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클로이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앞표지와 뒤표지가 내용을 예고하는 것 같다.
오래된 건물의 창에서 서로 바라보는 주인공들.
그리고 공원 벤치에서의 봄날같은 만남.

2013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일어난 참혹한 폭탄테러, 결승선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를 당해 신체의 일부 다리 40cm를 잃은 클로이의 일기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읽는 순간, 처음부터 직감했다.
내가 그녀 클로이를 사랑스럽게 보게 되리라는 것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수동식 엘리베이터 운전기술을 보유한 디팍을 중심으로 건물에 삵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다채롭다.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현대식 엘리베이터 비용이 훨씬 적게 들 것이다. 하지만 오가면서 나누는 인사와 경청해주는 배려를 어떻게 금적적 가치로 환산할 수 있을까?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자동화하는 것은 숭무원 인건비를줄이면 비용이 절감됨에도 불구하고 5번가 12번지 건물의 주민들은 삶의 일부가 된 오래된 수동식 엘리베이터에 애착이 있다. 오랜 세월 성실하게 근무한 디팍과 리베라씨를 해고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엘리베이터 교체를 반대한다.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묻어나는 대목에서 감동을 받았다.
지금 사회의 갑질 따위는 이런 마음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나 이런 기회를 노리고
편법으로 자신이 이익을 꾀하려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주민의 대표라는 그룸랫은 승무원 리베라의 사고가 뜻밖의 기회라고 생각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애쓰는 모습이 비열해 보였다.

"잔에 물이 넘치지 않을 때를 알아야 한다"
-인도 속담-

"가까운 사람에게 무슨 큰일이 일어나면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결코 똑같지 않은 삶을 각자 살다가 맞이하는 죽음도 각자 다 다른것인데."

휠체어를 타게 된 클로이가 포기한 지하철이 쓸쓸해 보인다.
간단한 삽화들은 스케치만으로도 빛난다.

클로이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려는 의지로 마라톤에 참가한다. 마지막 결승선을 바로 앞에 둔 14시 50분,
폭파 사고로 다리 40cm를 잃고 휘체어를 타게 된다.
함께 살고 있는 건물의 주민들은 클로이를 특별한 사고를 입은 장애로 바라보지 않고 그 전과 같이 정상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뭉클하고 마음까지 촉촉해졌다.
클로이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므로
휠체어 손잡이를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와 달리 끌려다니고 싶지 않은 강한 의지의 표명이자, 복잡하지만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것.
멋지다. 클로이!!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나갔고, 디팍은 목례했다. 전과 다름없이 기품있는 인사에 나 자신도 예전과 달라진 게 없음을 느꼈다. 누구도 내 휠체어를 밀지 못하게 하리라.
14시 50분의 그 일이 있기 전, 나는 아무나 내 손을 잡게 두지 않았다."

당당한 그녀 클로이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관심을 갖는 것과 휠체어 그리고 자신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의족에 대한 불만이 내재되어 있다. 그런 클로이의 곁에 산지라는 인도 남자가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당신은 멋진 휠체어에 앉아 있는데 나는 피부색이 달라요. 당신 생각에는 누가 더 저들 눈에 들어올 거 같아요?"

인도에서 온 산지는 미국에서 사는 고모 댁에서 살다가 클로이와 만나게 된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낯선 곳에서 겪는 인종차별과 사람들의 편견과 위선에 대한 일침이다.
다르다는 것과 사람들이 받는 상처까지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것.
산지와 클로이의 거리는 다른 대륙에서 왔다는 문화적 거리일까?
아니면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일까?
그들을 갈라놓은 거리가 두 대륙 사이의 바다인지 아니면 9층인지, 그것보다는 정확히 40센티미터가 훨씬 큰 거리라는 클로이의 말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갖는, 가깝지만 멀고도 먼 마음의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 랄리 고모와 디팍 고모부의 러브스토리. 결국 계급주의였던 것에 염증을 느낀 랄리 고모는 집안의 완력에 굴복하지 않고
사랑을 선택하고 이 곳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
의연하게 자신들의 사랑과 삶을 이루어가고,
상처와 사랑이 함께 만들어간 세월의 층위들이 사려깊은 인간으로 만들었던 것일까.
랄리 고모의 대사들과 생각은 사람들이 원하는 지혜롭고 현명함이 배어 있었다.

"인도에서 도망칠 용기를 어떻게 내셨어요?"
"질문이 잘못 됐구나.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서 떠난거야. 무릇 용기라 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른 삶을 끌어안을때 쓰는 말이고....
용기는 희망이 있다는 거니까."

랄리고모의 말에 들어있는 문장들도 너무 탁월하고
디팍과 랄리의 사랑에 대한 확고함에 설레고 부러웠다.
일상에서 잔잔하게 묻어나고 우리가 겪는 이웃들의 배려와 친절함 속에 들어있는 설익은 이기심들까지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러브 스토리의 시작에는 이상한 패러독스가 있다. 두려움 때문에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말을 선뜻 꺼내지 못한다. 모든 걸 다 주고 싶으면서도 행복이 깨질까 감정을 아낀다.
싹트는 사랑은 깨지기 쉬운 만큼 무모하기도 하다."

골동품같은 엘리베이터에 애착을 가진 승무원과 아파트 주민들의 일상을 그리면서 인종차별, 편견, 다름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책을 읽고 생각했던 부분이다. 조금이라도 모습이 나와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 그냥 지나가는 것이 평화적인 공감이자 암묵적인 배려와 존중일 수 있는데 우리는 한번 더 쳐다본다.
그들은 타인이 흘깃거리며 바라보는 그 시선조차도 느끼기 불편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이 책에서 그런 시선은 다르다는 두려움과 타인에 대한 공포를 줄 수 있지만, 동시에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의 심리를 잘 나타냈다.
클로이 역시 아픔을 바라보는 것 외에도 정작 원하고 필요했던 것은 사랑이었다고 고백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은 주위의 풍경을 다르게 연출한다. 공원 벤치의 연주가 아름답고 깊어가는 봄을 느끼고, 장미화단에서 여러 종류의 장미향을 맡는다.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클로이는 살아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