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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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가와는 처음 만났다. 위화 라는 이 사람은 마치 촌부처럼 생겼는데 그와의 처음 만남이 나쁘지가 않았다.
그의 작품은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간다. 그 중 하나는 작가가 만든 허구의 인물들에 의해서 고 두 번째는 독자에 의해서다. “작가는 그가 만든 허구의 인물이 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아무런 간섭도 말아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바람 속의 해답을 찾도록 존중해줘야 한다” 작가의 생각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허구의 인물들. 자연스럽게 그 자신들 만에 성품을 드러낼 수 있도록 리드해주는 작가라. 참으로 이상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학을 통해 삶에 대한 태도와 생각을 수정해 간다”는 그의 말 역시 강하다.
결국 작품이란 것은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만 독자에 의해서 완성되어 지는 것이라 믿었기에 위화의 말에 공감이 간다. 독자들 마다 살아가고 받아들이고 꿈꾸는 세상은 천차만별. 작품의 몸통은 하나로 태어나겠지만 독자들로 인해 수 천 개의 가지로 뻗어갈 수 있다는 것, 그 것은 나로 인해 또 하나의 허삼관 매혈기가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허삼관을 통해서 바라본 우리 삶 저 변에 깔려있는 슬픔. 극한의 고통을 체험한 그를 통해서 어지간한 슬픔 따위는 해학적으로 웃어넘기게 만든다.
그의 농축된 슬픔을 비유하자면 ‘새 에덴 동산에 돌기둥과 같은 것’이다.

얼마 전 욕지도를 여행했었다. 지도만 한 장 달랑 들고 섬을 일주했었는데 그 곳에서 보았던 ‘새 에덴 동산’. 암 선고를 받고 하나뿐인 딸과 함께 찾아 들었다는 욕지도. 완치의 기적을 바라면서 12년 동안 주위에 돌을 깨고 그 돌 가루로 건축물을 만든 것이 지금의 ‘새 에덴 동산’인 것이다.
건장한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을 나약한 여자의 몸으로 한다는 것이 여간 놀랍지 않았다. 불면 날아가 버릴 것처럼 허약해저 버린 두 모녀. 그러나 미래에 꿈을 잃어버리고 살지는 않았다. 주변의 암석을 깬 돌 가루와 황토를 섞어 만든 작품들. 에덴 동산 입구에 늘어선 돌기둥, 그 기둥이 하늘을 향해 세워질 때마다 빌었을 간절한 소원, 그들의 순수한 열정,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을 믿음.. 이러한 것들이 오롯이 녹아 있는 에덴 동산.

작품에서 등장한 허삼관이 보여주는 삶의 양식은 바로 그 것과 닮아 있다.
둘째 아들, 상사의 말,‘몸은 상해도 기분은 상하면 안 된다’ 은 ‘몸은 힘들어도 양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가족을 위해 피를 팔아야만 했던 허삼관. 그러나 그는 제 몸에 생명을 주관하는 피를 뽑아내면서도 정작 중요한 양심의 피는 지키며 살았다.
지독히도 인간적이면서도 해학적인 허삼관 매혈기. 그의 슬픈 행보를 따라 걷다 보면 그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우리 부모님도 보이고 때로는 나도 보인다.
고대 로마의 시인, 마티에르는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 했다.
허삼관 매혈기, 그 진홍빛 여로 끝에 만나게 될 현재의 나를 기쁨으로 보듬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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