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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2007. 6. 1)   / [헤르메스의 빛으로](20)라틴어, 가난함을 넘어
입력: 2007년 06월 01일 15:36:11
그리스어에 압도당한 초창기

라틴어는 로마의 동남쪽에 위치한 라티움(Latium) 지역의 말이었다. 계통상으로는 산스크리트어, 희랍어, 게르만어와 함께 인도-유럽어군에 속한다. 라틴어는 현대 서구의 주요 언어의 모태가 되는 말이면서 동시에 학문, 종교, 문화의 배경에서 아직도 맹주 노릇을 단단히 하고 있는 고전어(古典語)이다. 서구의 근대어인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로마니아어, 불어 등이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물론 직계는 아니지만, 독일어, 영어의 발전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또한 예컨대 법학, 의학, 신학, 문학, 사학, 철학은 물론 자연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주요 개념과 술어의 대부분이 라틴어라는 점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비록 지금은 사어(死語)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부잣말인 라틴어도 처음부터 부자는 아니었다. 역사학자 수에토니우스의 말을 들어보자.

라틴어로 학문하기의 모범을 보여준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1483년에 지롤라모 디 마테오가 필사한 수고본)
“로마에서 글을 다루는 학문(ars grammatica)이 처음부터 제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다. 이 학문이 제대로 대접을 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했다. 그 때는 나라(의 문화)가 척박했고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기에, 자유교양 학문에 큰 힘을 쏟아부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이 학문의 초창기 모습은 따라서 특기할 만한 사항이 없다. (중략) 그들이(아마도 로마에서 활약했던 학자들) 공적 자리든 사적 모임이든 그리스어와 라틴어, 두 언어로 강의했다는 사실은 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들은 고작 그리스 작가의 작품을 번역(해석)하는 정도였다. 설령 라틴어로 뭔가를 저술했다 할지라도 청중 앞에서 큰 소리로 낭독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문(법)학자와 수사학자에 대해서’ 제1장)

라틴어가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보고이다. 이 시절에 로마 학자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그리스 작가를 모방하고 번역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훈민정음이 처음 창제된 시절, 한글 텍스트 대부분이 ‘월인석보’ ‘두시언해’ 등의 언해본이라는 점에서 우리 한글의 초기 상황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라틴어가 가난함은 또한 다음의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당시 로마의 교육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라틴어를 구사하는 로마인들이 아니었다. 로마의 학교를 장악했던 교사들 대부분이 그리스 출신 노예들이었다. 그리스 노예들이 로마의 학교를 장악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라틴어로 된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단적으로 라틴어 최초의 문학 작품이 노예 출신인 리비우스 안드로니쿠스가 라틴어로 번역한 ‘오딧세이아’(기원전 272년 작품)라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로마인들이 그토록 사기와 기만의 대명사로 여겼고, 그토록 혐오했던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향이야기가 라틴어로 된 첫번째 문학 작품이었고, 이 작품이 로마의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라틴어가 초기 시절에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닌 게 아니라, 라틴어의 가난함은 그리스어와 비교해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로마인들은 라틴어로 접할 수 없었던 세계를 그리스어를 통해서 알게 된다. 이 앎은 무엇보다도 학문적 경이로움으로 로마인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 앎은 앎의 차원에서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로마인들이 그리스어를 통해서 알게 된 새로운 앎은 로마라는 국제도시에서 벌어지는 온갖 종류의 사건·사고를 해결하고자 할 때 요청되는 인문학적 사유 방식도 제공하였다. 제국과 대도시의 경험이 없었던 로마인들은 이러한 사태를 이미 경험한 그리스인에게서 인간과 삶에 대해서 사유하는 방식을 배우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그리스어는 학문적 관점에서뿐만이 아니라 생활의 유용함에 있어서도, 콘텐츠의 양과 질에 있어서도, 모든 면에서 라틴어를 압도해 버렸다.

이러한 이유에서, 대부분의 로마 지식인들의 그리스어 숭배는 대단했다. 대표적으로,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칼을 맞아 죽는 순간에도 그리스어로 “아들아, 너도야”(kai su, teknon!, 수에토니우스 ‘황제열전’ 아우구스투스편 제82장)라고 했다는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리스 정신 세계의 담지자이며 매개자인 그리스어가 구축한 의미 세계가 라틴어 의미 세계를 압도했기 때문에, 곧 라틴어의 가난함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현상이었다. 이런 사정을 자연학자이자 시인인 루크레티우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나도 결코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리스인들이 발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라틴어 시문(詩文)으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선명하게 새겨내는 일이 어려운 일임을 말이다. 특히 처음 접하게 되는 사태와 말의 가난함 때문에, 자주 나는 단어들을 새롭게 만들어서 시작(詩作)을 수행해야만 하기에 말이다.”(‘사물의 본성에 대하여’ 제1권 136~139행)



자족적 학문체계 갖추며 자립

라틴어의 가난함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자연학자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었다. 말을 주 도구로 삼고 있고, 말로 먹고 산다 할 수 있으며, 말에 삶을 싣고자 하는 집단인 시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시인 호라티우스의 입장을 살펴보자.

