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탄생 - 인간에게 문자란 무엇인가, 개정증보판
노마 히데키 지음, 박수진.김진아.김기연 옮김 / 돌베개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의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의 저서 한글의 탄생은 한국인에게 당연시되던 한글을 ‘외부자의 시선’과 ‘정밀한 언어학적 잣대’로 재발견하여 동아시아 지성사 속에서 그 가치를 극대화한 명저이다. 


책의 핵심 논지는 한글 창제가 단순한 문자 발명을 넘어, 당시 한자 중심의 동아시아 지식 체계를 뒤흔든 '지의 혁명'이었다는 점이다. 


한글의 우수성을 맹목적으로 찬양하기보다 한자, 일본어(가나), 서구 문자 체계와 철저히 대조하면서 한자라는 거대한 지적 중력 속에서 어떻게 완전히 독창적인 '음절 단위 모아쓰기' 문자가 탄생할 수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서술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일본인 언어학자로서 철저히 객관적이고 냉철한 거리를 유지하며, 오히려 한국인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한글의 경이로움을 세밀하게 짚어낸다. 


일본어 독자를 대상으로 먼저 집필된 책이기 때문에, 일본어(가나)의 음절 구조와 한자의 특성을 디딤돌 삼아 설명한다. 덕분에 문자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일반 교양 독자도 한글의 구조적 특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의 유려한 글쓰기에도 불구하고, 중반 이후 본격적인 변모음론이나 음운론적 분석이 시작되면 언어학적 전문 용어가 대거 등장하므로 일반 교양서로 가볍게 읽기에는 쉽지만은 않은 편이다. 

일본어의 7연음이나 가나 표기법과의 대조를 통해 한글을 설명하는 대목이 많아, 일본어 체계를 전혀 모르는 한국인 독자에게는 그 맥락과 비유가 100% 와닿지 않거나 다소 우회적인 설명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언어학에 조금의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글은 과학적이다"라는 교과서적 격언에 지쳐있던 이들에게, 한글이 왜 세계 문자사의 기적이며 세종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거대한 지성이었는지를 전율과 함께 깨닫게 해주는 최고의 한글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본능 - 상 - 정신은 어떻게 언어를 창조하는가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문미선.신효식 옮김 / 그린비 / 199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50년대에 촘스키가 생성문법을 체계화하면서 언어에 대한 인식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촘스키는 언어가 인간을 인간으로 특징짓는 종(種)특수적인 변별자질로서 선천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핀커는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그는 언어가 인간을 동물과 구별해 주는 종특수적인 변별자질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거부한다


언어는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의사소통 방법이며, 이것은 다른 종의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의사소통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6천여개의 언어에는 보편적인 심층구조(universal deep structure)가 있으며, 이것이 문법유전자에 입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아이들은 문법유전자가 존재하는 12살 이전에는 체계적인 교육이나 훈련 없이도 어떤 언어건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냅스는 2세부터 나머지 아동기를 거쳐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약해지고, 이때 뇌의 대사율은 어른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러므로 언어의 발달은 치아처럼 성숙시간표에 따른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뇌의 언어센터는 옹알이, 첫 단어 그리고 문법 같은 언어학적 성과를 위해 최소 수준의 뇌의 크기와 장거리 연결부분 및 별도의 시냅스가 필요한 것이다.  


정상적인 언어의 습득은 6세까지의 아이들에게 보장되며, 그때부터 사춘기 직후까지 점차 어려워지다가 그 이후에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일반적으로 자연선택은 어린 유기체에게는 유리한 선택사양을, 늙은 유기체에게는 불리한 선택사양을 제공하여 전생애에 분포된 이익이 균등해지도록 할 것이다. 


눈과 마찬가지로 언어본능도 다윈이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는 완벽한 구조와 상호적응’이라 일컫던 것의 한 예이고, 그런 언어본능에는 자연의 설계자인 자연선택의 확실한 흔적이 찍혀 있다. 


