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 - 딸의 우울증을 관찰한 엄마의 일기장
김설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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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으니 딸이 놀라서 내 눈치를 본다.
제목 때문인 모양이다^^;;
그래서 대충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도 힘들고 처음이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아이와 함께 꾸는 꿈이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어느 순간 너무 크게 불어버린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용기있는 엄마의 자아 성찰이 담긴 일기장이었다. 나는 힘든 시간에 나를 돌아보며 일기는 커녕 어떤 메모도 남기지 않았다.
어느 순간 흔적을 남기는 것이 쓸모없음으로 전락해버린 기억때문에 한동안 끄적이는 것을 등한시 하던 때가 있었다.

작가는 아이가 우울함을 호소할 때 자신을 뒤돌아보며 일기를 썼다. 마음으로 함께 힘들었던 시간과 예민하게 겪어냈던 시간은 사랑의 이름으로 덮어진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매번 각인시킨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이 말은 진리지만 위험한 말이다. 무심코 바라본 거울 속에서 허황된 욕심을 꿈꾸다가 숱한 좌절을 겪고 끝내는 심신이 허약해진 부모의 얼굴을 그대로 닮은 아이를 만나다면 그것만큼 큰 형벌이 어디 있을까. 자신과 자녀를 동일시하고 마음대로 조종하는 부모에게서 양육된 자녀는 마음 속에 지옥을 건설하며 살아간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형벌이라는 말에 가슴이 쿵하고 철렁했다.
작가님에게 그런 말은 가당치도 않다고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부모로서,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으므로...
그리고 지금은 딸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는 엄마이므로.

부모가 아이에게 가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들에 아이들이 병들어가는 모습을 나는 지켜보았다.
학원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고 교회에서 청소년 상담도 했고, 일찍 아이를 키운 내 친구들이 헬리콥터맘으로 아이들을 지극정성으로 감옥살이 시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간접경험이 되었다.

아이들은 울었고, 엄마가 원하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가 힘이 들고 등을 돌리는 일들에 가슴치며 후회하는 일을 보았다.
내 딸에게는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가이드 라인이 형성되었다.

남들보다 10년 정도 늦게 키우는 딸이지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구분을 지어주는 것 외에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대화를 하고 의견을 조율해 나간다.
사실, 작가님이 말하는 딸의 고통은 고스란히 나의 것이라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나도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울증세를 심하게 앓았다. 하지만 나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불평불만을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소리를 내지를 곳이 없었다.

심장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부담과 책임감과 불안감, 밀려드는 걱정에 날밤을 새운 날이 허다했고, 100미터 달리기를 끝낸 사람처럼 심장은 시도때도 없이 심하게 두근두근 떨려서 내 심장을 부여잡고 울던 날이 많았다.

가끔 친구들에게 말을 하면 듣고 있는 친구가 기진맥진해질 정도였다고 나중에 들었다.
우울증은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면 된다.
들어주는 사람이 강건하게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무언가 바른 소리를 하면 더욱 힘들어진다.
바른 말은 때론 폭력이 된다는 것을 나도 직접 경험해 보았다.

우울증을 겪는 딸의 마음도,
나도 어떤 것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모르는 게 아니다.
지금 잠시 힘들 뿐이고 쉬어가는 시간이고,
그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아픈게 아니라 그냥 힘든 것 뿐이라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적었다. ​
작가님과 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힘들었던 시절이 겹쳐졌다.
그래도 나,,혼자 바닥에서 잘 올라왔구나 토닥여본다.
들여다보면 아직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상처를 내 멋대로 숨기고 서둘러 봉합해 버린 억눌린 것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나를 돌보는 것이 사치였던 시간이었으므로,,,
작가님도 아픈 몸과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아픈 딸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이해가 되어 함께 아팠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우리 딸아이와 나의 대화가 떠올랐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여겼다. 채워지지 않는 탐욕에 열중했고, 작은 기쁨에는 만족하지 않았다. 지혜는 점점 멀어져가고, 내리막길에도 굳이 달려가는 미련한 삶을 살았다. 내 고통의 원인은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엄마' 나 키우기 싫어?"​
지금에서야 그 질문에 답을 한다.
"아니,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키우고 싶어. 네가 태어났던 그때부터 다시."

