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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현시기 프랑스 좌파 지식인 운동의 동향과 전망
 - 연대하는 지식, 실천하는 이론을 위한 움직임 -

진보평론  제1호
은재호(파리10대학 박사과정)

마르크스주의 정치이론은 실패했는가? 89년을 기점으로 목도한 동구의 몰락과 제국의 와해가 시사하는 바, 이론의 현실 조응성 문제가 최대의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이름으로, 혹은 수정주의의 이름으로 변혁운동의 세례를 받은 대다수 연구자들이 회개와 개종의 대열에 서지 않는다면, 그 위기의 전화와 극복을 위해 경주한 치열한 노력의 한 형태가 실천 이론의 모색이었다. 이론에게 현장은 무엇인가? 이론은 세계관의 동의어인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 사회주의 세계관의 몰락이 아니라면, 그 세계관에 실천성을 부여하는 임무가 이론의 몫이라는데 이견은 없는 듯 하다. 더욱이 최초의 충격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관과 실천의 매개는 투쟁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현실적인 무기로서 뿐만 아니라, 실천을 담보하는 세계관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다. 지향점이 없는 투쟁이 존재하지 않듯 이론 없는 투쟁 역시 존재할 수 없다면, 세계관의 실천을 굳건히 지지해줄 이론의 세련화와 정교화야말로 진보진영 모두에게 주어진 당면 과제일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일군의 이론진영이 겪은 저간의 사정은 ‘신좌파’ 또는 ‘유로 코뮤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한동안 우리에게 소원했던 서구 좌파 지식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니, 소비에트의 영향력이 일시에 사라진 구 동구권이 유럽 대륙의 전략적 공백지대로, 아메리카의 새로운 교두보로 확장됨으로써 오히려 우리 보다 더한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국제연대가 유럽대륙 내에서조차 이미 신화의 수준에 도달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려니와, 자국 국경 안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칼날이 목을 겨누고 있고, 유럽통합을 등에 업은 국제금융자본의 진출이 전지구적 세계화의 아성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공화국 프랑스에서는 1995년을 끝으로 14년에 걸친 사회당 정권이 막을 내림으로써, 명목이나마 어렵게 유지해왔던 평등사회의 이념적 지향 마저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 1995년이 또한 ‘급진 좌파’의 부상을 기록한 한 해라면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95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를레트 라기에가 이끄는 <노동자 투쟁>(LO)이 전체 유효표의 5.3%, 160여만 표를 획득함으로써 트로츠키주의자들로 대표되는 급진 좌파 진영으로서는 2차 대전 이후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 더욱이 프랑스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던 총파업의 현장에서 좌파의 분열을 목도한 때도 다름 아닌 1995년 겨울. 동구의 와해와 소비에트의 몰락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서도 ‘좌파의 좌파’, ‘혁명 좌파’, 나아가 ‘붉은 좌파’를 선언하는 일단의 사회운동이 비등하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비등한 급진적 사회운동이 산출한 당장의 가시적인 결과는 1997년 2월,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종언과 함께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앉는 듯 했던 좌파 정권의 화려한 복귀, 그리고 포스트 코뮤니즘 시대를 여는 숨가쁜 여정이다.

1997년에 이르러 프랑스는 또한 ‘좌파의 전쟁’을 목도하였다. ‘좌파의 전쟁’이란 97년 2월 총선을 전후로 본격화된, 좌파 내부의 다툼을 지칭하는 현지 언론의 표현이다. 그러나 제도 언론에 의해 ‘좌파 헤게모니 투쟁’이라는 말로 요약된 이들의 공방은, 거기에 내재하는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 특유의 역사성과 이론적 계속성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좌파의 좌파’를 지향하는 ‘비판적 지식인’ 그룹이 그 동안 좌파진영 내부에서 정치-사회-문화적 담론의 주도권을 쥐어온 ‘다원적 좌파’, 곧 사회당, 공산당, 에콜로지스트 연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섬으로써, 외견상 정치적 동질성과 당파적 합의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좌파운동의 이론적, 실천적 편차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론 보다 앞서는 현실, 현실 보다 정교한 이론의 역사가 다시 시작하는 것일까?


반자유주의의 물결 또는 역사의 회귀

1995년 11월. 프랑스 전국이 파업의 열기로 뜨겁게 달구어진다. 전국의 도로교통은 물론 항공, 항만교통이 조금씩 마비되었고, 각급 작업장은 파업이 아니라면 태업의 현장에서 알랭 크리빈의 <혁명적 공산주의자 연맹>(LCR)이 주도하는 총파업의 전야를 맞이 했다. 93년 선거를 통해 당당히 집권한 우파 <<공화주의자 연합>>(RPR)의 신경제정책이, 불씨 조차 희미했던 일개 ‘극좌파’의 ‘선동’에 휘청거린 것이다. 사실, 우파연합은 기업이 안고 있는 과도한 조세부담과 노동시장의 경직성, 공공서비스 부문의 무절제한 팽창과 방만한 경영이 프랑스를 병들게 한 주범이라는 인식 아래, 자본가들의 투자 의욕을 고양시킬 일련의 제도 개혁을 속속 입안하였거니와, 그 핵심은 사회복지제도의 총체적인 축소였다.

90년대 프랑스의 정치지형을 뒤흔들게 될 반자유주의 물결의 발단은, 이처럼 고조된 총파업 전야에 좌우를 망라하는 일단의 프랑스 지식인들이 현 국면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나서면서부터 이다. ‘사회보장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지지하며 뽈 리꾀르, 프랑수아 퓌레, 쟈크 쥘리아르, 알렝 뚜렌느, 삐에르 로장발롱, 알프레드 그로세 등이 우파 정부의 개혁에 찬성표를 던진다. 이들은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이...사회정의에 부합’하며,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좌/우의 대립적 이념형에 함몰되어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생 시몽 재단>의 ‘포스트 미테랑 사회주의자들’ 역시 자신들의 전략을 ‘사회적 좌파’로 자리매김하며,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사관에 입각한 진보진영을 ‘도덕적 좌파’로 폄하한다. 추상으로부터 해방되어 구체적인 현실을 논해야 하며, 과학적 지식을 정치적 자원으로 동원해야 한다는 현실논리가 이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이는 물론 기왕의 근대국가가 사회적 활동공간의 다차원적인 분화와 중앙집권화라는 양극적-동시적 현상을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라면, 국가란 단순히 계급관계의 구조화가 엮어낸 지배계급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투쟁의 최상위 공간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애초에 ‘노동자 자주관리’를 이야기했던 저들이 ‘시민기업’의 주창자로, 다시 정부 ‘구조조정위원회’ 위원으로 변신해 갔다면, 그리고 임노동의 종말을 예언했던 그 담론 역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우려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변명’으로 이행해 갔다면, 이 ‘이행’을 ‘변절’로 매도하기에 앞서 그들의 시대적 정직성과 전략적 탄력성에 주목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 한 시대를 걸머지고 나가는 인간의 존재는 어떤 경우에도 ‘역사의 의지’로 환원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바로 이처럼 생생하게 살아 행동하는 ‘인간의 욕구’에 주목할 때,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인간 해방의 진정한 의의를 회복하는 것은 아닐까?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란 종래에 인식되었던 것처럼 단순히 스탈린주의의 과오에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사적 유물론을 바탕으로 상정했던 사회구성체 이행론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결정론적 세계관의 ‘환상’이었음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Furet, Le passé d'une illusion. Essai sur l'idée du communisme au XXe siècle, 1995).