“만약 어쩔 수 없이 전혀 알려진 바가 없는 것들을 새롭게 말을 만들어 표시해야 하는 경우라면, (중략) 중용의 적도를 지킨다는 조건에서 신조어를 자유롭게 제조할 수 있는 허가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새로이 생겨 난 말과 새롭게 만든 말들도 곧 신뢰를 얻을 것이오. 그리스어 원천에서 절도를 지키면서 새로운 단어들을 길어온다면 말이오. 로마인들이 카일킬리우스와 플라우투스에게 허용한 ‘신조어’ 제조권을 베르길리우스와 바리우스에게선 박탈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미 카토와 엔니우스의 혀(lingua)가 조상들의 말을 부자(ditaverit)로 만들었고 사물들의 이름을 처음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내가 약간의 새로운 단어를 만들 수 있다 해서, 질투와 시기 받아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의미를 살려낼 수 있도록 말을 새롭게 만드는 일은 시인들의 특권이고, 이는 ‘항상’ 허용되었고 언제나 허용될 것이오. 마치 곤두박질치며 기울어 가는 한 해를 따라 숲을 채웠던 잎들이 떨어지듯이, 그렇게 처음에 있던 단어들도 그렇게 시들어 사라지고, 젊음의 힘이 그러하듯이, 새로운 단어들이 태어나서 자라 번성하고 만발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오.”(‘시학’ 제46~59행)

라틴어로 학문과 지혜를 증명하고 가르치고 있는 미네르바 여신 상
시인답게 호라티우스는, 자고 나면 새롭게 다가오는 세계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는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로마인들은 사실 늘상 새롭게, 항상 다르게 나타나는 감정의 양상, 즉 서정(敍情)의 세계를 라틴어로 규정해 표현해 본 적이 없었다. 결국 호라티우스는 자기만의 고유 느낌을 표현하는 데에도 그리스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역시 라틴어의 가난함 때문에 생겨난 문제이다.

결국 ‘라틴어 가난함’을 해결하기 위해 로마인이 취한 방법은 그리스 고전 텍스트의 라틴어 번역이었다. 언어와 언어 사이에 있는 경쟁력이 문제가 아니라, 사유와 사유 사이에 있는 경쟁력에서 라틴어는 그리스어를 감당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치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한 치를 더 깊게 따질 수 있는 사유와 한 길을 더 내다볼 수 있는 관조의 힘 때문에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의 사유와 반성의 결과를 직접 수용키로 한다. 호메로스 이후,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 역사가들이 세워놓은 그리스어에 축적된 삶에 대한 반성과 세계에 대한 시각과 인간에 대한 이해는 어느 한 순간, 어느 하루 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로마인들은 번역을 통해서 그리스 고전을 직접 수용한다. 곧 고전의 번역이란 점에서는 아마도 로마가 최초의 르네상스 시대일 것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키케로다. 그는 라틴어로 학문(學問)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는 라틴어로 된 개념이 학문을 구성하는 개별 문장들의 술어로 사용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라틴어의 가난함이 극복될 수 있음을 정확히 간파한 인문학자(?)였기 때문이었다.



고전어로 영구히 살아남을 생명력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라틴어의 가난함은 극복되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non uno die!). 라틴어의 가난함은, 라틴어가 독자적인 문명 혹은 문화의 담지자이자 주체로 그리고 자족적인 체제의 언어로 성장했을 때, 비로소 극복되었기 때문이다. 라틴어로 세계를 분석할 수 있고, 이렇게 분석된 세계를 라틴어로 재현시킬 수 있으며, 이렇게 재현된 세계가 보편적인 접근을 허용하는 동시에 독자적이면서 고유한 역사를 담아낼 수 있을 때, 라틴어는 생존 능력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과 앎을 다른 외부 언어 세계가 아닌 라틴어 자체 세계 안에서 생산-조달할 수 있는 자족(自足)적 학문 체계를 갖추었을 때, 라틴어는 자립할 수 있었다. 라틴어로 자연과학이든, 철학이든 자유로이 학문 활동을 할 수 있을 때, 라틴어는 독자적인 생명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한 루크레티우스의 노력을 보라! 또한 라틴어로 삶의 아픔과 기쁨을 정밀하고 세밀하게 그대로 그려낼 수 있고, 이러한 묘사의 배경을 반성하고 따질 수 있는 개념 체계를 확보할 때, 라틴어는 자족적인 체제의 언어가 되었다. 호라티우스와 키케로의 고민을 보라!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라틴어는 고전어(lingua classica)로 영구히 살아 남을 수 있는 생명력(vis vitae)을 확보하였다. 비록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말만은 텍스트를 통해서 살아 남았다. 구어로서의 기능은 비록 소멸했지만, 세상을 보는 거울이면서 저울 역할을 담당하는 고전어로서 라틴어는 아직 살아있다. 아니 라틴어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라틴어로 그려낸 로마인들과 그들의 삶이 살아있는 셈이다. 이렇게 한 언어가 살아 남는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했던 공동체가 살아 남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결론을 대신해서 잠깐!, 자고 일어나면 급변하는 한국의 일상과 세계화의 경쟁 체제 아래에서 한국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한국어의 가난함에 대해서 심각하게 그리고 본격적으로 고민을 해야 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그러니까 한국어가 부자 되는 법에 대해서 말이다.

〈안재원|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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