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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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소에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두 부분이 교집합처럼 만났다. 일부 과학에 관련한 전문 지식과 젠더에 관한 부분이다. 과학 중에서도 생소한 진화심리학이라니...

걱정이 되는 마음으로 읽었다.

과학 중에서는 그나마 생물학 쪽이 조금 나은 편이고, 남의 생각을 꿰뚫어보는 듯한 심리학에도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남의 생각을 마음으로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굳이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상대를 다 아는 듯 말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여중과 여고를 나와서 절대 여대는 가지 않겠다고 대학은 공학을 가긴했지만 기본적으로 여자는 조신하고 남자는 씩씩하다는 고정관념을 귀에 박히게 듣고 자란 세대이다. 남자답게 호탕한 웃음을 짓는 여자친구가 부러웠고, 섬세한 남자들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아마도 정해진 규칙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갖는 호기심이 아니었을까.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이 책은 오랜 세월동안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인 진화심리학에 근거한 여러 이론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여성 지식인의 시선으로 쓰고 있다. 고정된 인간의 사고방식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일반화된 문장들을 간과하지 않고 하나씩 짚어나가는 것이 어렵지만 여성으로서 당연하게 찾고 반문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다보니, 이러한 문제는 미국 남성이나 한국 남성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아직 우리 사회에 저자처럼 민감한 부분을 소신있게 파고 드는 여성 지식인의 부재도 안타깝다. 인식의 전환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부분인데 나의 경우에는 딸을 키우면서 앙성평등, 혹은 젠더감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춘기인지라 종종 나의 꼰대근성을 고쳐 먹곤 한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생각조차 박해받지 않고 말할 자유가 있다. 그러니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조신함을 기본축으로 하는 성문화를 예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단 이러한 예찬이 과학적으로 정당하다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


남성 과학자들이 논하는 세계가 혼란스럽고 터무니없음에 어떤 가설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성차별적 언사와 괴롭힘을 당한 여성을 대변한다.

나의 경우에는 조직에서 사회생활을 한 경험이나, 성차별적인 언사로 모욕이나 굴욕을 당해본 기억이 많지 않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생각이 점차 깨우쳐지자 세상에 그 어떤 자연의 법칙까지도 당연한 것은 없었다.



공부하듯 읽었지만 아직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근원적인 성차이는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으로나눌 수 있다고 믿는 학자들에게서 비롯된다. 그러한 과학자들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작가의 논증들은 시의적절하게 남성과학자들의 문장을 파고들어 통쾌하다. 미국 사회에서도 과학자들의 논증에도 깔려있는 성차별이 이토록 가혹한 것인지 놀랍기도 했다.

일부다처제와 전통적인 엄격한 일부일처제 모두에서, 여성의 성에는 족쇄가 채워지는 반면 남성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전통적인 일부일처제는 남성의 성에도 제약을 가하지만, 성적 이중 잣대를 통해 남성에게 바람피울 수 있는 약간의 재량권을 준다.

결혼제도의 모순에 대해서는 종종 독서모임의 주제로도 떠오른다. 남성의 자유로운 성적 관념에 비해 족쇄를 채우고 성차이에 대한 결정이 그 자체로서 이념적이이다. 나 역시 여자와 남자가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며 왜?라는 질문을 해 보지 못했다. 여자라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했고, 남자니까 우선시 되는 것이 당연했던 것은 아무래도 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아빠와 남동생을 우대한 습관이 배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큰 댁에서 아들을 낳고 나서 나를 낳은 엄마는 딸을 낳아 죄인처럼 살다가, 그 이듬해 남동생을 낳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고 했다. 그 때에는 웃으며 지나는 에피소드에 불과 했지만, 그 또한 얼마나 억울한 성차별이었을까?

세대가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남성와 여성을 나란히 툴애 가두지 않고 가치를 판단하는 것에 민감하다.

버스의 수사는 라이트의 수사처럼 노골적으로 보수적이지는 않지만, 결국 그도 같은 목적을 갖고 잇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성규범이 자연의 이치임을 우리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두 진화심리학자 모두 성차별화를 극대화하는 사회 구조를 떠받들고, 성적 이형성이 두드러진 사회들이 가장 평등주의적이지 않으며,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경제, 교육,직업적 기회를 줄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은 편리하게 무시한다. 남성과 여성이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성차별화가 최우선 과제가 아닌 사회들이 평등주의 사회에 근접한 사회이기 쉽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나는 어떤 편에서도 옹호하는 주장이 없다. 하지만 억울하게 차별적인 언사나 모욕을 퍼붓는 사람들이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페미니즘에 올바른 이해는 사회를 제대로 보고 어떤 주제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영역이다. 어설픈 이념의 해석은 더욱 논란의 여지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어떤 새로운 것을 직면할 때 제대로 된 개념의 숙지가 필요하다.

진화심리학이 드물게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경우에는 페미니즘이란 여성의 위상을 남성 위에 놓으려는 시도인 줄 아는 무지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현대 페미니즘은 대체로 예로부터 두 성을 분리해온 장벽들을 허무는 일과 관련이 있다. 페미니즘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우선 순위와 열정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며칠을 줄 그어가며 읽고 또 읽어도 어려운 과학 논문에 따른 성차별적 논증에 대한 반박의 글들이 어려웠다. 굉장한 혼란도 오고 공부하는 셈치고 읽고 쓰고 고치고 ...

그래도 아직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읽을 때에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응수하며 접어 놓은 책장을 다시 펼치면 또 생소해지는 부분들이 있어 다시 읽어봐야했다.

평소에 관심을 갖는 부분이 아니었던지라 나름 꽤 진보했다고 여겨진다고 해도 복잡한 여러 이론들을 한번에 이해하고 제대로 나의 주관을 세우기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남성과 여성을 판에 박힌 정형화되고 이분법적인 논리로 가르친다면 반박정도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식으로 무장하고 읽어야 할 책에 얼떨결에 편승해서 저자의 생각과 의도와 동떨어진 글을 쓰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방대한 지식인의 서사에 뛰어들어 작게나마 나의 틀을 깨고 더 넓은 생각에 동조해 볼 수 있어서 통쾌하기도 했다.

작가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리는 책이다.

이런 오만한 주장들을 만날 때면, 나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결과 지향적으로 흘러가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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