‘비판적 지식인’들이 개입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 ‘진정한 좌파’의 명칭을 선점하려 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우경화 경향이다. 이들 ‘비판적 지식인’들은 ‘파업 노동자를 위한 호소문’을 통해 ‘공화국의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고... 평등과 연대의 사회’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드니 베르제, 쟝-마리 벵상, 다니엘 벤사이드, 에띠엔느 발리바, 삐에르 부르디유, 뤽 볼탕스끼, 쟈끄 비데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적극적 복지국가의 실현으로 쟁취한 노동자의 권리를 ‘기득권’으로, 권리의 요구를 ‘집단 이기주의’로 규정하는 포스트맑스주의자들이 -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과는 달리 - 좌파의 옷을 입고 좌파의 이름으로 행동하지만, 그것은 사실 저들의 ‘개종’과 함께 얽히기 시작한 보수진영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저들은 그 동안 암묵적으로 통용되었던 정치적 범주들, 예컨대 보수와 진보, 좌와 우를 시대착오적이라고 규정하며, 이러한 대립적 범주를 초월한 것처럼 행동하면서, 신자유주의 이론에 근거하는 초국가적 자본주의의 음모에 대항하여 그 대응전략을 개발하기는커녕, 그 음모에 ‘인간의 얼굴’을 덧씌워주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 각인된, 투쟁의 역사를 통해 성취한 사회적 제 권리들을 방기함으로써, 지배적 자본세력과 투쟁할 수 있는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여러 정부기관이야 말로 서구 자본주의 국가가 담지하는 ‘상대적 자율성’의 구체적인 행위자로 기능하며 - 국가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고위 테크노크라트 일반, 특히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국가귀족’의 대척점에서 - 국가의 ‘왼팔’을 구성하는데, 이들의 존재를 약화시킬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라는 것은 기껏해야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억압적 경찰국가로의 퇴행이라는 것이다 (Bourdieu, <>, Le Monde, 1992).

하물며 누가 마르크스의 이름으로 말하는가? ‘마르크스주의를 당과 국가의 정당화 도구로 사용했을 뿐’인 소비에트의 몰락이 마르크스주의의 이념 자체를 손상시킨 것은 아니거니와, 마르크스 자신은 ‘역사 발전의 다양한 길’을 옹호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마르크스 사상이야 말로 역사철학과 현실 정치를 연계하는 미완의 사상으로 재조명되어야 마땅하다 (Balibar, La philosophie de Marx, 1993) ! ‘동구의 몰락이 현실 사회주의를 전체주의로부터 해방시켰다면, 이제 현실 사회주의의 왜곡된 역사관으로부터 마르크스 역시 해방시켜야 한다’는 문제제기이다 (Bensaïd, Marx, l'intempestif, 1995).


미시적 인간이해를 통한 거시적 사회변혁을

‘좌파의 전쟁’을 예고하는 지식인의 동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서명은 서명을 낳고, 호소는 호소를 불러일으키며, 국가 아젠다의 건설이 정당-행정부-의회를 잇는 전통적인 정치 메커니즘의 전유물이 아님을 12월 총파업으로 웅변한다. 그리고 이 총파업의 와중에 현 시기 프랑스 사회가 목도한 것은 급진 좌파 지식인의 부활이다. 89년 이후 어느새 지배이데올로기로 굳어져버린 자유주의 유일사상에 대한 전방위 대항전선의 주축으로, 기존의 좌파진영에서 이탈한 ‘극좌파’ 지식인들이 68년 5월 이후 다시 담론시장의 제 1 선에 복귀해 반자유주의의 물결을 선도한다.

92년 걸프 전쟁 당시, 미국이 주도하는 신국제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창설된 <시대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Sprat), 자유주의 유일사상을 비판하며 지난 95년 2월에 발기했던 <메를로-뽕띠 클럽>, ꡔ르 몽드 디플로마티끄ꡕ 편집주간들을 주축으로 토빈세(稅) 수용을 주장하는 <국제 금융거래의 과세를 위한 모임> (Attac), 그리고 부르디유의 호소에 따라 지식인과 노동자의 연대를 추구하는 <행동의 이유> (Raisons d'agir) 등이 사회운동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총파업의 아랫녘에서이다. 이들 모두는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라 할 <생 시몽 재단>과의 투쟁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한편, 스탈린주의의 ‘유물론적 형이상학’을 배격하면서 다음 세기의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고, 이를 전파하기 위해 질주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는 ‘일개 사회주의 국가의 전략이나 당의 정치적 선택으로 환원되기 이전에... 노동자들의 요구를 정치세력화했던 운동의 역사’가 아니었던가(Berger et Maler, Une certaine idée sur le communisme. Réplique à Francois Furet, 1996).

그런 만큼 현시기 프랑스 지식인들에게는 마르크스 사상의 재해석과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재건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세계관의 실현이 반복된 주장과 선언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가, 이들의 저작은 상당수가 다양한 이론적 전통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현대 사회과학의 성과를 소중하게 사용한다. ꡔ마르크스의 현존ꡕ(Actuel Marx)이 ‘뼈대없는 정통'(‘orthodoxie molle’)을 고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면, 다른 일방은 보수적 부르주아 이론으로 치부되던 체계이론, 조직이론, 자원동원론, 그리고 합리적 선택이론과 민속방법론, 공공선택이론 등과의 비판적 화해를 서두르기도 하고, 서구 자본주의 전개에 관한 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신화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분석의 현장 역시 많은 경우, 대륙을 관통하지도 않을뿐더러 역사를 추월하지도 않는다. 물론 여기에서의 현장이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각 부문, 구체적인 행위자들이 일구어내는 사회적 활동 공간을 총칭할 따름이다.

‘마르크스주의’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현란한 이들의 다양한 접근은 변동하는 사회현실에 대한 지적인 개방성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하게 마르크스주의 사회과학의 글쓰기가 노정하는 거대담론에의 편향성이, 마르크스주의 정치이론 마저도 토대결정론적 세계관의 형이상학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는 나름의 성찰에 연유한다.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기초한 미시적인 인간이해가 주류 사회과학의 전유물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사실, 현존하는 개인과 상관없는 저 역사철학적, 전체론적 계급범주가 구체적인 사회 현상을 창조하는 개인의 존재 자체는 아니지 않은가? 행위자가 실종된 그 자리엔 거의 언제나 역사와, 구조와, 객관적 조건들만이 번갈아 나열되며 개인에 대한 집단의 우위가 공언되고, 구체적인 맥락과 상황에서 행위하는 행위자들의 상호의존 관계 또는 전략적 상호작용 과정은 분석의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개인의 주관성과 동기가 비판적 사회 이론의 근본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강조는 때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이 상정했던,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선구자적 인간형’이 최소한 우리 모두의 모습은 아닐 것이기에 그렇다. 그렇지 아니할 때, 이론은 우리가 지향해야될 유토피아의 선포에 머무르며 현존하는 인간에게 또 하나의 멍에가 될 뿐이다. 그래서, 오늘날, 이곳, 프랑스에서 ‘진정한 좌파’를 건설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저들의 노력은 당장의 사안별, 부문별 연대의 현장으로 향하며 정부의 정책 아젠다를 교란한다. 그리고 그 연대의 현장은 룸펜 프롤레타리아와 동성애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못해 현란하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단식 투쟁이 벌어지는 성 베르나르 성당(1996), 무주택자들이 ‘주거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며 점령한 드라공가(街)의 빈 아파트(1997), 일단의 실업자들이 실업수당 인상을 요구하며 점거한 정부 사회복지 부서(1998) 따위가 첨예한 투쟁의 현장으로 변한다.

