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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씨, 도파민 과잉입니다 - 안철우 교수의 미술관 옆 호르몬 진료실
안철우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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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뭉크 씨, 도파민 과잉입니다>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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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그중에서도 특히나 미술은 왠지 멀게만 느껴지는 것 중 하나였다. 문자 그대로 부유층의 소유처럼 받아들여졌던 것은 왜일까. 지금은 미술 작품을 소장하는 사람이 늘었고, 진입장벽도 함께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납작한 표현으로는 미술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어디서 본 적 있는그림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호르몬으로 설명해주는 책이 있다. 슬픈 그림을 보면 슬프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째서 당연한지는 몰랐던 독자에게 지식의 세계를 제시한다. 알아야 보이는 것이 있듯, 앎으로써 감각을 깨울 수 있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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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는 희, , , 락 네 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챕터에 속한 방문을 열 때마다 명화가 독자를 맞이한다. 그와 함께 화가에 대한 설명과 이에 연결된 감정적 상황, 그때마다 발생하는 호르몬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소설처럼 유려하고 매끄러운 연결고리는 물론 아니지만 독자의 흥미를 끌기에는 적합한 흐름이었다. 마치 전채요리처럼 등장한 그림부터 호르몬에 대한 설명으로 마무리되는 패턴은, 독자를 익숙함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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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서점의 시집 코너에는, ‘시집을 고르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메모가 붙어 있다. 그 내용 중 하나가 아무 시집을 펼쳐 사랑이라는 주제를 잘 다룬 것 같은 시집을 고르라는 것이었다. 사랑은 가장 보편적인 주제이므로, 그곳에서 마음이 동했다면 그 시집이 잘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다.

이 책도 제목처럼 초반부에 사랑이라는 테마와 뭉크의 <키스>라는 작품을 제시한다. 물론 사랑, 키스를 주제로 한 다른 명화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는 사랑에 필수불가결한 호르몬 엔도르핀을 제시한다. 이미지와 연결되는 호르몬은 더욱 오래 기억될 것이다. 내가 웹툰 <유미의 세포들>에 등장하는 밴드 엔도르핀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인 것도 이 맥락일 것이다.

- 앞서 이야기했듯 사랑은 여러 호르몬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탄생합니다. 이를테면 도파민은 첫눈에 반하는 사랑에 작용하고요, 옥시토신은 연인 혹은 부부 관계를 오래 유지해주지요.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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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전시를 좋아해 자주 보러 다니는 편이긴 하지만, 즉각적인 감상에 집중할 뿐 그것이 어떤 체내원리로 발생하는지는 신경쓰지 않았다. 아마 모두가 그럴 것이다. 그리고 전시장을 떠나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왔을 때, 당시의 감정과 느낌을 떠올리며 흐려지는 기억에 아쉬운 경험도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감정을 기록해둔 것은 아니지만, ‘느낀감정에 대해 보다 정확한 언어로 표현해두었다.

아직 미술도 의학도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면, 그저 그림과 감정으로 접근해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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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실험실 - 요즘 애들의 생각과 사는 방식
중앙일보 밀실팀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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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밀실팀, <밀레니얼 실험실>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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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지금의 젊은 층을 두고 ‘MZ세대’라고 부른다. 그 이전에 X세대 등으로 불리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으나 알파벳을 붙여 젊은 층을 규정하려는 시도다. MZ세대라는 표현도, 따지고보면 현재 30대 후반까지 포함되는 나이대를 가지고 있으나 어쩐지 20대 청년들에 국한돼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청년 세대를 규정짓는 단어는 MZ세대 이전에도 있었다. ‘밀레니얼’이 바로 그것이다.

<밀레니얼 실험실>은 바로 이 밀레니얼 세대에 대해, 밀레니얼 세대가 얘기한다. ‘어쩐지 당돌하고, 그래서 기성세대에 언제나 반기를 드는 이미지’를 가진 밀레니얼 세대는 정말 당돌하게 살아나가고 있는지, 생각의 이면으로 현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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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MZ세대건 밀레니얼이건, 어떤 세대를 그런 식으로 부른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재 범람하듯 사용되고 있는 ‘MZ’라는 알파벳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보다도 알파벳 두 자로 납작해져버린 그들 개개인의 삶은 보다 다채롭다.

<밀레니얼 실험실>은 청년사회에서 뜨겁게 다뤄지는 주제들에 대해 얘기한다. 모든 것을 넓게 다루기 때문에 주제마다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군대 월급 문제부터 부동산, 비혼과 비연애, 동성혼까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떤 담론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어렵지 않은 문체로 알 수 있다.

-“미투(me too)라는 노래를 들으며 (…) 조심하라고 낄낄대고 농담을 주고받는 걸 봤어요”라며, 여자가 있는 자리에서 그런 소재를 아무렇지 않게 유머로 소비하는 것도 젠더권력이며, 여자가 없는 자리에서는 더 심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탈연애를 고려하게 되었다고 했다.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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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이 책에서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사회가 가진 논쟁이 ‘권리’에 관한 점이라는 부분이다.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존중해주는 것은 인정하되 그들이 그것을 마치 ‘무기처럼’ 사용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권리는 무기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것을 무기로 보는 시각은 어디서 발생했을까? 사회적 약자에게 보장되지 않았던 권리를 이제라도 보장해주자는 의견은 젊은 세대 안에서 활발히 튀어나오고, 그렇기 때문에 거센 논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어떤 논리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사회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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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현재의 인터뷰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유의미했다. 전문 작가가 아닌 기자들로 이루어진 팀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생생한 언어를 채집했다.

