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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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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끌림 - 이병률, 랜덤하우스 
 
서른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주위 사람들의 평판이 중요한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내 이름 석자를 떠올리면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함께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묘사될까. 나를 아름답게 생각해주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나 스스로에게 적당한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면 ‘우리편’이라 하고 싶다. 문제의 편에 서기보다는 해답에 편에 서서 편안함과 든든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소망과는 달리 저자 이병률에게는 이미‘습관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70개국, 300백 여 도시를 여행했다면 부연설명이 필요 없지 않을까.
여러 나라를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그러나 그의 수줍은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을 접하고 나니 자연스레 의문점이 남는다.
그 것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주제의 모호성’이다.
사진과 글을 보면서 그가 길 위에서 만나고 보게 되는 대상들로부터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의 부족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했던 ‘사람이 열쇠’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는 듯하다. 그가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지극히 일반적인 사람들이었고 자신에 대한 통찰력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저 국적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듣는 말들이 그에게는 신선한 충격이 되진 않았을까.
저자가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형식도 아직은 힘겹다. 조금은 대중적이지 못한 까닭일까. 아니면 내가 그와 같은 경험이 없어서일까.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읽어가진 못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탱고 공연을 보고 오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밤하늘 아래에서 그가 떠 올린 생각.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 이러한 시선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그의 감각은 마음에 든다.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오랜 기간 FM 음악도시 작가로 일했다는 저자.
70개국, 300백 여 도시를 여행했다는 그의 수줍은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긴 책 [끌림]. 질퍽한 삶, 그 긴장의 끈을 놓게 만들던 편안한 책이었다.
화장실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 길에 함께 하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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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획자들 - 불가능한 시장을 만들어낸 사람들
서영교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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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쟁기획자들 – 서영교 / 글항아리

어쩌면 지금 우리 현실도 가려진 이권 싸움 속에 휘말리고 있는지 모른다.

22년간 전쟁을 지속했던 광개토대왕. “그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어떻게 전비를 마련할 수 있었을까” 라는 단순한 의문에서 이 책은 집필되었다. 하지만 이 책, 전쟁기획자들은 지나간 역사 속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들춰가면서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시카고 폭력조직 두목 알카포네. 술과 도박, 매춘과 마약 등 언제나 (금지된) 법에서 악은 배태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서를 보더라도 금단의 사과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유혹과 원죄로 이어지고 사건들이 있지 않았던가. 돈과 관련된 이권 싸움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현재에도 진행 중 이다. 사람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주색잡기 관련 사업은 불황이 없어서 큰 돈벌이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돈벌이가 되는 가장 큰 사업은 바로 전쟁이었다.

적으로써 적을 물리친다는 뜻에 이이제이(以夷制夷) 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교전중인 상대국에서 전쟁자금을 마련하고 있는 어불성설의 경우를 보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영국과 전쟁 중인 탈레반이 바로 그 경우다. 전쟁비용을 원조 받기 힘든 그들은 세계 아편의 90%를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가장 큰 고객은 거대한 마약 시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 이라는 것이다. 탈레반은 아편을 헤로인으로 정제해 미국과 유럽에 판매하여 전비를 마련한다. 웃기지 않는가? 전쟁중인 두 나라가 서로의 이권으로 인해 총을 겨누면서도 웃고 있는 형국이라니.
아직도 반환 받지 못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1993년 한국 고속철도 공사 수주를 둘러싼 프랑스 미테랑과의 일화는 여지없는 그 한 예이다.

전쟁을 배태할 만큼 강력한 시장이 있는 곳이면 크고 작은 전쟁의 조건은 성립된다. 우리나라 축산업을 뒤흔들었던 사료값 폭등과 미국산 쇠고기 반입은 보이지 않는 창 끝을 겨누고 덤벼드는 전쟁이었다.
사료값 상승으로 인한 한우 값 폭등. 그 후에 저가 수입 소고기를 유통시키면서 우리나라 축산업을 붕괴시킨 후 수입 소 값 폭등으로 이어지는 수순. 어떤 협상과 전략으로 방어?해 나갈지 걱정이 앞선다.

