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해 머지않는 작가, 황정은의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며칠 전 강남 교보문고에 들렀을 때에도 보라색 표지가 베스트셀러에 올라가 있었는데, 그 때 사서 당장 읽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가 이제 읽었다.
황정은 작가를 처음 만난 건 <계속해보겠습니다>.
내가 글을 쓰기로 결심했던 계기는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이었고,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목표를 삼은 것은 <계속해보겠습니다>였다. 황정은 작가의 글을 읽기 전에는 다른 작가의 문체를 닮고 싶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소설을 읽은 후에는 그 이전을 기억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
내가 천천히 자라는 동안 황정은 작가의 소설을 자주 읽었고, 그 흔적은 나이테처럼 내 안 곳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디디의 우산>을 읽었을 때.
이것이 소설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왠지 내가 그것을 분간하려고 드는 것도 기묘하고, 너무 현실적이어서 소설이라고 믿고 싶었고, 소설이었기 때문에 현실이 너무나도 잘 보였다.
변영주 감독이 자신의 영화 <화차>에 대해 말했을 때, 원작자 미야베 미유키가 한국 기자로부터 "이 작품이 동일본 대지진에 대해 영향을 받았는지" 질문 받았을 때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답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렇듯 일본의 현대 문화는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권 아래 있다.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도 그 정서는 짙게 나타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전쟁 이후에는 그 영향권 아래 6-70년대 문학이 있었고, 80년대엔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삼풍백화점 참사부터 용산참사, 셀 수 없는 일을 거쳐 2014년에 이르렀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당시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디디의 우산>은 내게 그것을 알려준 책이다.
이것은 계기가 되었다. 아주 적나라한 사실을 마주하고 샅샅이 정리하고 빠짐없이 기록하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진실이란 괴로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택한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그것이 <일기 日記>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