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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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여성, 집사, 프리랜서, 채식지향주의자,
그림책 읽는 어른..
세계의 가장자리를 살아가는 마음가짐에 대하여"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이 마음에 들어 오래 간직하게 되는 이유는 각자마다 여러가지가 존재한다. 제목이 좋아서, 표지가 예쁘거나 독특해서, 출판사나 작가가 유명해서....
이 책은 쉽게 읽어지는 그림책에 작가의 일상과 생각들을 꿰어 만든 진주 목걸이 같은 단상들이 무척 귀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책이 도착했을 때부터 출판사의 정성에 감동을 받아 다른 책을 제끼고 먼저 읽었다.
사실은 제목이 궁금해서 읽고 싶기도 했다.
한장씩넘겨 읽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수원, 그리고 행궁동이나 학교 이야기가 왕왕 나오기 시작하며 글은 풍경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싶어
나는 정해진 틀과 통제 안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기르거나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모범생이었고, 그렇게 배운대로 시키는대로 착한 아이로 자라는 것이 바르고 올바른 삶이라고 배운 탓도 있지만, 타고난 나의 온순한 성향도 한몫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내가 나에 대해서 장점과 단점에 대해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부터이다.
때때로 나와는 달리 틀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기의 신념을 올곧게 마주하며 사는 사람이 부러웠는데 작가 무루/박서영이 그런 사람이었다.
단정하고 가지런한 글밥 속에는 자신만의 결이 있었고, 남들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주도하고 즐기며 자족하는 향기가 퍼지는 기분좋은 책이었다.
더불어 곳곳에 필사하고 싶어서 접은 페이지가 수두룩하게 많지만 다 적을 수 없어 아쉬운 책..


"다른 것을 배척하지 않고,
낯선 것을 포용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
어떤 소중하고 아름다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마음이 좋다."

나는 이제 이렇게 살고 싶어졌다.
자유롭고 이상하게...^^
어쩌면 조금 오래 전부터 굳어져있던 나의 삶을 탈피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이전의 나에게는 반듯하게 살아야만 하는 기준이 있어서 좋은 엄마, 착한 딸 콤플렉스가 있는 것처럼 살기도 했다.
나이가 들고,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씩 내려놓는 것들이 생겼다. 매일 쓸고 닦던 방안은 정리가 안되고 있어도 그냥 실컷 놀고 한번에 치우는 것이 마음 편해졌고, 둘이 살면서부터 설거지는 바로바로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몇 개 되지 않는 그릇을 두끼 정도 모아지면 마음먹고 음악과 함께 쌓인 설거지를 하기도 한다.
완벽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조금은 흐트러지고 있는 모습도 즐기며 살아간다.
이상하다는 말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기준과는 조금 다르거나 별나다는 말로 인식된다.
정상이라는 기준도 사실은 누군가 정해 놓은 가치이므로 이상하다는 기준 역시 그저, 조금 색다를 뿐인거다.
비혼이라서 외롭거나 행복하지 않을거라는 기준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결혼이 행복하다는 사회적통념이 빚어낸 정상과 이상한 사람의 모호한 경계를 통쾌하게 부수고 이상하고 오해받는 삶을 원하는 사람이다.
"경험은 한번도 열어보지 못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 때마다 세계가 한 칸씩 넓어진다. 새로 문이 열리면 세계의 모양도 크기도 달라진다.
열리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세계."
"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책을 단 한권만 읽은 사람'이라는 말이 맞다.
이제 막 하나를 알게 된 사람,
혹은 남들보다 하나를 더 안다고 빋는 사람의
확신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일가.
무지하다는 겸손을 상실한 인간의 오만이란 얼마나 폭력적인가."
"자라는 동안 내 인생에 쏟아졌던 어른들의 충고 가운데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때도 대개는 듣는 시늉만 하거나 그마저도 참지 않고 싫은 티를 잔뜩 내버렷다. 어른의 충고란 늘 위계 속에 있어서 권위적이고 무레했다.
어른이 되고서야 그 마음을 짐작한다. 살아보니 경험의 총량에 비례하는 지혜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나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다시 설 수 있도록 일으켜 주었던 말들은 언제나 나를 잡아끄는 말이 아니라 나를 안아주는 말이었다. "
아이를 단속하는 어른들의 말들은 대부분은 각종 불안에서 기인한다. 조금의 실패와 좌절은 모두 부모의 탓인양 자식의 인생의 모두 간섭하고 끼어들어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 애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단단한 울타리에 서로가 불안하고 마음이 위축된다. 모험이나 도전, 실패와 경험들을 충분히 천천히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아이들의 꿈은 어른들이 가두거나 든든하게 만들어 놓은 울타리 너머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고 싶다. 이모는 자주 엉뚱한 일들을 하고 낯선 것들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여기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가족, 집안, 어른에 대해 나는 조카들이 태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진진하게 고민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의 내 역할은 아마도 행복의 변수가 되는 일이 아닐지.
세상의 언저리에서도 재미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아이들과 가족으로 인연을 맺은 내 몫의 책임이라고 는 믿고 있다."
나는 세상에서 오해받는 일이 제일 억울하고 싫었다. 잘못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일일히 찾아다니며 제대로 나를 이해시킬수도 없을 뿐 더러,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 줄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모든 사람을 이해하거나 모두를 좋아하지 못하면서, 나는 그들에게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나로 온전히 살아가면서, 그런 일들에 무디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어떤 생각을 하든 자유니까, 나만 아니면 되니까..하는 배짱도 부리면서 살아간다.
그러지않으면 살얼음판처럼 힘든 세상을 혼자 부딪혀가며 살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나와 다른 독특한 사람이 좋다.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니 색다른 모험을 즐기는 사람, 같은 말을 할 때 다른 의견을 내놓은 사람, 어쩌면 사소하게 오해를 받는 사람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쉽게 이해받기보다는 오해받아도 좋다는 쪽을 선택하는 모험심이 가득한 세상을 나는 살아가기 위해 날마다 조금씩 도전하고 용기를 낸다.