걱정이 ‘두고 보자’ 라는 감정보다 앞서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가 협상 능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인수설이 나도는 동안 중국 화공 집단에 알짜배기 정보를 고스란히 넘겨준 일이 있었다. 중국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들을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죄다 빼먹은 후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요즘 전쟁이란 “시장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 인데 대규모 내수시장을 보유한 그들에게 옥석 같은 노하우를 뺏기고 말았으니 뒤 따라오는 일이야 쉽지 않겠는가.

이 책은 전쟁이 배태되는 이유를 알게 함과 동시에 역사 속 인물과 현재의 인물을 비교함으로써 교훈을 주고 있다.
장수왕과 삼성 이건희 회장에 선택과 집중을 통한 활로 개척사, 대우 김우중과 의자왕에 무리한 영토 확장 폐인의 예. 로버트 김과 우로 부인 사건을 통해 이기적이고 폐쇄적이었던 우리의 과거사를 보게 된다.
당 진출을 꿈꿨던 신라인 설계두와 경찰 공무원이 되길 바랬던 이라크 전사자 23세 김정진 씨, 애석한 그들의 결말이 어두웠던 시대에 한 개인의 쓸쓸한 일화로 남지 않길 바란다.
오히려 대공항에 활로를 찾아야만 했던 일본이 만주를 시작으로 미국과 영국, 러시아를 차례로 혼내 주었던 때. 오만 방자 했던 영국 거함 웨일스호를 침몰시킨 일본의 미쓰비시 제로기처럼 빠른 수용과 적응, 반복되는 시행착오가 없도록 자신을 개발시키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외에 신라와 고구려, 일본 금관가야에 철을 둘러싼 전쟁. 한국에도 탈레반 손길이 미쳤다는 이야기. 한국이 방위산업 세계 10위.
미국과 동아시아 사이에 공멸의 두려움, 그것이 ‘금융 공포의 균형’을 이룬다는 것. 미군 철수 문제가 국가 신용도와 연관된다는 이야기는 놀라웠다

세상을 깨금발로 살고 있었나 보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나만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를 만난 듯 읽는 내내 놀라웠다.
[전쟁기획자들]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 그 이면을 볼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해준다. 누군가 이런 류의 책을 알고 있다면 내게 추천해주었으면 한다. 그 만큼 이 책 역시 추천하고 싶은 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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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마녀의 백점 수학 - 1.2학년 교과서 수학원리동화 공부귀신 2
서지원 지음, 아리 그림 / 처음주니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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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마녀의 백 점 수학 – 서지원 / 처음주니어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이가 수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운동만 좋아하고 공부에는 취미가 없어 보이는 둘째. 그 아이를 가르치다 보면 늘 언성이 높아지고 도깨비가 되는 나의 아내.
돌이켜 생각해보면 둘째인 나 자신도 그다지 수학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유년시절 성적표를 보면 항상 수학 점수가 나를 섭섭하게 만들곤 했기 때문이다.
교실 벽에 걸려있는 달력, 수학수업시간이 내 번호와 끝자리라도 일치할 때면 살짝 긴장이 되기도 했었다.‘오늘이 몇 일 이니까. 몇 번 나와서 풀어봐’ 누구나 이런 기억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아니, 나 만 있나?
자신 없는 문제를 칠판 앞으로 나가서 풀 때면 얼마나 가슴 졸여 했던가. 그런 서늘한 분위기를 내 둘째가 느끼지는 않을까 늘 걱정이다.