나아가 그 논리적 귀결로서, 지식의 속류화에 기여하는 한편 지식의 자의적 선택과 왜곡을 감행하며 일정하게 당파성을 띠는 제도 언론과의 전쟁이 ‘상징권력’을 위한 투쟁에 있어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총파업의 시작과 끝이 함의하는 바, 현장에 선 노동자들이 갈구했던 것은 화폐와, 잉여와, 교환에 관한 비밀스러운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요구도 저들의 반론처럼 정당하다’는 확신이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사상 및 지식 전투’가 병행되지 않는 사회투쟁이란 존재하지 않거니와, 대중매체의 은밀한 세뇌작업을 저지할 수 있는 지적, 언어적 도구를 고안하여 전파하는 것이 지식인들의 제일 큰 임무일지도 모른다(Bourdieu, Contre-feux, 1998).

프랑스 외무성의 ‘대변지’에 불과했던 ꡔ르 몽드 디플로마티끄ꡕ가 포스트 커뮤니즘의 ‘기관지’로 자리잡으며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는가 하면 (20만부), ꡔ샤를리 에브도ꡕ (8만부), ꡔ뽈리티스ꡕ (2만부), ꡔ레 진로꿉띠블ꡕ (3만5천부), ꡔ마리안느ꡕ 등의 잡지들이 ‘비판 사상’의 충실한 대변자로 떠오른다. ‘제 3의 길’을 떠받치는 세계화의 논리와 다자간 투자협정, 다보스 포럼, 암스테르담 협약이 도마에 오르고, 여성들과 사회적 소외계층의 목소리가 지면을 메꾸거니와, 동성애자들이 ‘지배의 윤리’로부터 면죄부를 얻는 곳도 다름 아닌 여기, 역사의 먼 뒤안길을 돌아온 급진 좌파 지식인들의 키보드에서다.


혁명의 미래, 미래의 혁명

포스트 코뮤니즘 시대의 우경화 경향, ‘자유주의냐 야만이냐’의 강요된 선택에 종지부를 찍는 첫 번째 견인차는 급진 좌파 지식인들이었다. 그래서 1997년 가을,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만행’을 폭로하는『공산주의 흑서』(Le livre noir du communisme)가 발간되었을 때, 프랑스사회는 이미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가 사회민주주의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폭넓은 공감대 속에서, 기든스류의 ‘제 3의 길’을 거부하면서 ‘또 다른 사회’를 향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었다. 주당 35시간 노동제를 통한 노동할 권리의 보장, 실업수당 인상, 전국민 보건체계의 정비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죠스팽 정부의 복지 프로그램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사회운동세력으로서 일정하게 자기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 급진 좌파가 90년대 중반기 프랑스의 정치지형과 교직하며 엮어낸 현실 정치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급진 좌파가 ‘다원적 좌파’의 반대편에서 동원하는 차별화 전략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공히 프랑스라는 사회가 내재화시킨 사회주의 수용의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뿐 더러, 그 이념적 편차 역시 자신들이 믿는 것처럼 그렇게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들도 내일의 혁명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Jean-Christophe Cambadélis)거나 급진좌파의 선택은 ‘전략적 선택’(Christophe Aguiton)이라는 평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현시기 프랑스 지식인 운동을 통해 혁명의 이상을 제거한 좌파라는, 프랑스 특유의 기현상을 보고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의 논의와 행태 속에는 고립분산적인 사회운동이 중심 자리를 차지할 뿐, ‘또다른 사회’에 대한 대안적 전망과 그 실현을 위한 일반적, 총체적 프로그램이 부재한다. 부르주아 사회의 비판이 그 대안을 온전히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Alain Finkielkraut)

사실, 급진 좌파의 사회운동이란 사안별 연대의 현장, 단일의제 위주의 산만한 저항에서 조합주의적 요구에 충실함으로써, ‘급진적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급진적 자유주의’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정통’이라 불렸던 일단의 사회주의가 생산수단의 집단화를 바탕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했다면, 90년대 프랑스 급진 좌파의 지향은 사회경제적 요구를 사상한 채 ‘인권’과 ‘보편주의’의 강조, 그리고 전통적인 윤리 개념 (특히 가부장적 가족윤리)에 대한 저항에 머무르고 있다. 때문에 이들이 그려내는 정치 지형이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이 아니라, 자유주의 대 반자유주의의 일전이 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좌파 정권의 회귀와 신자유주의의 약진이라는 90년대 유럽의 파라독스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70년대의 골든 보이들이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은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자본에 대한 과세였지, 보편주의에 근거하는 인권보장과 국경개방을 통한 외국인 인력의 자유로운 수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 역시도 국가와 정치의 상대적 자율성 개념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이 인적관계로 구성되는지 구조적 관계로 구성되는지에 대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최근의 논의는 국가권력의 통일성 테제를 반박하며 자본주의적 국가장치를 사회적 ‘소외계층’의 권리를 고양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사회주의에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그래서인가, 지난 시대의 논의 과정에 나타났던 제도주의적-조합주의적 국가론의 일편향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때문에 지금, 급진 좌파, 특히 부르디유 진영에 대한 조심스러운 불만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사회투쟁의 정치경제적 차원을 간과하는 석학의 앙가쥬망이 마르크스주의의 ‘계급적’ 당파성을 완전히 포기함과 아울러, 그에 따른 좌파의 해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이다 (Philippe Corcuff).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또 다른 사회’에 대한 대안적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아쉬운 때, 프랑스 급진 좌파는 지난 98년 10월 <코페르니쿠스 협회>를 발족시켰다. 그 동안 고립분산적으로, 산발적인 반자유주의 저항전선을 형성했던 대학 연구자들과 현장 활동가 300여명이 모여, 현 사회당 정권의 정책 입안을 주도하는 <생 시몽 재단>은 물론 공화주의적 좌파의 기치를 내건 <마크 블로크 협회>의 반대편에서 ‘진정한 좌파’의 깃발을 높이 세웠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연대와 실천을, 다른 한편으로는 포스트 코뮤니즘 시대의 대안적 세계관을 건설하겠다는 이들의 야심이 현시기 좌파 운동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를 예단하기엔 시기상조다. 다만... 이들로부터 역사에 대한 신뢰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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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가라타니 고진의 코뮨주의

레디앙의 연재물 '세계의 사회주의자'에 뜻밖에도 가라타니 고진 편이 다루어졌기에 옮겨놓는다. 단서조항이 없을 수 없는데, 편집자도 옮겨놓고 있는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그가 사회주의자일 수 있다면, 자신이 새로 만들어낸 기획 속에서일 것"이라는 게 '사회주의자 고진'의 근거이다. 알다시피 고진이 "새로 만들어낸 기획은 NAM을 의미한다". 안 그래도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책상에 올려놓은 지가 오래인데 바쁜 일들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아래의 연재는 고진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로도 읽을 만하다.

레디앙(07. 03. 20) '몰락 이후' 쉰이 넘어 코뮨주의자 되다

잊고자 쓰는 사상가가 있다. 그는 개념으로 성을 쌓지 않는다. 남들이 자신의 착상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차용할 때면 그 자리에 불을 지르고 떠난다. 형이상학을 극도로 경계하며, 따라서 세계를 하나의 이야기로 지어내는 예언을 멀리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이에게 ‘~주의ism’는 사상의 죽음을 뜻한다. 예수가 아닌 바울이 기독교(예수주의)를 만들었듯, 마르크스주의가 엥겔스의 산물이듯 ‘주의’는 사상이 하나의 체계로 구축되며 시작된다. 그래서 이동을 감행하는 사상가에게 ‘~주의’는 사상이 멈춰선 자리, 즉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전망이 상실된 90년대에, 그것도 쉰이 넘고 나서야 그는 코뮨주의자가 되었다. 바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이야기다.



비평은 위기적 상황으로 자기를 내모는 것

가라타니 고진은 1941년 일본의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10대에 문학 작품을 탐독했지만 문학을 하나의 장르로 다루는 데에 반감을 품고 있었으며, 결국 도쿄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적 행방은 문학비평가로 시작되었다. 스물아홉에 가라타니 고진은 <소세키론>으로 군조오 신인문학상을 거머쥐면서 문학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물론 이 시기 그는 영문과 대학원을 진학했지만 경제학과 출신의 문학비평가라는 다소 어색한 그의 이력을 두고 의아해할 필요는 없다. 경제학이든 문학이든 그는 분과학문을 한다는 의식을 갖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는 형이상학과의 싸움이 절실한 문제였다.

