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새움 세계문학
조지 오웰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영원한 스테디셀러이기도 한 [동물농장]은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필독서로 손꼽히는 책이다. 동물들이 나오는 동물농장이 우화적인 설정이라고 해서 아이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책은 아니라서 읽을수록 조지 오웰의 단순화되었지만 개성있고 강한 정치성을 가진 소설이라는 것에 놀랍다.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이 읽는 책에는 당연한 이유들이 있을 터이다. 작품의 가치를 운운하기에는 좁다란 식견에 넘치는 부분이고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어느 문장에 어떤 풍자를 투영한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던 책인데 지난 해 <책읽어 드립니다> 프로그램에서 한번 듣고 나니 조금 쉽게 다가섰던 책이다. 1940년대에 지금과 같은 과학적인 매래를 예측할 수 없던 시대에 나온 우화로 가히 SF급이라는 설명이 와닿았다. 과학적인 상상이 불가피하던 시절에 자연과 동물에 감정을 이입한 것이라는 이야기에 솔깃해서 다시 읽던 적이 있다.

기존의 고전을 다르게 번역하고자 노력하는 새움출판사의 노력은 이번에도 헛되지 않았다. 어려운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으로 탄생한 새움출판사 버젼의 [동물농장]은 직역을 하며 원작의 뜻을 가장 가깝게 접근하고 저자의 의도를 담아내고자 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이 책은 여러 이유로 출판이 거부되었던 원고이기도 했다. 단행본 한권이 되기에 너무 짧은 양이나 상업적 실패도 고려대상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정치상황과 관련지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될 당시에는 작가 서문이 없었다. 뒤늦게 밝혀진 사정에 미루어 작가는 정식 출판을 포기하고 자비 출판을 할 요량으로 검열을 비난하는 서문을 썼다가 출판계약이 되면서 뒤늦게 실리게 되었다는 후일담이다.

이 책에서는 서문 대신에 자신이 왜 이 작품을 쓸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세상에 밝힌 그의 대표적 산문 <나는 왜 쓰는가>를 번역해서 실었다. 그 안에서 작가는 [동물농장]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완전히 의식하면서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시키려 애썼던 첫번째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정서 번역가는 기존의 단어를 달리 번역했다. 'Manor Farm 메너농장'이라는 고유명사 대신 '장원'이라는 말을 불러왔다. 또한 Major를 '메이저'라는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고 '소령'이라는 단어로 나름의 의미를 살려 직역한 점이 특이하다.

우화로 읽었을 때 <동물농장>은
특정한 지역, 즉 소비에트 체제라는 시대의 권력형식을 내세운 역사적 정치풍자의 수준을 넘어 독재에 대한 우의적 정치풍자로 넓어진다.
친숙하게 알고 있던 시대상황을 동물들을 내세운 <동물농장>으로 비유한 소설이다.
풍자와 우화라는 두 서사 형식을 결합한 <동물농장>은 우화이기 때문에 어떠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비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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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존재요. 그들은 우유를 내놓지도 못하고 알을 낳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쟁기를 끌기엔 너무 허약하고 토끼를 잡을 만큼 빠르게 다릴 수도 없소. 그럼에도 그들은 모든 동물의 왕이죠.

그들은 동물들에게 일하도록 하게 만들고는 굶어죽는 것을 막을 만큼의 최소한을 돌려주고 그 나머지는 자신들을 위해 보관합니다.

인간의 모든 관습은 악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어떤 동물도 같은 동물을 탄압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약하든 강한든 영리하든 단순하든 우리는 전부 형제입니다. 어떤 동물도 서로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됩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합니다. ​

때때로 작업은 고됐다. 도구들은 동물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설계되어 있었고 서 있는 것과 관련한 어떤 도구도 사용할 수 있는 동물이 없다는게 무엇보다 문젯거리였다.

동물들은 일찍이 상상도 못했을 만큼 행복했다. 입에 넣는 먹거리는 그지없이 달콤했다.
그것은 과거 인색한 주인이 마지못해 동냥주듯 던져주던 그런 먹이가 아니라 동물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위해 생산한 먹이, 진정한 그들 자신의 먹이였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기생충 인간들이 사라지고 나자 동물들에게는 먹을 것도 더 많이 돌아갔다. ​

이제 동물들과 인간의 관계는 옛날 같지 않았다. 물론 동물농장이 지금 잘나가고 있다해서 그에 대한 인간들의 증오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증오는 전보다 더 강했다.

그러나 농장의 이런 사정은 바깥세계가 알지 못하게 감출 필요가 있었다. 풍차붕괴 소식에 힘을 얻은 인간들은 동물농장에 대한 거짓말들을 새로 지어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받은 충격은 컸고 기분은 비참했다. 그들은 스노볼과 한패가 된 동물들의 반역이 더 충격적인 것인지, 아니면 방금 목격한 참혹한 보복이 더 충격적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많은 동물들이 그 말을 믿었다. 그들 생각으로는 지금 그들이 배고프고 몸 고달픈 이승의 삶을 살고 있으므로 어딘가 더 나은 세상이 마땅히 존재해야 한다는 건 너무도 옳고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말인즉 지금의 사정이 옛날보다 더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고 앞으로도 더 나아지거나
더 못해지지 않을 것이며 굶주림과 고생과 실망은 삶의 바꿀 수 없는 불변법칙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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