아이가 7살이 지나 학교를 보내야 할 시기에는 더욱 극심해졌다. 남들에게 기죽이고 싶지 않게 키우고 싶었기에 내가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도 힘들고 벅찼다.
아이를 간신히 등교시키고 나면 커튼을 치고 어두운 방에서 오전내내 잠을 잤다. 그리고 겨우 일어나 공부방을 하고 ,내가 수업을 하는 동안 아이는 학교 돌봄교실에서 6시까지 지냈다.

어느 날 함께 밥을 먹다가 어린 딸이 말했다.
"엄마, 밥은 함께 먹어야 오래 산대"
"그럼~~~ 즐겁게 함께 먹으면 그렇게 되지^^"
"나는 혼자 먹는데??"
"........."​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공부방 시간에 밀려 아이는 챙겨준답시고
방 안에 밥을 넣어 주었다.
내 딴에는 아이 식사를 거르지 않게 챙겨 준다는 명목이지만 아이는 혼자 먹는 밥이 싫었나보다.
엄마와 함께 먹고 싶다는 말을 그렇게 말하는,
고맙고 영민하고 지혜로운 딸이었다.
그 이후로는 조금 늦게 먹더라도 꼭 딸과 함께 밥을 먹었다.
아이를 통해 배우고 엄마도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기쁜 건 더 기쁘고 슬픈 건 더 슬퍼지는 일 같다"고 한 어느 작가의 말처럼, 기쁨도 힘껏 느끼고 슬픔도 온몸으로 받아 들인다. 불행의 그림자를 피해 도망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딸에게 닥친 고난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정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작은 것에 더 많이 기뻐하고, 반대로 작은 슬픔에 더 크게 슬퍼한다. 어떤 작가의 말인지 모르지만 너무 공감되는 말이었다.

아이가 행여 아빠의 자리에 슬퍼할까 기죽을까 싶어 작은 일에도 미리 더 아프고 슬퍼했다.
딸의 감정을 내가 대신 다 겪으려 했다.​
어리석은 시간으로 나는 더 힘들고 병들었다.
나의 웃음 뒤에 슬픔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독립된 개체로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했던 것 같다.
작가님처럼 내게도 책과의 만남은 참으로 커다란 선물이고 축복이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대단한 일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언제나 부모들이다. 엄마에게는 존재만으로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럴듯한 뭔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늘 자식에게 미안함을 품고 산다. 부모로서 자신이 바라는 일을 자녀도 똑같이 원한다고 여기는 건 착각이다. 아이의 애정 결핍은 이렇듯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엄마의 모습이 애처롭다.
우리에게 이런일이 일어나다니...
세상이 아이에게 부여한 나이는 23살.
아이는 그 숫자를거부하고 3살로 살고 싶은 것 같다.
업어주고 싶어도 이젠 아이 몸집이 커져서 업기가 벅차다. 지금에 와서야 마음껏 업어주지 못한 시절을 후회하고 있다.
그때가 정말 좋았었구나.
딸의 내면에는 두 개의 다른 자아가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어리광이 많은 아기와
힘겹게 우울을 건너는 이십 대의 여자.

"이젠 병원에 안 오셔도 됩니다"

엄마인 작가님이 듣고 싶은 이 한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꿈같은 이야기며 매일 소망하는 일일 터이다. 곧 그런 날을 맞게 되길 함께 기원하고 바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다.

"우리는 함께 아팠고, 아팠던 만큼 성장했다. 이제는 고통을 말하는 것도,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아직은 꿈꿀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희망과 꿈꿀 권리를 찾아내는 것.
참으로 귀한 일이다.


**이담북스 서포터즈에서 제공받은 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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