형이상학은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이념을 발견한다. 한국에서 널리 읽힌 그의 초기 저작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8)과 『일본근대문학의 기원』(1980)은 형이상학과의 대결이라는 문제설정을 경제학과 문학이라는 각기 다른 방면에서 펼쳐낸 것들이었다. 그는 이 저작들에서 자본주의와 근대문학을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장치로 해명하여 근대인들을 속박하는 관념의 그물을 걷어내고자 했다.

아마도 가라타니 고진이 스물여섯에 발표한 첫 번째 평론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는 이런 점에서 그의 사상적 원점을 이룬다고 하겠다. 그 일절을 주목하자. “사상과 사상이 격투한다고 보일 때도, 실상은 각자의 사상적 절대성과 각자의 현실적 상대성이 모순되는 지점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상이 각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곳에서 결전이 이루어진 예는 한 번도 없다.”

확실히 가라타니 고진은 ‘비평가’로서의 자기의식을 갖고 출발했다. 그에게 비평은 다른 텍스트에 기대어 자신의 입장을 전하거나 편을 짓는 작업이 아니었다. 비평이란 사상의 결전이 치러지는 장소 밑바닥에서 이뤄지고 있는 역할극을 끝까지 주시하는 일이다. 대치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입장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대치할 수 있는 조건, 그 무의식적 구조를 해명하는 일인 것이다. 그 조건과 구조를 밝힌다면 날이 선 온갖 사상적 입장들은 형이상학의 성채를 두르고 있던 부속물임이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비평에는 으레 자신은 상처입지 않으면서 상황 밖에 서 있다는 푸념이 따르곤 한다. 하지만 고진은 홀로 옳은 곳에 서 있고자 비평하지 않았다. 그에게 비평(critique)이란 위기적인(critical) 상황으로 내몰리는 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비평 대상만이 아니라 비평하는 자신도 그래야 한다는 점이다. 사상가가 자신의 발화를 자명하다고 여겨 더 이상 거리낌을 갖지 않는다면, 사상은 어느새 상업성을 띤 선교가 되고 만다. 가라타니 고진에게 비평이란 자신을 불명료함으로 내몰아 선교사의 입장을 피하는 일이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가라타니 고진이 비평가로서 자신의 사상을 개척해나가던 60년대 후반은 서구 지성계에서 소련식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시기이자 반체제 운동이 번져나가던 시기였다. 전공투의 역사를 지닌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 그는 다만 난무하는 여러 입장들을 곁눈으로 흘기며 자신의 속도로 걸어갔다. 당시 제기된 인간적 마르크스주의도 반체제 운동이 보여준 열정도 그에게는 ‘이념이 만들어낸 병’에 불과했다. 그 무렵의 학생들처럼 거리로 나섰으나 이내 회의를 느끼고는 이념을 걷어낸 자리를 끝까지 응시한다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어떠한 ‘주의자’도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에게 입장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입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했다.



태도 전환

이후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적 노정은 『탐구』에서 결실을 이룬다. 형이상학과 맞서 싸운다는 버거운 작업으로 삼십대에 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지만, 그는 『탐구』를 통해 자신의 스스로 병을 치유했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그는 잡지 『군조우』에 『탐구』를 연재했다. “내가 『탐구』를 연재하면서 계속 질문했던 것은 ‘사이’ 혹은 ‘외부’에서 살아가기 위한 조건과 근거였다 할 것이다.”(『탐구Ⅰ』후기) 가라타니 고진은 『탐구』에서 ‘타자의 문제’를 해명하여 역사에 대한 목적론을 부정하면서도 그 반편향으로 해체주의 마냥 어려운 지적 수사에도 빠지지 않는 ‘삶의 비평’을 일궈냈다. 90년대로 넘어가기 직전에 나온 이 책을 두고 일본의 사상지 『유레카』는 90년대 일본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정작 가라타니 고진은 90년대에 들어서자 『탐구Ⅲ』을 쓰겠다던 계획을 중단한다. 가라타니 고진이 90년대 이후 쓴 저작들을 보면 무언가 적극적인 발언을 하겠다는 충동이 가득 묻어난다. 하나의 선명한 입장을 갖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태도 전환이 응축되어 있는 저작이 바로 10년간 거듭해서 써낸 『트랜스크리틱』(2000)이다. 『트랜스크리틱』은 확신으로 씌어진 책이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광명을 보기 시작했다”고까지 표현하는데, 사상의 구석진 자리를 응시하려던 과거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확실히 가라타니 고진은 1989년까지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경멸해 왔다. 그는 어떠한 입장에도 속하지 않고 비평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권이 몰락하자 자신이 과거 마르크스주의적 정당이나 국가를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이 지속된다는 전제 아래 유효했음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사회주의는 역사의 ‘거대 서사’와 함께 종언했지만, 아울러 몇 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사회주의의 종언이 서구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서사’가 등장했으며, 민족주의와 원리주의라는 ‘서사’가 부활했다. 아울러 모든 이념을 조소하는 냉소주의도 만연했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사회주의가 현실적으로 끝났을지언정 사상적으로는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자본주의를 극복할 현실적인 기획에 몸을 담았다. 90년대의 상황이 학문적으로는 회의론적 상대주의가 범람하고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의 우월성이 구가되었으나 그것들이 점차 파괴력을 잃어갔다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가라타니 고진이 시대의 변화와 아울러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했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구축된 실천의 방향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전망을 가다듬는다. 기억해야 할 대목은 그가 지극히 이론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폐절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론적인 무지를 바탕으로 한 실천은 결코 변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정의감과 연민에 기반한 열정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토대로 삼는 논리구조를 해명할 때 그것을 극복할 단서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교환’에 내재된 근원적인 패러독스로 생겨났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지양할 코뮤니즘 역시 종교적이거나 유토피아적인 상상이 아닌 새로운 교환원리를 통해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선 자본주의를 스테이트(state, 국가)와 네이션(nation, 공동체)과 겹쳐 사고한다. 89년 이후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자신의 정식을 설파하는 데에 경주했다. 그것들 각각은 등가교환, 상호부조, 강탈이라는 교환원리에 대응한다. 먼저 네이션 안에서는 ‘상호부조’가 이루어진다. 등가교환에 따르지 않고 공동의 감정에 기대 서로를 돕는다는 교환원리이다. 스테이트는 강탈을 자신의 교환원리로 삼는데, 그것이 교환인 까닭은 지속적으로 빼앗기 위해 수탈당하는 이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의 기원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는 시장원리에 따라 화폐를 통한 등가교환을 취한다.

이렇듯 상이한 교환원리가 합쳐져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삼위일체를 이룬다. 자본주의가 강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자본주의를 깨려고 하면 국가적인 관리가 뒤따르거나 네이션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래서 우리는 공황에 직면하면 국가기구가 전면화되고 민족주의가 활성화되는 현실을 목도한다.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강력한 스테이트로 자본주의를 타도하려던 것이 레닌주의이고, 네이션으로 자본주의 극복을 꾀했던 것이 파시즘이다. 이들 모두는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사슬을 끊지 못했기에 역사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세 가지 교환원리에 기반해 있는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새로운 교환원리를 제안한다. 그것이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다.