그와 함께 전문가 집단의 인터뷰, 통계 자료를 덧붙여 객관성을 더했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는 판형과 무게, 문체이지만 다 읽은 뒤 가볍게 자리를 뜰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사회 자체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입문용으로 추천하여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겠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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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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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해 머지않는 작가, 황정은의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며칠 전 강남 교보문고에 들렀을 때에도 보라색 표지가 베스트셀러에 올라가 있었는데, 그 때 사서 당장 읽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가 이제 읽었다.


황정은 작가를 처음 만난 건 <계속해보겠습니다>.

내가 글을 쓰기로 결심했던 계기는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이었고,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목표를 삼은 것은 <계속해보겠습니다>였다. 황정은 작가의 글을 읽기 전에는 다른 작가의 문체를 닮고 싶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소설을 읽은 후에는 그 이전을 기억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

내가 천천히 자라는 동안 황정은 작가의 소설을 자주 읽었고, 그 흔적은 나이테처럼 내 안 곳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디디의 우산>을 읽었을 때.

이것이 소설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왠지 내가 그것을 분간하려고 드는 것도 기묘하고, 너무 현실적이어서 소설이라고 믿고 싶었고, 소설이었기 때문에 현실이 너무나도 잘 보였다.

변영주 감독이 자신의 영화 <화차>에 대해 말했을 때, 원작자 미야베 미유키가 한국 기자로부터 "이 작품이 동일본 대지진에 대해 영향을 받았는지" 질문 받았을 때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답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렇듯 일본의 현대 문화는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권 아래 있다.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도 그 정서는 짙게 나타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전쟁 이후에는 그 영향권 아래 6-70년대 문학이 있었고, 80년대엔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삼풍백화점 참사부터 용산참사, 셀 수 없는 일을 거쳐 2014년에 이르렀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당시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디디의 우산>은 내게 그것을 알려준 책이다.

이것은 계기가 되었다. 아주 적나라한 사실을 마주하고 샅샅이 정리하고 빠짐없이 기록하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진실이란 괴로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택한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그것이 <일기 日記>에 있었다.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76쪽

우리는 화석이다!

이 문단을 처음 읽었을 때는 좋다는 단순한 감상만 있었는데 곱씹을수록 좋았다.

우리는 화석이다. 우리는 화석이구나. 우리는 사회적인 화석.

작가는 끊임없이 사람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특히나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가정폭력이 늘었다는 점을 말하면서 '여기 갇힌 사람들은 여기서 일어나지 않은 폭력을 여기서 함께 겪기도 한다(16쪽)'고 적었다.

한 개인은 혼자서 구성되지 않는다. 그가 속한 사회가 있고, 집단이 있고, 그를 관리하는 국가가 있기 때문에. 그것에 따라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며, 이는 그의 생명까지도 통제하는 변인이 될 수 있다. 사회 역학은 이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닌 것이다. 홀로 존재하면서 많은 이들의 흔적과 기억이 몸에 배어 있다. 누군가 잊어도 그것이 완전한 망각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혼자 기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혐오는 어디에나 있어. 내게도 있다. 나는 실은 많은 순간 내 이웃을 혐오하고 먹는 입을 혐오한다. 하지만 그걸 남에게 드러낼 권리가 내게는 없어. 그런 건 누구에게도 없다.

17쪽



혐오, 라는 단어가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이 어디에나 있으며 자신에게도 있다고 적을 수 있는 용기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적을 수 있을까? 고백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사람은 언제고 죽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될 수 있는 구조 때문에 당장 죽거나, 손상당한다. '그게' 가능한 구조라서.

35쪽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은 2017년에 발간되었고 그때 사서 계속 읽고 있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지만 책은 그럴 수 없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적 거리는 멀어지지만,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

앞서 한 차례 언급한 사회 역학을 다룬 책이 바로 이것인데, 어떤 죽음은 국가가 관여한다. 사회가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이 책의 내용이 <일기>를 읽는 동안 자주 떠올랐다.

'그것이 가능한 구조'.

우리의 명命은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구조되는 것'이라는 말이 오래도록 남겠지.






황정은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내내 즐거웠다. 한시간 반 정도만에 쉽게 읽었는데, 곳곳에서 감탄했고 공감했다.

그리고 굳센 심지를 느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물었으면서 그 대답을 정확히 표현할 수가 없다. 아무튼 그런 심지가 있다. 목격하기로 작정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뿌리가 있다. 그것을 에세이를 읽는 내내 느꼈다.

그 뿌리가 오래도록 건강하기를 바란다.

아마 모두가 황정은 작가의 글을 오래 보길 원할 테니까.




요즘은 거의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를 쓰면서, 문장을 쓰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소설 문장을 쓰느라고 긴장한 뇌를 이리저리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쓴다. 하지만 어느 날엔 문득 용기가 사라지고 그런 날엔 소설도 일기도 쓸 수 없다. 그럴 땐 음악의 도움을 받는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

19쪽


황정은 작가가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삶을 구한다고 적은 것처럼,

나는 황정은 작가의 사소한 문장들이 내 삶을 구한다고 적는다.

결국 사람이 사람을 구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개인적 견해로 쓰여진 글입니다.

*원글은 제 블로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거의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를 쓰면서, 문장을 쓰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소설 문장을 쓰느라고 긴장한 뇌를 이리저리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쓴다. 하지만 어느 날엔 문득 용기가 사라지고 그런 날엔 소설도 일기도 쓸 수 없다. 그럴 땐 음악의 도움을 받는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 - P19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 P76

혐오는 어디에나 있어. 내게도 있다. 나는 실은 많은 순간 내 이웃을 혐오하고 먹는 입을 혐오한다. 하지만 그걸 남에게 드러낼 권리가 내게는 없어. 그런 건 누구에게도 없다. - P17

사람은 언제고 죽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될 수 있는 구조 때문에 당장 죽거나, 손상당한다. ‘그게‘ 가능한 구조라서.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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