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의 기쁨과 슬픔 - 탈모 심리 픽션 에세이
부운주 지음 / 동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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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돈 벌어서 가발해 줄께"
점점 약해지는 모발, 힘없이 빠지는 머리카락은 애기 솜털처럼 가늘어졌다. 앉아 있으면 휑해진 정수리가 더 잘보이니 딸의 눈에는 안타까운 모양이다.
"너는 젊을 때 잘 챙겨먹어!!^^"

어떤 일이 닥쳤을 때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방식은 다양하다. 회피와 무관심도 있지만 적극적이고 긍적적으로 가능성을 배제하는 사람도 있다.
제목을 읽으며 탈모라는 질병을 소재로 자전적 에세이를 쓰다니 적지않게 놀랐다. 나 역시 젊은 시절의 영양부족과 스트레스 때문인지 탈모 전조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놀랄 정도로 머리카락이 가늘고 힘이 없어지다보니 더없이 초라해지고 움츠러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생각해서 어떤 치료를 받을 생각조차 할 틈없이 살았다. 내 몸을 위해 양질의 프로틴을 챙겨먹고 발모제를 바르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생각도 못했기에 더 서글펐다. 실제로 풍성한 머리카락이 주는 자신감과 머리숱이 적은 사람의 심적 위축은 심리학적이나 정신적인 측면에서 우울증을 동반한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의 자전적 픽션 에세이지만 읽다보면 주인공 지현의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는 장면에서는 함께 마음이 아파 눈물을 글썽거리게 된다. 빡빡이, 대머리, 문어라고 웃어넘기는 분위기 때문에 더 꽁꽁 싸매야하는 당사자들의 이야기.

특이한 병을 앓게 된 작가는 한참 예민한 청소년기에 갑자기 시작된 원인 모를 탈모증상을 겪게 된다.
중3 여학생, 긴머리를 찰랑거리며 미모에 관심이 많을 때 50원 동전 만큼 비어지기 시작하던 머리카락은 100원 500원 동전의 크기만큼 순식간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4개월이 되는 날에 머리카락이 모두 사라지는 끔찍한 일을 겪는다.
머리카락에 힘이 없어지고 정수리 탈모가 시작되는 것 만으로도 속이 상하고 외출할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 데 어린 나이에 맞닥뜨린 난치병이라니,,,
병원 치료를 받으며 희망을 기대했지만 머리카락은 다시 나지 않고 오히려 부작용으로 전신탈모증으로 번졌다.
결국은 가발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삶으로 선택이 아닌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받은 놀림과 충격으로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게 되고, 더운 여름에도 비니를 써야하는 사람들의 고충...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환경과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주변의 공감적 반응이 굉장히 중요하다. 탈모로 인한 불안과 대인기피증을 시작으로 마음의 고통을 떠안고 살아간다.

"머리카락이 빠진 그날부터였다. 탈모량에 비례해 나는 점점 움츠러들었다.
참혹했다. 피부과 의사의 말대로 독하게 마음먹고 두피를 빡빡 문지른 결과는, 그러나 너무나도 잔인했다. 화장실에서 일어난 조용한 학살에 내 가슴은 쇠망치로 내려친 유리처럼 으깨져 버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예전처럼 머리를 감지 못하게 되었고, 두번 다시는 머리카락으로 뒤덮인 두피를 빡빡 문지를 때의 야릇하고 절묘한 감촉을 맛볼 수 없었다.
"응, 쟤 머리 봐라. 밥맛 떨어진다'
"푸하하,여자애가 대머리?대박인데"
"진짜 불쌍하다. 탈모가 저 정도면 나중에 결혼도 못 할 거야"
"우리 나이에 탈모라니 진짜 안 됐다. 내가 쟤라면 진심 자살한다"
"야 대머리의 매력이 뭔지 아냐?
헤어날 수 없는 매력. 헤어(hair), 머리카락.흐흐"
"너는 그 나이에 탈모냐? 그것도 여자애가. 참 기막힌 일이네"

사람의 불행을 보고 위로하고 공감하는 단계는 여러가지가 있다. 위의 대화처럼 하이에나들처럼 덤벼들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심으로 조용히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다.
지현이도 치료받으러 다닌 병원에서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친구와 만나게 된다. 그 둘의 우정이 눈물나게 아름답다.

청명이라는 친구는 늘 지현이를 위로한다. 먼저 탈모증을 앓은 선배처럼... 여섯 살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고 치료와 부작용의 반복으로 전신 탈모증이 일찌감치 오게 된 청명이는 처음 탈모증으로 힘든 지현이에게 언니처럼 살갑다. 그 속엔 어릴 적부터 상처와 싸운 고된 삶으로부터 배워 온 어쩔수 없이 받아들어야 하는 운명같은 고백같아 마음이 아팠다.

"많이 힘들었지?4개월만에 그렇게 되었으니 지금 정말 힘들겠구나. 돌이켜보면 나도 머리카락이 처음 빠질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
청명의 목소리는, 작지만 깊은 메아리였다. 성량은 크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격이 다른 깊은 울림이 담겨 있었다. 밤하늘 은은한 달빛이 진득한 어둠 속으로 울려 퍼지듯 포근한 목소리는 나비처럼 나폴거리며 내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우리는 발자국을 따라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돌아오는 내내 청명과 나 사이엔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청명이라고 해서, 아픔을 먼저 겪었다고 해서 특벽한 말을 해줄수는 없다. 진정으로 끔찍한 충격은 원래 그런 법이다. 별다른 말은 없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라는 걸 나는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고요하지만 따뜻한 침묵 속에서, 청명과 나는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정신의학과 의사 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어주게 될 사람의 속에 흐르는 눈물과 웃음을 어찌 알 수 있을까?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알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것, 그 안에 감추인 슬픔과 상처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성하지 않은 어느 한 구석에 가발로 위장한 듯이 무작정 덮어놓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맞춰살기 위해
숨은 노력을 해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진다.
생명에 지장이 없는 일이지만, 여성으로서 대머리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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