또 한 가지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이론적인 단서는 자본의 자본화 과정, 즉 화폐(M)-상품(C)-화폐'(M')에 있다. 여기에는 두 차례 개입의 여지가 있다. 첫째는 M-C의 계기, 즉 화폐가 상품으로 전환되는 순간이고, 두 번째는 C-M'의 계기, 즉 상품이 다시 잉여가치가 부가된 화폐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자본의 관점에서 이것은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구매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을 다시 파는 일이 된다. 무산대중에게 이것은 노동자가 되고 소비자가 되는 일로 나타난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 M-C-M'의 과정을 끊자고 제안한다. 즉 일하지도 상품을 사지도 말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대중이 일하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정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까닭에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의 연합’을 제시한다.



사상의 실패인가 새로운 사상인가

가라타니 고진은 이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90년대 후반부터 그는 본격적인 실험에 나섰는데, 그것이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 운동이다. NAM 운동은 그가 제안한 최초의 현실운동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NAM 조직을 만들고, 각 지역의 NAM 지부 사이에서 네트워크를 꾸려냈다. 간단히 말해 그가 제안한 NAM 운동은 새로운 교환원리인 어소시에이션에 기반하는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 운동이었다. 어소시에이션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와 닮아 있지만 잉여가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공동체의 교환원리인 상호부조와 유사하지만 배타적이지도 구속적이지도 않다. 이러한 발상이 단지 낯설지만은 않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통화 운동은 원리적으로 어소시에이션이다. 그가 『가능한 코뮤니즘』이나 『NAM 원리』에서 제시한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운동 역시 자본이 되지 않는 화폐를 매개로 삼는 지역통화 운동의 일종이다. 그리고 NAM 운동은 노동자로서의 소비자와 소비자로서의 노동자의 연대를 목표로 삼는다. 화폐 경제에서 판매와 구매, 생산과 소비는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분리는 노동자와 소비자의 분리, 나아가 노동운동과 소비자운동의 분리를 낳는다.

그러나 소비자운동은 실상 입장이 바뀐 노동운동이며, 노동운동 역시 소비자운동인 동안 자신의 국지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소비과정은 육아, 교육, 여가 등 생활세계 전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을 통해 자본주의 바깥에서 생활의 지평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그가 기획한 현실운동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가라타니 고진은 FA(Free Association)라는 또 하나의 조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라타니 고진은 2002년 「FA선언」을 통해 NAM을 해산시킨다. 자신의 기대와 달리 NAM은 그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한 지식인들의 모임이 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FA선언」에서 밝힌 해산 이유 역시 NAM 운동을 지속할 운동체가 부재하다는 것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현실에서 보여준 시도와 실패는 일본과 한국에서 그를 둘러싼 평가가 갈리는 지점이 되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 평가는 예순이 넘은 가라타니 고진의 나이를 상기시키며 “가라타니 고진도 이제 다했다”는 것이 주종을 이룬다. 이것은 정녕 사상의 실패인가. 어떤 의미에서 그의 실패는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 않았을까. 그 사실을 알고도 그는 실패를 감행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현실적인 운동의 실패를 사상의 실패라고 단정짓는 것은 사회주의의 현실적인 몰락 이후 새로운 사회주의를 사상적으로 꾀했던 가라타니 고진에게는 공평치 못한 일이리라.

가라타니 고진은 이제껏 여러 사상적 입장에 가격을 매겨 왔다. 이제 자신의 사상적 궤적을 제작비이자 홍보비 삼아 하나의 입장을 상품으로 내놓았으니, 그것은 팔릴 것인가. 쉽지 않아 보인다. 나 역시 지금의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 호의적이고 싶지 않다. 그의 시도는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의 긴장감을 놓쳤으며, 그의 실패는 그마저도 이론적 완결성을 위해 희생되었다. 그의 사상 언저리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늘과 불쾌함을 더 이상은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한 사상가를 진정 대면하려면 그 사상이 지닌 탄성을 제멋대로 줄여놓고 쉽사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2007년 가라타니 고진은 재직 중이던 컬럼비아 대학과 긴키 대학에서 물러나 일본에서 지인들과 교류하며 또 한 번의 사상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하지만 자신의 명성에 사로잡히지도,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않기에 그는 건강하다. 그리고 이 말도 보탤 수 있겠다. 기꺼이 실패하는 것. 그것이 사회주의자의 역사적 역할이다. 사회주의자는 하나의 입장에 관한 이름이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자들이 공유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근본적인 사고는 현실에서 실패할지언정 불씨를 남긴다. 그 불씨는 타오를 것인가.(윤여일 /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07.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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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과학은 어떻게 말하는가

언제나 그렇지만 매주 책들은 쏟아지고 그 중 주목할 만한 책들이 10여 권 정도 언론의 리뷰를 탄다(단평까지 포함하면 20-30권쯤 되겠다). 그 중에서 내가 관심을 갖는 책들은 물론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여러 가지 여건이 관심을 제약하기 때문이다(그러고도 '책벌레'란 소리를 듣는다!). 금요일자 한겨레의 북리뷰들을 대충 훑어보다가(읽을 시간도 없다!) 이 주의 책으로 혼자서 꼽은 건 앨런 그로스의 <과학의 수사학>(궁리, 2007)이다. 기념비적인 책이 아닐 경우에 내가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의외성'이다. 즉, '예기치 않은 책'에 아무래도 눈길을 주게 되고 <과학의 수사학>은 그런 책이다. 이때 수사학은 물론 '과학 수사'와는 전혀 무관한 '레토릭'을 말한다. 부제대로 하자면, '과학은 어떻게 말하는가'를 다룬 (아마도 드문) 책이다. 원저는 지난 1990년에 출간됐다고 하니까(하버드대출판부에서 나왔다) 나이 좀 먹은 책이다. 관련리뷰를 먼저 읽어두고 언제쯤 구매할/읽어볼 것인지 가늠해본다.  

한겨레(07. 03. 09) 과학도 철학처럼 ‘설득의 산물’

백과사전은 ‘과학’을 “이제까지 아무도 반증을 하지 못한 확고한 경험적 사실을 근거로 한 보편성과 객관성이 인정되는 지식의 체계”라고 정의한다. 이런 규정은 “사상이나 감정 따위를 효과적˙미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문장과 언어의 사용법을 연구하는 학문”인 ‘수사학’으로 분석 가능한 정치적인 것, 사법적인 것, 나아가 철학, 문학비평, 역사 등과는 달리 과학에 절대적 신화나 특권을 부여한다.

<과학의 수사학>(궁리 펴냄)은 과학이 아리스토텔레스 유래의 고전적 정의와 달리 수사학적 분석 대상이 가능하다는 걸 ‘설득’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수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 앨런 그로스는 과학적 주장들도 단지 ‘설득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과학이 ‘자연의 원초적 사실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지식이 아니며, 문제가 선택되고 결과가 해석되는 과정은, 설득을 통해서만 중요성과 의미가 구축된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수사학적이라는 것이다. 수사학적 관점으로는 과학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다.

뉴턴은 1672년 기존의 관점을 뒤집는 광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데카르트가 <방법론 서설>의 부록에서 ‘백색광이 기본이며 색은 백색광의 변형으로 이차적인 것’이라고 정의한 것을 ‘백색광은 이차적인 것으로, 가시 스펙트럼의 모든 빛들이 합성된 결과’임을 밝힌 논문이다. 그러나 뉴턴은 전통적 관점·방법들과 대립함으로써 ‘설득’에 실패했다. 결정적 실험의 설득 능력은 실험을 재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음에도 , 뉴턴의 논문은 결정적 실험에 대한 어떤 그림도, 분명한 실험방법들도 결여돼 있었다. 30여년 지나 1704년 뉴턴은 <광학>을 출간해 2차 시도를 한다. 뉴턴은 “데카르트가 한 일은…훌륭한 발걸음이었다.…만일 내가 더 멀리 내려본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라며 <광학>에 역사적 연속과 논리적 불가피성이라는 인상을 부여했다. 또 세밀한 실험을 거듭해 ‘압도적 현존감’을 창조했다. 그는 <광학>의 말미에 수사학적 질문을 쏟아내 실험에 의해 확실해진 것과 불확실한 채로 남은 것을 구분함으로써 질문 이전에 제시된 결론들의 ‘과학적 지위’를 확고히 했다. 그로스에게 뉴턴의 <광학>은 ‘수사적 개종’을 통해 성취된 ‘수사학의 걸작’이다.