"그림은 글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감정에 닿는다. ​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기 때문이다. ​
색, 크기, 음영, 구도, 비율, 질감까지 모든 것이 한꺼번에 온다.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 더 강조되는 방식으로, 그래서 그림책은 종종 줄거리를 요약하기가 곤란하다. 요약하면 한없이 시시해진다. 나를 눈물쏟게 한 이야기들 조차 그 시시함을 피해갈 길이 없다. 다 아는 이야기, 어디서든 한버는 들어봤던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이 그림책이라는 제한된 형식 속에서 여전히 새롭게 만들어진다.
시를 닮은 그림의 언어로. "
그림책을 읽는 의미를 잘 나타낸 문단이 와닿는다. 때론 그림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전해준다.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상상하고 이야기를 지어낸다. 그림책을 읽는 어른이 전해주는 다양한 배움과 철학이 녹아있는 울림이 잔잔한 책이었다.
하나씩 빼어 먹는 알사탕같은 재미도 있고, 하나씩 꿰어내면 소중한 나만의 목걸이나 팔찌가 되는 반짝이는 비즈같다.
접어놓은 페이지가 너무 많고 인용하고 싶은 책과 추천하고 싶은 그림책이 다수 나오는....
나에게 소중한 책이 하나 늘었다.
"훌륭한 열매를 맺지 않아도.."
좁은 화분에서 싹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제대로 자리지 못하는 식물을 바라보며 기대가 곧 체념으로 바뀌는 나를 본다.
가장 좋은 상태가 되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것보다 지금 가장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때로는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것을 다시 사랑하고 돌볼 수 있는 마음을 식물에서 배운다는 작가의 말을 이제는 나도 이해를 하고 공감하게 된다.
조금 다르게 사는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속닥거리며 내 마음에 정원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내가 할머니가 될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조금씩 내가 원하는 모습의 할머니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가꾸며 살고 싶다.
"사는 것이 무엇을 향해 가는 일인지
조금씩 더 선명해졌으면 좋겠다.
다른 것, 낯선 것,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 오해받는 것
그러나 그 속에 선명한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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