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러시아 고전산책 5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김영란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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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3대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의 작품은

<첫사랑>과 <무무>로 만났다. 독서모임의 첫 도서였기에 민음사 책을 호기롭게 구입해서 읽었다. 어느 새 6년 전이라 분위기와 제목은 또렷하지만 내용은 가물거리는 책과 작가이다. ^^;;



오랜만에 만난 러시아 문학 <파우스트>는 분명히 아는 책 제목같으면서도 생소했다. 생각해보니 평소에 들어왔던 <파우스트>는 일반적으로 괴테의 작품을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괴테의 작품도 읽지 못했으므로 차라리 어떤 편견없이 읽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괴테의 <파우스트>라는 작품이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파우스트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작가정신

김영란 옮김

세 편의 중단편이 실린 책으로 200여 페이지의 아주 읽기 적당한 두께감이었다. 며칠 전 400페이지도 넘는데다가 내용도 벅찼던 독서 정체기를 혹독히 만났었기에 차라리 고맙게도 잘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세 번의 만남>이라는 소설은 사냥을 나갔던 호젓한 곳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을 홀로 마음에 품은 주인공이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장소에서 그 여인을 또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흠모하던 그 여자 곁에는 멋진 남성이 함께 있었으므로 그는 이름조차 알지 못한 채 마음만 키워간다.

얼핏 읽다보면, 애인이 있는 여자를 마음으로 품은 남자의 말도 안되는 질투이야기가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숨은 뜻이 있을 터이다. 서정적인 이야기와 감각적인 문체는 시를 읽는 듯이 부드럽고 깔끔해서 읽어내는 데 신비한 힘이 있었다.



익숙한 그 저택을 지날 무렵 어느덧 주위는 짙은 어둠에 싸인 채 하늘에는 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한마디로 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하늘에 있었다.

보리수들은 마치 소멸해가는 산책로로 나를 부르는 듯 했고 어슴푸레한 그림자 속으로 나를 유혹하는 듯햇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푸른 색으로 부드럽게 반짝이는 별빛이 높은 곳에서부터 은밀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별들은 마치 고요한 시선으로 주의 깊게 이 머나먼 지구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잠 못 이루는 따스한 밤이 기다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밤은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아있는 소리를 이 예민한 정적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세 번의 만남.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여인에 대한 감정은 무엇일까?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인연은 그 여인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고 마음으로 부끄러움에 젖어 결국 질투심이었음을 고백한다.




궁금하던 책은 바로 <파우스트>라는 표제작이자, 괴테의 작품과 똑같은 책제목을 당당히 꺼내 든 소설이다.

같은 사람이 같은 친구에게 보내는 아홉 통의 편지로 전개되는 독특한 형식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야 이반 투르게네프 자신이 얼마나 괴테의 작품을 사랑했고 <파우스트>에 빠졌는지 알게 되었다.

그만큼 인생을 강렬하게 흔드는 문학작품을 만났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기묘하게도, 혹은 선명하게도 바꿔주는 힘이 있는 듯하다.

괴테의 작품은 읽지 못해서 비교를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나중에 꼭 찾아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은 고향집에서 오래 전에 읽었던 책 <파우스트>를 발견한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다시 만난 책<파우스트>에 대해 청춘이 되살아나는 기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문학이 주는 심장의 격동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젠가 내가 외국에서 가져온 책들도 발견했어.

괴테의 <파우스트>도 있더군. 자네가 기억할지 모르지만, 한때 난 <파우스트>를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암기한 적도 있었어. 아무리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어. 나에게 그토록 낯익은 이 작은 책을 발견했을 때 그 느낌이란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였어.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내 청춘이 눈 앞에 되살아나 환영처럼 어른거리더니 온몸의 혈관을 따라 불길처럼, 독약처럼 뛰어다니는 거야.

그런데 내 자신이 늙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느끼게 되었는지 아나?바로 이렇다네. 지금 난 즐거운 감정을 과장하고 쓸쓸한 마음은 밀어내려 애쓰고 있거든.

하지만 젊었을 때는 반대였다네.

우수와 권태는 보물처럼 아끼고, 쾌락의 폭발은 애써 잠재우려 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지금껏 쌓아온 나의 모든 인생 경험에도 이 세상에서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남아있다는 느낌이야. 더구나 그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어릴 적 첫사랑 벨라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지만 사는 일에 바빠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 파벨은 <파우스트>를 읽어주기로 약속하고 만남을 갖는다. 낭독하는 시간과 책 선물을 받은 벨라는 문학을 접한 뒤 새로운 욕망에 휩싸인다.

사실은 벨라의 문학적 소양을 알고 감정에 빠질 것을 걱정한 엄마가 시나 소설을 읽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된다.

"밤새 한숨도 못잤어요. 머리가 아파서요. 바깥공기라도 마시면 좀 나아질 것 같아 나온 거예요."

그녀는 말했어.

"어제 내가 읽어드린 책 때문인가요?"

내가 물었어.

"물론이지요.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당신의 책 속에는 피하려해도 피할수 없는 무엇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머리가 불타는 것 같아요."

문학작품 속에서 자신의 삶의 단면을 만나기도 하고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을 마주하기도 한다. 자신이 빠져든 소설을 작품 세계로 반영하여 승화시킨 자전적 색채가 짙게 드러난다.

결혼한 여인에 대해 한 남자의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은 투르게네프 자신이 유부녀를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보아야 했던 실제 경험이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욕망에 굴복하느냐, 도덕적 의무를 지키는 인간의 삶의 선택하느냐 하는 주제를 던진다. 서정적인 문체와 자연의 아름다운 묘사에 빠져들어 모처럼 낭만적인 소설 속에서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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