저자는 과학에는 종종 잘 숨겨져 있지만 수사학이 내포돼 있으며, 정치연설과 학술논쟁, 과학논증의 영역에는 서로 닮은 꼴(유비)이 작동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진화생물학에서 새로운 ‘종’의 발견은 자연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나칠 정도의 구분과 분류에 대한 설득을 통해 ‘창조’됨을 보여주고 있다. 또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의 회고담 <이중나선>이 담고 있는 설화 서사구조와 왓슨과 크릭의 논문의 문체를 분석하면서 “DNA 구조의 실재는 설득을 위해 사려분별 있게 사용된 말과 수사, 그리고 그림의 결과들”이라는 ‘급진적 주장’을 내놓는다.

그로스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이성의 개종’을 요구한 수사학적 혁명으로 해석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천문학이 이성의 혁명이기 위해서는 정밀관측과 틀림없이 일치하고 정확한 물리학에 부합하는, 수학적으로 깐깐한 체계가 돼야 했지만, 이런 이상적 설명은 그가 죽고나서 1세기 이상이 지난 뒤에야 가능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체계가 증거와 논증이 아니라 ‘선전, 감정, 임시방편의 가설, 선입견에 대한 호소’ 등 비이성적 수단들에 의해 지지됐음을 저자는 당시 텍스트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가 과학과 수사학을 각각 다른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의 융합을 들고 있음은 과학저술의 전범인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뉴턴의 <프린키피아> <광학>, 왓슨의 <이중나선>, 아인슈타인의 논문들을 수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저자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이근영 기자)

07. 03. 09.

P.S. 최근 '수사학' 붐이 얼마간 조성되고 있지만, <과학의 수사학>은 그러한 붐에도 한몫 낄만 하겠다. 책은 궁리출판사에서 내는 '궁리하는 과학'의 두번째 책인데, 왓슨의 <이중나선>(궁리, 2006)이 첫번째 책이었고 이번에 같이 나온 듯한 로저 트리그의 <인간 본성과 사회생물학>(궁리, 2007)이 세번째 책이다. 트리그의 책에 대한 리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트리그의 책들은 몇 권 더 소개돼 있다), 내게 더 친숙한 책은 <과학의 수사학>이 아니라 <인간 본성과 사회생물학>이다. 그건 예전에 사회생물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책의 원서를 모셔둔 지가 벌써 오래됐기 때문이다. 'The Shaping of Man'(1982)이 그 원서이고 부제는 '사회생물학의 철학적 측면'이다(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저자는 생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이다). 186쪽의 얇은 책인데, 국역본은 333쪽. 책이 폼나게 나오긴 했으나 이런 식의 분량 '인플레'는 슬슬 염증이 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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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81)

며칠 미루어두었던 연재를 마저 해치우기로 한다(자꾸 미뤄지는 걸 보면 이것도 확실히 '일'인 모양이다. 아르바이트 아닌 아르바이트?). 이번에도 고른 책들은 일단 최근에 나온 책들 다섯 권이다. 개인적인 관심범위 안에 놓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책들을 꼽아보자는 게 이 연재를 끌고가는 나의 '원칙'이다(비록 모든 책에 적용되기는 힘들더라도). 단순하게 나열하는 건 재미가 덜하기에 내러티브를 부여하자면 '멸종의 역사에서 철학까지'이다. 내일 지구에 멸망이 와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런 무의미한...

 

 

 

 

제일 먼저 꼽을 책은 <멸종의 역사>(아고라, 2006)이다. '지구를 지배했던 동물들의 삶과 죽음'이 부제니까 제목의 '멸종'은 비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 '멸종'이다. 멸종을 다루고 있는 책들은 리처드 리키의 <제6의 멸종>(세종서적, 1996) 이후에 드물지 않게 출간되었다. 멸종의 역사가 10년내 사뭇 달라졌을 리는 없는 만큼 초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내용상의 대차는 없을 거라고 본다.

No Turning Back: The Life and Death of Animal Species Cover

이번에 출간된 책도 "지구가 탄생하고 30억 년 전에 생물체가 살기 시작한 이래 오늘날까지 생명의 역사를 다룬다. 책은 지구에 살았던 동물들의 생태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곧 멸종의 과정을 이야기 하는 것임을 밝힌다. 지구에 처음 생물이 나타났을 때 있었던 종 중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종은 1,000분의 1밖에 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종이 나타난 지 1,000만 년 안에 멸종했다. 이 수치는 지구에 나타났던 생물 중 99퍼센트가 멸종했음을 뜻한다." 문학이론가 프랑코 모레티가 쓴 비유이지만, 진화사는 달리 '도살장의 역사'이다.

책의 저자는 리처드 엘리스인데, 동물학자이자(보다 정확히는 '해양생물학자') 미국 최고의 자연사 작가라고 한다. "리처드 엘리스는 놀라운 상상력과 뛰어난 글솜씨로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에 대해 이야기한다."라고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추천하고 있으니까 신뢰할 만한 책이기도 하고. 그가 어떤 책을 쓰냐면 아래와 같은 책들을 쓴다. 말 그대로 '해룡'인가, 아님 '어룡'?

 

다시 <멸종>으로 돌아오면 "책은 현재가 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페름기, 트라이아스기, 백악기에 일어났던 다섯 차례의 대량 멸종에 이은 제6의 대량 멸종이라고 말한다. 특히 제6의 대량 멸종은 진화와 멸종의 개념을 아는 유일한 종인 인간이 자연의 균형을 철저하게 뒤집은 결과라고 지적한다. '죽음의 기록'이기도 한 지구 생명의 역사를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풀어내면서 생명체의 소중함을 얘기하는 동시에 인류의 종말을 경고한다." 네들 다 끝났어!

 

 

 

 

사실 저 우주공간에서 빛나는 '항성'들 또한 '역사'를 갖는 것이니 이런 멸종의 위협이 구체적인 '실감'으로 다가서지 않을 수도 있겠다(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좀더 '노골적인' 경고를 기대한다면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좋은생각, 2006)을 펼쳐들어야 하는지도(최근에 영화도 개봉된 듯하다). 너무 불편하다면, 몇년 전 출간되어 파문을 불러 일으켰던 <회의적 환경주의자>(에코리브르, 2003)와 맞대결시켜보면서 읽는 것도 한 가지 방책이겠다. 그 길로 더 나가면 생태학적 위협(니콜라스 루만)과 위험사회(울리히 벡)를 경고하는 사회학자들의 책까지 (다시) 챙겨볼 수도 있겠다. 오버인가?

 

 

 

 

두번째 책은 도널드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까치, 2006). 저자는 예일대 교수라고 하고(<전쟁과 인간>이 이미 국역돼 있다) 국내 그리스/로마사 권위자들이 우리말로 옮겼다. 오전에 구내서점에 가보니까 '명품서적' 30% 할인판매장에 이미 책이 나와 있었지만, 형편상 페이지를 들춰보는 것에 만족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려면 여러 전쟁사들은 놔두고서라도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범음사) 정도는 같이 읽어줘야 할 텐데, 그럴 만한 여유를 내기가 어디 쉽겠는가. 하여 출간소식을 승전소식처럼 전하는 데 만족하기로 한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그리스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흐름을 뒤엎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대의 투키디데스의 역사서를 뛰어넘어 2,400년 전의 전쟁을 오늘날의 세계에도 적용되는 보편적 질서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냈다"고. 마저 인용하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대제국의 흥망, 매우 이질적인 두 사회와 삶의 방식 사이의 충돌, 인간사에서 지성과 우연의 상호 작용, 리더십의 가능성과 한계를 알려준다. 이미 학자를 대상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지은이는 일반 독자가 즐겨 읽을 수 있도록 쉽고 흥미로운 서술로 사라져버린 세계를 풍성하고 자세하게 그려낸다." 인간과 국가의 흥망을 집약하고 있는 것이 전쟁사인 만큼 흥미롭게 읽을 법하다. 무슨 '배틀'들에 몰입하시는 분들이 이런 쪽으로 방향을 트는 건 어떠실지?   

