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 개정판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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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책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은 밀려서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꺼내놓고 시간은 많은데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서평단도 거의 끝나서 이제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오히려 시간이 주어지니 책과 멀어지는듯 했다.

그러던 중 2014년에 나온 권여선 작가의 소설
<토우의 집>이 재출간되어 선물처럼 내게로 왔다.
권여선 작가의 작품을 만난 것은 처음이라 궁금한 마음에 다른 책들을 제치고 먼저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고 흥미롭게, 혼자 가슴이 간지럽게 웃으며 읽어가던 소설은 마지막 몇 장을 남기고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고통에 시선을 돌리고 그들의 꿈을,
작은 고통이 세상의 커다란 고통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의 온기를 위해 글을 써왔다는 작가의 말처럼,
마지막 토우의 집에서 부르는 노래처럼
그들의 고통들이 품에 안겨 뜨뜻해진 눈물이 흘렀다.

한지붕 세가족처럼 삼벌레 고개 우물집 안주인 순분네와 새로 이사온 새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의 아들 금철이와 은철이, 새댁의 딸들 영이와 원
그리고 주변의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람냄새를 풍기며 빠져읽게 만든다.

아이들의 순진한 놀이들과 여러 계단 위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가며 드라마처럼 상상하며 읽는 시간은 소설을 읽는 재미난 묘미이다.​

새댁이 해주는 맛난 음식과 효자 효녀 이야기를 듣고 상상하는 은철의 생각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은철은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언제나 본의 아니게 새댁과 대조되는 행동만 선보이는 순분이 그날 저녁에 하필 고추장에 버무린 닭발을 한 냄비 가득 흉측하게 볶았기 때문이다. 닭발이 먹기 싫은 것도 싫은 것이지만, 나중에 아빠나 엄마가 병이 들어 닭발이나 족발 같은 게 먹고 싶다하면 자기 손발도 잘라 벌겋게 볶아 내놓아야 할 것 같아 은철은 더욱 서럽게 울었다.」

은철에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옛날 부모들이 무섭게 먹을 걸 밝혔다는 점이었다. 한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하고, 가을에 앵두가 먹고 싶다 하고, 고기가 먹고 싶다, 흰쌀밥이 먹고 싶다, 식탐이 한도 끝도 없었다. 어떤 효자는 병든 부모가 고기가 먹고 싶다 하여 자기 허벅지 살을 잘라 양념을 하여 올렸다하니, 식탐많은 아빠가 걱정인 것이다. 만약 아빠가 병이 나서 날간이나 곱창이 먹고 싶다하면 자기의 간과 창자를 빼주어야 하는지 은철의 마음이 복잡했다는 대목에서 아이들의 생각이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오래전 이 곳에 삼악산이 있었지
북쪽은 험하고 아득해 모르네
남쪽은 사람이 토우가 되어 묻히고
토우가 사람 집에 들어가 산다네
그래봤자 토우의 집은 캄캄한 무덤"

그 어떤 인생도 소설같지 않은 인생은 없다.
누구든지 삶의 굴곡을 들여다보면 쉬운 인생이 하나도 없으니 소설처럼 엮어내기도 잘한다.

살면서 얻는 행복이란 큰 것이 아니었음을 소홀하게 여기고 지나치던 작은 것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무릎을 다치고 동생의 건강을 생각하는 금철이,
식모가 나가고 나서야 난쟁이 식모가 궁해지는 순분이,
아픈 손가락을 동여맨 딸 원이를 보고 안타까운 덕규,
뚜벅이 할배를 잃고 부재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동순 할매가 떠난 이유들도 모두 곁에서 다시 볼 수 없다는 슬픔의 생생한 느낌으로 감당하지 못함이다.

「아침 설거지를 하다 말고, 빨랫감을 담가놓은 채로, 방을 닦다 걸레를 집어 던지고 새댁은 집을 나갔다.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중간에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덕규의 무덤에 갔다.
"새댁, 애들 생각도 해야지. 영이랑 원이 불쌍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애들이 있으니 제가 살아 있기는 해야겠지요?"​
"그런 말이 어딨어? 어떻게든 견디고 살아야지"
"뭐든 다 빼앗아 가는 세상이에요"
"그래도 자식보고 견뎌야지. 살다보면 살아져"」

내가 힘들 때 따라 부르는 노랫말이 생각이 났다.
차지연의 "살다보면 살아진다"라고 했던가...
남편의 무덤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꾸만 달려가는 새댁, 자식 때문에 정신줄을 잡고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새댁의 모습에서 왈칵 울음이 터졌다.

혼자된 후 어린 딸과 작은 방으로 이사해놓고
추운 겨울 가슴이 답답해서 공원 눈밭으로 뛰쳐나가던 내 모습이 보였다.
딸아이 재워놓고 잠이 오지 않아 몸부림치며 까만밤이 하얗게 밝아오던 숱한 밤들도 지나갔다.
자식이 있으니 살기는 살아야겠고 사는 것이 막막했던 시절이 떠올라 소매로 눈물을 훔쳐가며 읽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 앞으로 달려가는 심정은 어떠할지 심장이 쪼그라들고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두 아이는 각자의 서러움에 복받쳐 울었다. 애초부터 계란 볶음밥 같은 건 문제도 아니었다. 어린 스파이들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것들 때문에 울었다.
일 년도 안 된 지난 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울었다.​
이 모든 일이 어린 그들에게 지나치게 억울하고 가혹해서 울었다.」

일 년도 안된 지난 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이란 지금 우리의 상황과 같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별 차이가 없는 일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계가 끊어지는 막막한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일 년도 안된 지난 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다가온 상황에 때로는 지나치게 억울하고 가혹해서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갯길 중턱, 그 위로는 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과 그 아래로는 조금 풍족한 사람들이 사는 경계에서 가난의 정상과 풍요의 들판을 잇는 축의 중심에 다리를 벌리고 늠름하게 서있는 금철의 씩씩함이 돋보인다.
원이의 쫑알거림을 지켜주지 못한 새댁과 달리
사랑하는 딸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지켜줄 수 있었음에 속울음을 삼키며 정신줄 놓지않고 살아낸 보람을 느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어머니, 어머니하며 고운 마음 드러낸 원이의 사랑스러운 쫑알거림이 맴돌아 가슴팍 언저리에 저릿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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