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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박상영. 신문에서 처음 만났다. 한겨레 ESC 섹션의 에세이를 쓰는 사람으로.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라는 제목의 에세이 속 주인공이 바로 그다. 정말 신기한 사람이다. 직장에서 받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야식으로 해결하려 한 나머지 다이어트라는 또다른 역풍을 맞는 와중에도 매일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씻고 나와 회사 근처 카페에서 아침 8시 55분까지 글을 쓰고 출근을 했던 사람. 정말 신기하지 않나. ‘나태하지만, 동시에 무섭게 성실한 사람’ 이란 표현이 이보다 더 딱 들어맞는 경우가 또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퍽이나 곤란해하며. ‘나는 성실하지도 않으며 내 생활은 건강하지 않다’고 적었다.
“나는 다 쓴 치약을 쥐어짜듯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뿐,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매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작가가 되었고, 책을 가지게 되었고, 내 글을 실을 작은 지면을 얻을 수 있었으나 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거나 나의 일상을 가꾸는 방법, 내가 나를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믿음을 완벽하게 잃어버렸다.”
이 글을 읽은 후, 더욱 그가 마음에 들었다. 해서 지금까지 잊지 않고 꼬박 챙겨 읽고 있다. 그의 글이 실리는 날은 강원국, 김보통의 글도 함께 실리는지라 기다리고 찾아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이쯤해서 책 이야기.
고백하자면, 난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없다. 신문에 연재하는 글로 사람 박상영은 익숙한데, 소설가 박상영은 처음인지라...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받은 <대도시의 사랑법>에 수록된 <재희>를 읽은 후 적잖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기억이 맞다면, 청첩장과 관련된 그의 글에서 <재희>가 언급된 적이 있다. 자신은 자발적 비혼자이나, 가까운 친구들의 결혼은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종종 사회를 보거나 축가를 부르기도 하는데(소설 속에서, ‘영’이 축하를 부르는 장면, 정말이지 웃겨 죽는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단편소설을 썼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재희>였던 것. 굳이 적자면 퀴어소설, 퀴어문학이다.
어디까지가 작가의 경험일까. <재희>를 읽는 내내, 읽고 난 후에도 나는 그게 그렇게 궁금하더라. 그런데 내 안에 동동 떠있던 뭔가 호들갑스럽던 물음을 걷어내자, 한심하고 처량한 기분이 들고 말았다. 부글거리는 거품만 걷어냈을 뿐인데 내용물이 반 이상 사라져버린 냄비를 들여다 봤을 때 드는 감정과 비슷하다면 웃긴가.
‘성소수자 문제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서 꼭 이야기되어야 할, 더 이상 나중으로 미룰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몸 사리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작품도 점점 그렇게 쓰려고 노력 중이며, 피해가지 않’겠다는 작가의 다부진 말에 뜨끔한 면도 없지 않지만...
이제는 알지 않나. 사랑의 스펙터클한 스펙트럼을. 저마다 속과 결이 다른 사랑을 알기에 그 사랑들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여름 밤, 나의 아름다운 도시, 어쩌면 너 때문에.”
하지만...
“모든 아름다움이라고 명명되는 시절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재희는, 이제 이곳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