저자인 케이건 교수는 1932년 리투아니아 태생의 원로 역사학자이다. 1958년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69년부터 예일대에 봉직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2003년에 출간된 그의 최신작이다. 알라딘의 저자 소개에는 그가 2002년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인권 메달'을 수상한 걸로 돼 있는데, 그가 받은 건 'National Humanities Medal'(국가 인문학 메달)이니까 인권과는 무관하다.

 

 

 

 

세번째 책은 김시천 교수의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웅진지식하우스, 2006). 국가간의 이기주의는 간혹 전쟁을 낳기도 하지만, 리뷰들을 얼핏 보니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이기주의는 소소한 개인, 곧 소인들의 이기주의이다. '진정한 개인의 행복을 찾은 동양 지식인들의 내면 읽기'란 부제가 말해주는 바 그대로. 사실 공자왈 맹자왈의 대종은 군자/대인에 관한 것이라 생각되지만 우리 인간의 대종은 아무래도 소인들이 아니겠는가. 책은 이 소인(배)들의 (정당한) 탐욕과 권리를 옹호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소개에 따르면, "동양의 이기주의란 씨실과 동양고전이란 날실을 엮어 동양적 이기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았다. 동양 이기주의의 역사적인 흐름을 만들고, 대인의 큰 이기주의와 소인의 작은 이기주의에 대한 명확한 구분과 그들의 역할을 명시했다... 책은 소인의 작은 이기주의, 즉 사회적 이기주의를 보다 당당하게 누리자고 권장한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이기적으로 살아보지 못하고 국가권력에게 자신을 희생했던 소인들에게 ‘당신들은 대인이 아니라 소인이니 권리를 내세우며 오늘 하루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보라’고 말한다."

저자는 소인을 '작고 평범한 사람들'로 평범하게 정의한다. 예전에 한 국가의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들도 스스로가 '보통사람'임을 내세워 난감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이 그런 양반들의 자기변명서로 활용될까 걱정된다(하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최근에 '행복한 이기주의'는 한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인간됨의 그릇이 작아 '소인'이라고 하지만,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와 얼만큼 겹쳐지면 어떻게 구별되는가에 대해서도 합당한 관심이 기울여져야 할 것이다. 아직 실물을 보지 못한지라 책이 그런 내용까지 다 포괄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번째 책은 미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인 힐러리 퍼트넘/퍼트남의 <존재론 없는 윤리학>(철학과현실사, 2006). 국내엔 <이성-진리-역사> 이후에 그래도 몇 권 소개돼 있는 편인데, 퍼트넘은 "캘리포니아 대학(로스엔젤레스)에서 H. 라이헨바흐에게 과학철학을 배우고 하버드 대학에서 W.V.O. 콰인에게 현대 논리학을 배운" 미국의 주류/정통파 철학자로서 1965년 이후 하버드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그러니까 존 롤즈와 넬슨 굿맨 등의 그의 과 동료들이다. 한편으로 또 다른 동료인 저명한 철학자 스탠리 카벨의 책들이 소개되지 않는 건 상당히 기이한 일이다).

사실 윤리학 분야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책들은 피터 싱어의 책들이다(싱어의 책들은 열댓 권 가량이 출간됐다). 하지만, 눈길을 끈 건 퍼트넘의 책인데, '존재론 없는 윤리학'이란 제목부터가 뭔가 유혹적이지 않은가?  

 The Collapse o fhte Fact/Value Dichotomy and other essays

물론 퍼트넘의 전작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 책 또한 상당히 '딱딱한' 책일 거라는 걸 미리 점쳐볼 수 있다. 그래도 고통을 좀 덜어주는 건 200쪽 분량의 아주 얇은 책이라는 것. 그의 전작 <사실/가치 이분법의 붕괴>와 합본을 해야 보통의 '철학서' 분량이 된다. 그 얄팍한 분량에 유혹되어 책을 사두긴 했는데, 언제나 정독하게 될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그래도 <수학의 철학> 같은 책에 비할 바가 아닌 건 분명하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스페인의 국보급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5)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2006)이다. 특이한 이름 때문에라도 기억하게 되는 27세에 마드리드대학 철학부 정교수가 된 '천재'였다. 소개에 따르면 알베르 카뮈로부터 '니체 이후 유럽 최고의 철학자이자 문장가'라는 찬사를 받았다고도 하는데, 책은 그의 대중 철학 강의를 엮은 것이다. 그러니까 오르테가 이 가세트 버전의 철학입문서이다. "서양 철학사를 꿰뚫는 오르테가가 철학이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철학을 해야 하는지를 친밀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철학이란 우리의 삶과 멀지 않으며, 자신의 삶에서 철학이 생성되면서 나 역시 철학 세계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라는 게 이 책에 대한 나머지 소개이다.

작년봄에 <대중의 반역>이 다시 번역돼 나와서 한번 언급할 기회가 있었던 듯한데, 내가 갖고 있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이미지는 대표적인 엘리트주의 혹은 귀족주의 철학자라는 것이다. 그런 첫인상을 심어준 이는 <예술의 비인간화> 등에 대한 서평을 썼던 문학평론가 이동하이다. 두번째 인상은 러시아 체류시 받은 것인데, 러시아어로는 대표작들이 문고본으로 출간되어 있어 그 지명도를 짐작케 했다. 그러니까 오르테가 이 가세트 정도를 읽는 건 '교양'에 해당한다는 것. <철학이란 무엇인가>는 그 '교양'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겠다. 내가 더 기대하는 건 언젠가 을유문화사의 문고본으로 출간되었던 <돈키호테의 성찰>이 세련된 장정으로 재출간되는 것이다(저자 자신이 멋쟁이이기도 했으니까).

마지막에 덧붙인 책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리더스북, 2006)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문체가 니체에 버금한다고 하여 떠올려본 것인데, 철학서는 아니고 어빈 얄롬이라는 정신과 의사의 소설이다. 책이 친숙한 건 예전에 교보문고의 철학코너에서 뻔질나게 보던 책이어서이다.

소개를 옮겨오자면, "서구 사상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 19세기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에 지적 상상력을 더해 집필한 팩션"으로서 "음울한 천재 철학자 니체가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브로이어와 벌이는 화려한 지적 공방을 그린다. 1992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이듬해 '커먼웰스 베스트' 픽션 부문 금메달을 수상했고, 이후 13년간 장기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이다." 그러니까 니체와 프로이트에 관한 이야기들의 성찬일 텐데, 장기 베스트셀러였던 만큼 철학책보다 철학자에 더 흥미를 갖는 독자에게라면 자신있게 권할 만하겠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이야기를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자. 그의 눈물이 비명이 되기 전에...

06. 0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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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시카고 보이스는 어떻게 창출되었는가?

