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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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해 머지않는 작가, 황정은의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며칠 전 강남 교보문고에 들렀을 때에도 보라색 표지가 베스트셀러에 올라가 있었는데, 그 때 사서 당장 읽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가 이제 읽었다.


황정은 작가를 처음 만난 건 <계속해보겠습니다>.

내가 글을 쓰기로 결심했던 계기는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이었고,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목표를 삼은 것은 <계속해보겠습니다>였다. 황정은 작가의 글을 읽기 전에는 다른 작가의 문체를 닮고 싶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소설을 읽은 후에는 그 이전을 기억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

내가 천천히 자라는 동안 황정은 작가의 소설을 자주 읽었고, 그 흔적은 나이테처럼 내 안 곳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디디의 우산>을 읽었을 때.

이것이 소설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왠지 내가 그것을 분간하려고 드는 것도 기묘하고, 너무 현실적이어서 소설이라고 믿고 싶었고, 소설이었기 때문에 현실이 너무나도 잘 보였다.

변영주 감독이 자신의 영화 <화차>에 대해 말했을 때, 원작자 미야베 미유키가 한국 기자로부터 "이 작품이 동일본 대지진에 대해 영향을 받았는지" 질문 받았을 때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답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렇듯 일본의 현대 문화는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권 아래 있다.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도 그 정서는 짙게 나타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전쟁 이후에는 그 영향권 아래 6-70년대 문학이 있었고, 80년대엔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삼풍백화점 참사부터 용산참사, 셀 수 없는 일을 거쳐 2014년에 이르렀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당시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디디의 우산>은 내게 그것을 알려준 책이다.

이것은 계기가 되었다. 아주 적나라한 사실을 마주하고 샅샅이 정리하고 빠짐없이 기록하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진실이란 괴로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택한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그것이 <일기 日記>에 있었다.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76쪽

우리는 화석이다!

이 문단을 처음 읽었을 때는 좋다는 단순한 감상만 있었는데 곱씹을수록 좋았다.

우리는 화석이다. 우리는 화석이구나. 우리는 사회적인 화석.

작가는 끊임없이 사람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특히나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가정폭력이 늘었다는 점을 말하면서 '여기 갇힌 사람들은 여기서 일어나지 않은 폭력을 여기서 함께 겪기도 한다(16쪽)'고 적었다.

한 개인은 혼자서 구성되지 않는다. 그가 속한 사회가 있고, 집단이 있고, 그를 관리하는 국가가 있기 때문에. 그것에 따라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며, 이는 그의 생명까지도 통제하는 변인이 될 수 있다. 사회 역학은 이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닌 것이다. 홀로 존재하면서 많은 이들의 흔적과 기억이 몸에 배어 있다. 누군가 잊어도 그것이 완전한 망각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혼자 기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혐오는 어디에나 있어. 내게도 있다. 나는 실은 많은 순간 내 이웃을 혐오하고 먹는 입을 혐오한다. 하지만 그걸 남에게 드러낼 권리가 내게는 없어. 그런 건 누구에게도 없다.

17쪽



혐오, 라는 단어가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이 어디에나 있으며 자신에게도 있다고 적을 수 있는 용기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적을 수 있을까? 고백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사람은 언제고 죽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될 수 있는 구조 때문에 당장 죽거나, 손상당한다. '그게' 가능한 구조라서.

35쪽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은 2017년에 발간되었고 그때 사서 계속 읽고 있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지만 책은 그럴 수 없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적 거리는 멀어지지만,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

앞서 한 차례 언급한 사회 역학을 다룬 책이 바로 이것인데, 어떤 죽음은 국가가 관여한다. 사회가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이 책의 내용이 <일기>를 읽는 동안 자주 떠올랐다.

'그것이 가능한 구조'.

우리의 명命은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구조되는 것'이라는 말이 오래도록 남겠지.






황정은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내내 즐거웠다. 한시간 반 정도만에 쉽게 읽었는데, 곳곳에서 감탄했고 공감했다.

그리고 굳센 심지를 느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물었으면서 그 대답을 정확히 표현할 수가 없다. 아무튼 그런 심지가 있다. 목격하기로 작정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뿌리가 있다. 그것을 에세이를 읽는 내내 느꼈다.

그 뿌리가 오래도록 건강하기를 바란다.

아마 모두가 황정은 작가의 글을 오래 보길 원할 테니까.




요즘은 거의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를 쓰면서, 문장을 쓰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소설 문장을 쓰느라고 긴장한 뇌를 이리저리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쓴다. 하지만 어느 날엔 문득 용기가 사라지고 그런 날엔 소설도 일기도 쓸 수 없다. 그럴 땐 음악의 도움을 받는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

19쪽


황정은 작가가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삶을 구한다고 적은 것처럼,

나는 황정은 작가의 사소한 문장들이 내 삶을 구한다고 적는다.

결국 사람이 사람을 구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개인적 견해로 쓰여진 글입니다.

*원글은 제 블로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거의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를 쓰면서, 문장을 쓰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소설 문장을 쓰느라고 긴장한 뇌를 이리저리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쓴다. 하지만 어느 날엔 문득 용기가 사라지고 그런 날엔 소설도 일기도 쓸 수 없다. 그럴 땐 음악의 도움을 받는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 - P19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 P76

혐오는 어디에나 있어. 내게도 있다. 나는 실은 많은 순간 내 이웃을 혐오하고 먹는 입을 혐오한다. 하지만 그걸 남에게 드러낼 권리가 내게는 없어. 그런 건 누구에게도 없다. - P17

사람은 언제고 죽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될 수 있는 구조 때문에 당장 죽거나, 손상당한다. ‘그게‘ 가능한 구조라서.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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