언어본능이 시사하는 바는 백지, 왁스덩어리 또는 표준 사회과학 모델의 만능 컴퓨터라기보다는 연산 모듈들이 적응한 정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라이 라마, 마음의 고향을 찾아
가연숙 지음 / 참글세상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대상은 오직 상호 의지한다. 이는 다시 말해 상호 의존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름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유를 통해서 가능한 논리적 귀류로 얻어낸 것이다. 


의존하며 연관되어 일어나는 것, 그것은 공성을 말하네.

그것은 의존하여 붙인 것이니 그 자체가 중도라네. 


공성은 제법의 존재 방식이다. 공성은 연하여 발생하는 연기의 다른 말이다. 

중관의 입장에서 속제와 진제는 따로 규명되는 것이 아니다. 실체가 없는 무자성이기에 상변과 단변에서 벗어나므로 중관이다. 명언(속제)에 의존하지 않고 승의(진리)를 보일 수 없고 승의를 깨닫지 않고 열반을 얻지 못한다.


의존하여 연관되어 일어나는 것, 그것이 공성이네.

그것은 의존하여 붙인 것이니 그 자체가 중도라네.

고로 연기 아닌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네.

고로 공하지 않은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네.   


조건과 원인으로 인해 연기하는 것을 인과법이라고 한다. 

나를 비롯한 제법의 실상은 무엇인가 하면 고정된 실재가 존재치 않고 문자적 언어적으로 이름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법에 실체 없음을 안다면 진실은 분명하고 명쾌하게 드러난다. 


제법의 실상을 중도 연기의 공성이다. 진리의 당체를 이처럼 명쾌하게 설명한 책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을 가장 인간이게끔 만드는 행동 양식이 있다면 음악이나 미술 같은 것.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벽화는 다행히 남아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지만 그들이 함께 즐겼을 음악은 그 유물이 거의 없다. 우리들 유전자 내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알츠하이머, 루게릭, 뇌졸중 등에 의한 치매로 인간의 정신이 점차로 무너져가는 최후의 순간에도 남아 있는 것은 음악을 기억하고 그것에 반응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무너져 자연으로 되돌아가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고 ‘내가 인간이다’ 라는 존엄을 부르짖는 표식 같은 것 아닐지.

6근 12입처, 18계를 모두 공으로 보며 심지어 ‘여섯 도적’으로 몰아부쳐 ‘가짜 나’를 형성하는 주범으로 보는 불교 교리도 있지만,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소중한 선물이기도 하다.
그것이 종국에는 변하여 사라질 것들이라는 공성을 알아차려서 순간순간 일어나는 6식의 변화에 지나친 집착만 하지 않고 곶감 빼먹듯 감사히 조금씩 즐긴다면 그것이 바로 신통, 즉 6신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기적이란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고, 냄새맡고,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며, 태어나고 죽는 그 모든 것들이다. 여섯 도적이 아닌 여섯 신통으로 보아도 좋다.
더구나 그것이 100년 미만의 짧은 기간동안 잠시 생겼다 사라지는 기적이기에 공성이지만 아름다운 꽃의 피고짐 같은 것이다.

노래하고 연주하고 공감하라. 음악이 모든 병을 치유하리니…
우리가 이 우주에 온 목적은 조화되고 공감하기 위해서다.

평생을 전두엽으로 달달 외워야만 했던 온갖 잡다한 지식들, 인연에 따라 사라지고 말 유위법들, 인터뷰나 면접요령을 배우고 각종 프레젠테이션 스킬을 익히느라 언어영역을 관장하는 좌뇌 측두엽을 혹사시키면서 미사여구와 교언영색으로 젊은 날을 바치지만, 그 모든 유위법적 지식들은 알츠하이머나 뇌졸중이 찾아오면 단번에 잊혀진다. 

가장 고차원적인 진리(진)라면 선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이어야 할 것이다.

먼 미래에 음악이나 미술이 지식의 최고 위치에 오르는 날이 인류가 구원받는 날이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