‘책 읽는 도깨비’ 이후 [처음주니어] 출판사 책은 두 번 째이다. 이 책,‘수학마녀의 백 점 수학’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예제를 만들고 조근조근 설명하는 점이 마음에 든다. 재미와 더불어 공부에 집중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한 모습이 보인다. 아직 수數의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수학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백 점 수학]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수학 교육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을 학부모들의 수고를 덜어줄 만한 고마운 책이라 생각된다.

“남의 아이 공부시키기는 쉽지만 내 아이 공부 시키기는 어렵다” 는 말이 있는데 사실, 내 아이도 남의 아이도 가르친 경험이 없는 부모로써는 어려운 일 아닌가.
이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 부모가 아마 열에 아홉은 되지 않을까. 그러기에 먼저 고민하고 연구하여 이런 걱정을 가볍게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이 책은 부모가 먼저 읽고 자녀를 가르치는데 사용해도 좋을 책이다.
자녀에게 하루 15분씩, 일주일이면 될 것 같다. 굳이 ‘공부’ 압박감 없이 독서 분위기로 다가가도 좋을 듯 하다.
자녀를 키우는 사람으로써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도 부디,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서 머물지 말고 다양한 분야에 어려운 문제들을 쉽게 풀어서 낸 책들이 즐비하게 출간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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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독서 -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의 하루 15분 책읽기
김선욱 지음 / 북포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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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관한 즐거운 심화학습, ‘틈새독서’

독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지 1년째가 다되어간다. 이제껏 편식 없이 독서를 즐겼다. 왜 그렇게 읽어댔을까. 그 이유를 이 책에서 건지게 되었다.‘독서가 정신의 틈새를 막아준다!’이 말을 체감하는 지금, 짜릿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 책을 덮고 나니 ‘공부해라’ ‘틈날 때마다 책 읽어라’는 말이 환청처럼 귓가에 머문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다.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해대기 때문이다. 입바른 소리를 반복적으로 해대는 동네 어른과 골목길에서 맞닥뜨린 기분이랄까. 저자 김 선욱은 자신에 독서 애찬론을 이 책에 원 없이 쏟아 놓은 듯 하다.

건강과 부와 사랑을 공부하라는 말도 책을 통해서 좋은 스승을 만났다는 그의 말에도 모두 고개가 자맥질하게 만든다.
이제껏 운이 좋아서 조금씩 재미를 보았던 돈놀이, 주식. “적어도 70권은 읽고 나서야 시작하라”는 말에 가슴 뜨끔했다. 반찬 값 몇 푼 깎으려고 입씨름을 하던 아내를 생각해보면 기천만원으로 돈 먹고 돈 먹기를 하는 나는 얼마나 고급스런 취미 생활을 하고 있었던가 말이다.
또 한 달에 한번씩 사랑에 대한 책을 함께 읽는다는 그 연인들은 얼마나 지혜로운 사랑을 하고 있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아는 지식 중, 95%이상은 잘못된 지식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어쩌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독서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지혜롭게 자신을 단련시켜 가는 어른의 모습을 책에 담고 있었다.
직장과 가정, 그리고 세상을 구성해나가는 한 사람으로써 우리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모습 말이다.

