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민족분열, 국가분열, 문화분열의 위험성을 제주도민들은 정확히 꿰뚫고 있었고, 그 귀결은 대결과 충돌, 즉 동족상잔의 전쟁밖에는 없다고 하는 비극적 결말을 예언하고 있었다. 이 비극을 예방하는 최선의 길은 외세로부터의 온전한 해방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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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우익이 우리나라에서는 사상신념구조에 대한 상이점으로 생겨난 개념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신탁통치를 둘러싼 의견대립의 문제로써 형성된 관념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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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한다! 김구가 정치적 감각이 기민한 사람이었다면, 임시정부의 적통성의 인정을 기다리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고, 곧바로 8월상순 해방 전야에 혈혈단신으로라도 귀국하여 여운형과 같이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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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을 예견했고 준비했고 또 구체적 대책을 마련했고 실제로 패자와의 담판을 벌인 유일한 인물은 몽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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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것은 최전선에 선 가장 용감한 사나이들은 서울시내 시가 곳곳의 주요 코너를 지키고 있었던 신문팔이, 구두닦이, 껌팔이, 성냥팔이, 넝마주이 같은 시민의 삶에서 일상적 의식의 커텐에 가려져 있던 최하층의무학자 젊은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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