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힘 - 사유하는 어른을 위한 인문 에세이
최준영 지음 / 북바이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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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 수원 화성행궁에 위치한 <책고집>작은 도서관에서 최준영 작가님의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책고집>은 책을 매개로 한 소통과 연대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최준영 작가님의 고집이 만들어 낸 장소이다. 시작은 미약했고 아무 것도 없이 본인 집에 있는 2천여권의 책을 갖다 놓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이 곳에서 나는 문학을 만나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부족과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과 소소하게 보이지 않는 봉사와 나눔의 따스함을 배웠다.
개인운영으로 지원받는 곳이 따로 없기 때문에
회원들 개개인의 회비를 모으거나 최준영 작가님께서 나가시는 강의 강사비로 충당되어 초청되는 강사비나 운영비가 빠듯하다. 대개는 너무나 감사하게 정해진 적은 강사비도 마다않고 와 주신다. 몇몇 작가님들께서는 책고집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기꺼이 강의료 없이 강의를 해 주신다는 말씀을 전해 듣는다. 아마도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시는 분들의 마음이 통하기 때문이라 믿는다.

이 책은 자기 자신과 타인의 결핍을 마주하고 그것을 원동력 삼아 인생 공부를 이어가고 있는 작자가 세상에 건네는 이야기이다. 강연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 그리운 어머니, 지금‧여기 우리네 삶의 풍경들, 인문독서 공동체 책고집, 책과 영화, 사회와 정치에 관한 단상과 비평 등이 엮인 글타래에는 우리가 좀처럼 보려 하지 않는 세상의 내면을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지은이의 시선이 담겨 있다.

부자든 가난한 자이든 누구나 문화에 대한 갈망이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그저 밥과 잠자리 해결이 전부가 아니었다. 가난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고 가난한 자와의 인문학적 관계가 현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워낙 힘이 막강해서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인문학 열풍은 불고있으나 사람을 모으는 인문학쇼나 이벤트적인 현상으로 도출되어버리기도 한다.

노숙인이 직업과 집이 없어서 노숙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위에 없는 것이 노숙인이다. 사람이 없고 자신을 잃으면 그 사람은 노숙인이 되고 자존감마저 떨어지먼 구걸을 하게된다.

강의를 듣고 다양한 인생들을 간접 경험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도 다양해졌다.
하고싶은 일을 하는 자유가 아니라
해야하지만 하지 않을 자유를 생각하고
이제 `결핍'을 채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건,
어쩌면 '과잉'을 덜어내는 쪽이 아닐까란 생각도 한다.
결핍에 내재된 그 힘을 알기 때문이다.


■책 속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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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현장을 전전할 때였다. 주로 모래와 시멘트를 섞는 일을 했는데, 뜻밖에도 거기서 느림의 힘을 알게 됐다.
몇 삽 크게 푸고 허리 펴기를 반복했더니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암묵지를 알려주셨다.
“욕심내서 한 삽 크게 뜬다고 일이 빨라지는 게 아니야. 조금씩 떠서 천천히 해봐.
그럼 거짓말처럼 힘도 덜 들고 일도 금방 끝낼 수 있을 거야.”
ㅡ <소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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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본디 부족한 존재다.
부자이거나 권력자라고 예외일리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도가 더 심할 테고,
부자들 역시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산다.
어쩌면 결핍은 우리네 삶의 원형일지 모를 일이다.
결핍을 대하는 태도에서 삶이 갈린다.
어떤 사람은 결핍으로 인해 좌절하지만 어떤 사람을 결핍을 경쟁력으로 승화시킨다.​
ㅡ<결핍의 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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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노래가 하필이면 장사익이 부르는 <꽃구경>(시인 김형영의 시에 곡을 붙였다)이었다.
노랫말 후미의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라는 대목에서 심장이 멎는 듯한 흉통에 몸서리쳤던 기억이다.
이따금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도리 없이 그 노랫말이 뒤미처 떠오른다.
― <꽃구경>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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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껍데기는 밖으로부터 오는 힘에는 알을 품은 어미가 무게를 견디는 것만큼 단단하고, 안으로부터 오는 힘에는 쉽게 깨고 나올 수 있을 만큼 약하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 마음이 알의 원리를 닮았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풍파에는 끄덕하지 않지만 자식의 일에는 한없이 약해진다.

자식이 알이라면 어머니는 알의 껍데기다.
스스로 알을 낳고 변방에 물러서서 알의 내부를 지킨다.
그러다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닌 알에서 자란 새끼의 몸부림에 기꺼이 무너지고 부서진다.​
ㅡ<단풍과 어머니의 주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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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자는 묻는 사람이다.
묻는다는 건 진실을 알기 위한 기본적인 노력이며, 정당한 문제제기이고 엄정한 비판이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리 없는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기자는 사실을 근거로 끝없이 의심하고 묻고 비판하고, 다시 따져 물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실은 수면 위로 올라온다.
묻기를 멈추고 듣기만 하는 기자라면 그는 더는 기자가 아니다.
― <기자는 묻는 사람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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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모든 것은 자기 냄새를 갖는다.
꽃에만 향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돌에도 흙에도 냄새가 있다.
나무나 풀, 물과 흙과 날짐승과 들짐승에도 고유한 냄새가 있다.
바람은 세상의 모든 냄새를 실어 나르는 냄새의 전령이다.
사람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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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다고 권력이 이동됐다고 보는 건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관료권력과 언론권력은 여전히 그대로다. 과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국정개혁에 애를 먹은 이유가 그것이었다. 청와대 비서실을 개편하고, 장차관을 바꿔봐야 일선 공직사회를 장악하지 못하면 개혁은 물 건너가기 일쑤다.
― 「주사와 사무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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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품성을 가졌다고 해서 저절로 선한 결과를 얻는 건 아니다. 선한 품성과 의도를 떠받칠 실력을 길러야 하고 현실적 난관을 뚫어낼 의지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선한 결과에 이를 수 있다.
ㅡ<대통령의 혼밥>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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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담은 최소한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하는 본인과 험담의 대상자, 그 험담을 듣는 사람.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왔거늘 왜들 그리 서로를 죽이려 하는가.
여럿이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러라고 받아둔 선물이 산더미를 이룬다.
밝고 빛나는 삶을 살라고 불을 선물받았고,
둥지를 짓고 살라고 지구라는 아름다운 터전에 왔다.
소통하고 공감하라고 수도 없는 생각을 말과 글로 벼려왔다. 그 모든 고귀한 선물을 왜들 그리 엉망으로 탕진하는가.
왜들 그리 증오와 환멸의 삶을 살려고 하는가.
― <언어의 한계는 나의 한계이다>중에서

여유로운 마음부자가 되기까지 참으로
굽이굽이 에돌았다.
그 덕분에 마음에 근육이 생겼고
삶이 즐거워졌다. ​

결핍의 힘이다
결핍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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