* 이번 주 한겨레 '책 소개'에는 매우 흥분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바로 이브드잘레이와 브라이언 가스의 '궁정전투의 국제화'라는 책이다. 제목만 봐서는 엘리아스의 '궁정사회'의 핵심적 내용이 전 지구화라는 현대적 유행어의 비단 옷을 덧입고 우리에게 환생한 듯하다. 저자들은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이라는 두 학자의 시카고 학파의 권력-지식 논리가 어떻게 라틴 아메리카에서 확산될 수 있었는지를 '시카고 보이스'라는 탁월한 개념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달리 말한다면 저자들은 중심부 국가의 지식권력의 논리가 주변부로 어떻게 퍼져가는가를 권력-지식의 관계적 논리로 분석한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들은 이러한 논리가 아시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 같다.

* 한겨레(2007. 2. 23)  / ‘시카고학파’ 세계 권좌 이렇게 올랐다

 

케인스학파에 밀리자 국외 인재 끌어들여 후학 배출
신자유주의 전파자로 양성된 칠레 경제학자들 ‘시카고 보이스’
‘미국 유학’ ‘전문지식’이라는 무형 자본으로 자국 권력 장악
중심부 국가 지식수출이 끼친 권력관계 파헤쳐
» <궁정전투의 국제화> 이브 드잘레이·브라이언트 가스 지음. 김성현 옮김.그린비 펴냄·2만원
‘시카고 보이스’는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파가 길러낸 칠레의 경제학자들을 가리키는 별칭이다. 이들이 유명해진 계기는 피노체트 쿠데타였다. 1973년 살바도르 아옌데의 좌파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은 과거의 권력 중심에 포진해 있던 엘리트 세력을 추방·살해하고 시카고 유학파 경제학자들을 등용했다. 군사력을 앞세운 군부세력과 미국식 경제학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신진 엘리트는 동맹관계를 구축했다. 시카고 보이스는 ‘학문의 모국’에서 배운 대로 칠레 경제를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재편했다. ‘미국 유학’과 ‘전문 지식’이라는 무형의 자본은 이들에게 국가권력의 중추를 담당할 기회를 제공했다. 옛 엘리트를 몰아내고 새 엘리트가 들어앉는 권력변동의 과정은 지식을 무기로 삼은 권력투쟁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

시카고 보이스를 낳은 시카고학파의 탄생과 진화는 학문 세계 내부의 권력투쟁을 좀더 고전적인 방식으로 알려준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시카고대학 경제학과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학문적 열세를 면치 못했다. 하버드대학을 비롯한 이른바 ‘아이비리그’의 케인스주의가 국가의 경제정책을 좌우하던 때에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자들은 통화주의라는 이름의 반케인스주의 이론을 개발해 나름의 영역을 확보하고자 했다. 경제학계의 영토를 두고 새로운 무기로 전쟁을 벌인 셈인데, 강력한 적을 공략하지 못한 시카고학파는 국외로 눈을 돌려 인재를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시카고 보이스는 시카고학파의 국제전략이 산출한 대표적 후학 집단이었다. 외부에서 자원을 동원한 시카고학파는 1980년대 신보수주의 정권의 수립과 함께 케인스주의자들을 제압하고 학문권력을 장악했다.

  Constitution of Liberty (Routledge Classics)Capitalism and Freedom: Fortieth Anniversary Edition

 

  <궁정전투의 국제화>는 국가권력을 둘러싼 지식투쟁의 양상을 국제적 차원에서 조명한 책이다. 시카고학파의 형성과 시카고 보이스의 출현 과정은 그 투쟁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다. 지은이인 프랑스 사회학자 이브 드잘레이와 공저자인 미국의 법학자 브라이언트 가스는 라틴아메리카 네 나라 칠레·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를 사례로 삼아 지식의 수출과 수입이 각 나라의 국가권력의 변동과 맺는 관계, 특히 중심부 국가의 지식이 주변부 국가의 권력 구성에 끼치는 영향을 규명하고 있다. 지은이들은 이 과제를 단순히 이론적 차원에서만 살피지 않고, 관련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면접 조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피고 있다. 이들이 만난 주요 인사는 라틴아메리카의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수백명에 이른다.

The Internationalization of Palace Wars: Lawyers, Economists, and the Contest to Transform Latin American States (Chicago Series in Law and Society)Professional Competition and Professional Power

 

»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을 전복한 칠레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왼쪽)와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파의 대부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먼이 키운 칠레 출신 경제학자 집단 ‘시카고 보이스’는 피노체트 정권에서 옛 엘리트 집단을 제치고 국가권력을 중심으로 진입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들이 말하는 ‘궁정전투’란 전문 지식인들이 국가권력의 한 축을 장악하려고 벌이는 권력투쟁을 가리킨다. 이들의 모습은 궁정 내부에서 권력을 놓고 벌이던 귀족들의 정치투쟁과 유사하다. 지배집단 내부의 우위를 점한 세력과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인 세력의 경쟁을 국제적 차원에서 조명한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책의 분석을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적 지배계층은 법률 지식을 독점한 법률가들이었다. 법률적 전문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고 자본이었다. 1970년대를 거치며 법률 전문가들은 경제 전문가들에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경제학이 학문자본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 것인데, 시카고 보이스는 이들을 대표한다.

‘궁정전투’란 지식인의 권력투쟁

전문 지식은 국제 지식 시장을 통해 유통된다. 유통의 루트를 장악한 것은 헤게모니 국가, 곧 국제사회의 중심국가인 미국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이 누렸던 학문의 헤게모니적 지위를 2차대전 이후 미국이 획득했다. 시카고 경제학파의 국제전략이 보여주듯이, 미국은 지배적 학문을 주변부 국가에 수출하고, 주변부 국가의 지식 엘리트는 중심부 국가의 학문을 수입해 권력경쟁에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중심부 국가 내부에서 벌어진 학문적 갈등도 주변부 국가에 함께 수출되며, 갈등의 수출은 학문권력을 둘러싼 투쟁 전략의 수출도 동반한다. 주변부 국가는 지식의 내용뿐만 아니라 지식계의 갈등과 전략까지 인수하는 것이다. 이 수출·수입 관계는 아르헨티나의 페소화가 미국의 달러화에 연동되듯이 일종의 연동현상을 일으킨다. 중심국의 지식이 변동하면 그에 맞추어 주변국 지식인의 학문적 입장이 뒤따라 바뀌게 되는 것이다.

지은이들은 이런 현상이 지배권력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는 저항세력 안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발견된다. 억압적 정치권력에 반대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하는 지식인들도 중심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권운동이나 시민운동은 또다른 형태의 상징자본을 축적하는 계기로 활용된다. 상징자본을 충분히 확보한 지식인들은 새로운 지배층으로 등장한다. 이 새로운 지식권력은 주로 인권법에 기댄 법률가들이다. 인권담론은 권력 투쟁의 수단이 되고 권력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바뀐다.

 지은이들이 이런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동원한 논리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창안한 것들이다. 지식을 자본으로 이해하는 것부터가 부르디외의 성과다. 특수한 지식이 보편적 지식의 지위를 획득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도 부르디외적 발상의 연장선에 있다. 부르디외의 사회학적 통찰은 이 책의 논리를 구성하는 핵심 방법론인 셈이다.

 

 

 

 

 

주변국 ‘지식 중심국’ 따라 출렁

이 책의 본문은 라틴아메리카 네 나라의 경우로 사례를 한정하고 있지만, 지은이 드잘레이가 새로 쓴 한국어판 서문은 본문의 분석이 아시아에서도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카고 보이스가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 아래서는 ‘버클리 마피아’로 바뀌었다는 점이 다를 뿐 본질적 과정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심국 미국에서 가져온 전문지식을 중개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이득으로 자본을 불리고 다시 그 자본으로 권력을 확보하는 그 메커니즘은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상에서 통상·경제 관료들이 경제학적 지식으로 우월한 지위에 올라선 뒤 국민과는 상관없이 협상을 좌우하는 현실은 이 책의 한국적 활용 가능성을 가늠케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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