락의 주름이 겹겹이 흘러내린다. 신체는 이 시대의 미인관에 따라 호리호리한 편이고 목이 굳센 듯 길고 얼굴에는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래서 중국미술가들은 북위시대 불상을 일컬어 수골청상이라는 표현을 쓴다. 빼어난 몸매에 해맑은 인상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이는 중국 불교미술의 제2차 전성기인 당나라 시대의 불상이 풍만하고 역강한 육체미를 자랑하는 것과 크게 구별된다. 북위 불상에 소박하고 진솔한 고졸미가 있고 당나라 불상엔 화려하고 역동적인 사실미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나라 불상에는 절대자(부처)의 위엄이 강조된 반면 북위시대 불상엔 절대자의 친절성이 나타나 있는 점이다.” (1권, 116~117쪽)

사진으로 보는 맥적산 전경도 기가 막힌데, 잔도에 이르러서는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사람이 다닐 수 없는 벼랑에 선반을 매듯 인공 오솔길을 만들어 절벽 전체를 석굴로 굴착한 중국인의 슬기와 정교한 토목기술이 낳은 실로 위대한 문화 유산이다.

생애 최초 영접한 석굴사원인 맥적산석굴의 첫 인상이 워낙 강렬했기에 뒤에 이어지는 병령사 석굴, 심지어 2권의 막고굴조차 크게 와닿지 않았다. 물론 석굴 그 자체가 주는 느낌에 한해서라는 점. 소심하게 밝혀둔다.

2권은 대망의 막고굴. 막고굴을 두차례에 걸쳐 답사한 감상기가 실렸다. 그 유명한 돈황문서에 얽힌 이야기가 2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무엇보다 2권에서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막고굴 제45굴 속 성당시대의 보살상. 1권에서 시대별 불상을 두루 살펴본 경험이 톡톡한 역할을 했을 터다. 저자가 서양의 비너스상에 비견하며, 아주 생생하고 섬세하게 묘사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 본다. 저자의 미술학도 면모가 여실없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고귀한 풍모의 보살상은 가벼운 트리방가로 우아한 자태를 자랑한다. 아름다운 얼굴과 하얀 피부가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복스럽게 살진 몸매를 한 보살상의 하반신에는 화려한 빛깔의 얇은 치마가 바지처럼 두 갈래로 드리워져 있고, 물에 젖은 옷주름이 다리에 밀착되어 몸매를 은근히 드러낸다. 붉은 천의자락과 금목걸이만 걸쳐진 상반신은 배꼽까지 맨살이 드러나 있어 육감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보살상의 표정을 보고 누군가는 “웃는가 하면 웃지 않고, 기뻐하는가 하면 기뻐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다양한 심리가 응축되어 있다”고 했다. 이상적인 여인상으로서 보살상의 모습이다. 중국의 불상조각은 여기에서 클라이막스를 이루었다는 느낌이다.” (2권, 96쪽)

돈황의 석굴을 둘러본 후, 나 역시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석굴이 없을까 생각했다. 약간의 문화적 열등감을 속에 담은 채. 저자는 기다렸다는 듯, 시원하게 대답을 쏟아낸다. 하나씩 짚어가며 조목조목 설명해주는 것은 기본이요, 결론에 이르면 그보다 더 명쾌한 답은 없지 싶다. 유쾌함을 넘어서는 통쾌함까지 느껴지는 일갈이 아닐 수 없다. (1권, 138쪽~141쪽) 이왕이면 앞으로 돌아가 ‘중국 답사기를 시작하며’ 글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는 것도 좋다. 저자가 콕 집어주는 대로 중국 문화를 보는 시각을 재설정 할 수 있다면, 우리 문화 유산의 진정한 가치와 자랑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됨은 물론 서로 다른 자연과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한 ‘다름’을 그 어떤 열패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중국은 우리와 함께 동아시아 문화를 주도해나가는 동반자일 뿐 아니라 여전히 우리 민족의 운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막강한 이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중국을 더욱 깊이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의 감동적인 체험과 견문, 그리고 다방면에서 얻은 유익한 정보들을 생생히 담고 있는 이 책은 그것의 단초가 되기에 충분하다.

“나의 중국행은 언제나 즐거운 여행의 놀이터이자 중국 역사와 문화의 학습장이면서 동시에 우리 문화의 특질을 동아시아의 지평에서 재인식하는 현장이었으며, 나아가서 오늘날 국제사회 속에서 우리의 좌표를 생각게 하는 세계사의 무대였다. 내가 중국 답사기를 쓴 소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중국편 1,2>
중국, 그 왕년의 누부신 실력이 촤르륵 펼쳐진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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