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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권여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레몬> 사전 서평단에 선정되었다. 권여선 작가를 향한 무한 사랑을 피력한 글을 써 보낸 기억이 떠올라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밤에 쓴 연애 편지를 아침에 읽었을 때의 느낌, 딱 그거다.
모집 공지 글을 자세히 살피고 읽었어야 했는데, 나 또한 출간될 책의 ‘일부’ 내용만이 담긴 얇은 가제본 책을 받아 들고 적잖이 놀랐다. 나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나 보다. 책과 함께 온 안내문을 읽어보니 활동 내용이 바뀌었다. 서평 쓰기에서 기대평 쓰기.
톡 까놓고, 개인적 기대평은 사실 쓸 것도 없다. 내겐 권.여.선. 이름 석사만으로 충분하다. 잘 마시지도 못하지만, 술 생각이 간절해지는 이름이기도 하다. 권여선, 술을 부르는 존재. 우리의 강렬했던 첫만남 <사랑을 믿다>에서도 술이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고, ‘주류(酒類) 문학의 위엄’이라고 일컬어지는 <안녕 주정뱅이>는 말해 무엇하리. 더구나 <오늘, 뭐 먹지?>는 ‘음식’ 산문을 가장한 ‘안주’ 산문집. 먹고 마시는 이야기가 한 상 가득 차려진다. 해서 그의 작품을 읽을 때는 커피 대신 술이 제격. 이왕이면 소주. 맑고 투명한, 알맞게 채워져 찰랑거리는 소주 한 잔이면 딱 좋다. 곁에 두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차차!
<레몬> 이야기를 해야지. 이번에 새로 나온 장편 소설이다. 순식간에 읽었다. 소설의 극히 일부만이 담긴 가제본이기에 양적인 한계가 있지만, 강한 흡입력은 절대 무시 못한다. ‘그 일부를 절묘하게 잘도 뽑아냈군’ 하며 마케터 능력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이내 머릿속을 떠다니는 온갖 물음표들로 고구마 백 만개는 먹은 듯한 답답함에 정말이지 미치는 줄 알았다. 해서 한동안 애써 외면했다. 보면 읽게 되고, 읽으면 궁금해지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벌써 오늘. 마감일은 이미 지났고, 책도 서점에 출간이 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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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랫동안 열리지 않던 문이 열리고 노란 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듯했다. 노란천사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레몬, 이라고 나는 의미 없이 중얼거렸다. 복수의 주문처럼, 레몬, 레몬, 레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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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저러나 술이 단 한 방울도 안 나오는 소설을 쓰겠노라 술김에 다짐한 작가가, 고생을 바가지로 하며 썼다는 작품이 혹시 이 소설일까. 관건은 마지막 장면. 주인공이 술집에 들어가긴 했으나 밥만 먹고 나오는 장면으로 가까스로 마감했다고 했다. 고구마 백 만개가 더 얹혀지고 말았다. 당장 서점으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