책에 대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틈새 독서’
나 자신 운전을 할 때나 신호등 앞에서 짜증을 나는 대신 책을 편다. 그리고 운동을 할 때도 걷는 운동 대신 헬스 자전거를 타며 책을 본다.
어디를 갈 때도 이젠 항상 책을 휴대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내 아이들이 나의 변화된 이런 모습에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거실에 쇼파가 있었던 자리는 지금, 큰 책장 두 개가 차지하고 있다. 거기에는 이번 년도 내내 읽어도 될 만큼 미리 사둔 책들로 가득하다. 나 만의 서재를 갖겠다는 욕심은 나이가 조금 든 후로 미뤄두었다. 대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경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바다 낚시를 자연의 독서실로 삼았다. 낚시 대 펼쳐놓고 방울 하나 달아둔 다음 책을 편다. 고기가 잡히건 말건 조급함도 없다.
나의 작은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
하나는 정신의 틈새를 독서로 막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언젠가 나 자신, ‘틈새 독서’와 같은 나만의 책이 나오길 희망하기 때문이다.
적어도10년간의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대중적이지 못할 나의 책은 사랑하는 두 아들을 위한 책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그 정도 공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나를 고무시켰던 책, ‘틈새독서’ 독서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에게 권한다. 독서를 위한 좋은 책들도 함께 소개 되어 있어서 다음에 연계해서 찾아 볼만한 기회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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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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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가와는 처음 만났다. 위화 라는 이 사람은 마치 촌부처럼 생겼는데 그와의 처음 만남이 나쁘지가 않았다.
그의 작품은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간다. 그 중 하나는 작가가 만든 허구의 인물들에 의해서 고 두 번째는 독자에 의해서다. “작가는 그가 만든 허구의 인물이 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아무런 간섭도 말아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바람 속의 해답을 찾도록 존중해줘야 한다” 작가의 생각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허구의 인물들. 자연스럽게 그 자신들 만에 성품을 드러낼 수 있도록 리드해주는 작가라. 참으로 이상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학을 통해 삶에 대한 태도와 생각을 수정해 간다”는 그의 말 역시 강하다.
결국 작품이란 것은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만 독자에 의해서 완성되어 지는 것이라 믿었기에 위화의 말에 공감이 간다. 독자들 마다 살아가고 받아들이고 꿈꾸는 세상은 천차만별. 작품의 몸통은 하나로 태어나겠지만 독자들로 인해 수 천 개의 가지로 뻗어갈 수 있다는 것, 그 것은 나로 인해 또 하나의 허삼관 매혈기가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허삼관을 통해서 바라본 우리 삶 저 변에 깔려있는 슬픔. 극한의 고통을 체험한 그를 통해서 어지간한 슬픔 따위는 해학적으로 웃어넘기게 만든다.
그의 농축된 슬픔을 비유하자면 ‘새 에덴 동산에 돌기둥과 같은 것’이다.

얼마 전 욕지도를 여행했었다. 지도만 한 장 달랑 들고 섬을 일주했었는데 그 곳에서 보았던 ‘새 에덴 동산’. 암 선고를 받고 하나뿐인 딸과 함께 찾아 들었다는 욕지도. 완치의 기적을 바라면서 12년 동안 주위에 돌을 깨고 그 돌 가루로 건축물을 만든 것이 지금의 ‘새 에덴 동산’인 것이다.
건장한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을 나약한 여자의 몸으로 한다는 것이 여간 놀랍지 않았다. 불면 날아가 버릴 것처럼 허약해저 버린 두 모녀. 그러나 미래에 꿈을 잃어버리고 살지는 않았다. 주변의 암석을 깬 돌 가루와 황토를 섞어 만든 작품들. 에덴 동산 입구에 늘어선 돌기둥, 그 기둥이 하늘을 향해 세워질 때마다 빌었을 간절한 소원, 그들의 순수한 열정,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을 믿음.. 이러한 것들이 오롯이 녹아 있는 에덴 동산.

작품에서 등장한 허삼관이 보여주는 삶의 양식은 바로 그 것과 닮아 있다.
둘째 아들, 상사의 말,‘몸은 상해도 기분은 상하면 안 된다’ 은 ‘몸은 힘들어도 양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가족을 위해 피를 팔아야만 했던 허삼관. 그러나 그는 제 몸에 생명을 주관하는 피를 뽑아내면서도 정작 중요한 양심의 피는 지키며 살았다.
지독히도 인간적이면서도 해학적인 허삼관 매혈기. 그의 슬픈 행보를 따라 걷다 보면 그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우리 부모님도 보이고 때로는 나도 보인다.
고대 로마의 시인, 마티에르는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 했다.
허삼관 매혈기, 그 진홍빛 여로 끝에 만나게 될 현재의 나를 기쁨으로 보듬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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