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 이달의 장르
가랑비메이커 외 20인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엄마, 모성애에 대한 책이나 글을 많지만
아빠, 아버지에 대한 글을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만큼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렵거나 표현하지 못했거나
서로에게 등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서일까.

이 책은
긴 세월, 그늘로 비켜섰을 아버지에 대한
글들을 차곡차곡 담았다.
읽는 동안 각자의 이야기들이 뭉클하고
나와 아빠의 기억들이 선명해지면서
눈가가 촉촉해진다.

서툴고 이야기하지 못해 오랜 시간 신음하며 지내온 서로의 이야기들이 나즈막히 위로해 주며 가슴에 강이 흐르는 기분으로 읽었다.

<문장과장면들>대표 고준영의 딸, 고애라부터 시작하는 아빠의 단상으로 시작해 잔잔하게 향수를 불러온다. 때론 원망하고 때론 이해하지 못해 침묵이 곧 단절로 이어지는 시간도 있었다. 그런 딸과 아들들이 목소리를 내어 부르기 힘든 이름을 낡은 일기장에서 꺼내온다.

"내 삶의 조각인 줄 알았던 당신이
내 삶의 바탕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
긴 침묵을 깨고 말을 겁니다. "

서로가 멀어지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이 길어질 수록 감정의 골은 깊어져서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몰라 맴맴 돌다 서로의 등만 바라본다.

아빠가 되기 하루 전에 기대와 설렘으로 썼던 아빠의 작은 메모지 한 장으로 아빠라는 사람의 무게를 짐작해본다. 그것은 가장의 시작이므로...

쌍둥이 아빠, 노동하는 아빠, 술을 매일 마시는 아빠, 사업으로 힘들어하는 아빠, 무능력한 아빠..
우리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다양하고 그들의 삶의 굴곡 역시 누구나 다른 모습이지만 가족을 향한 깊은 사랑은 감추어 있을 뿐 다르지 않다.

커다란 나무라고 생각하며 쓴 딸의 일기도 읽으며 감동을 받았다. 힘들어 보이지 않던 아빠의 모습은 어느 순간 우리에게 내어주고 점점 힘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우리가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일 수 있을까?
우리의 보호자였던 아버지는 점점 자리를 잃고 우리가 그의 보호자가 되어간다.

치열한 삶은 서로 원망과 존경과 사랑과 애중이 뒤섞인 채로 굳은 감정이 고인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이름이 되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기억에서 지워진 이름도 된다.

나는 아빠와 참 좋은 부녀지간인 특이한 경우이다. 독서모임을 하며 나와 같이 부모님께 사랑받고 평범하게 살아온 것에 감사를 드린 경험이 있다. 가깝게 내 딸은 아빠를 일찍 잃었으므로 자주 말할수 있는 말이 아니라서 마음이 아프다.

인순이의 <아버지>라는 노래가사가 생각난다.

"한걸음도 다가설 수 없었던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얼마나 바라고 바래왔는지
눈물이 말해 준다

점점 멀어져가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내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했었다

점점 멀어져가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내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했었다

제발 내 얘길 들어주세요
시간이 필요해요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두기만 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긴 시간이 지나도 말하지 못했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미워했지만 그것은 사랑받고 싶다는 절규였고, 우리는 서로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말을 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모른채 살아간다.
자식들이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 책에는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은지, 아버지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아버지에게도 어떤 꿈이 있었는지,
아버지가 생각하는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지..
등등의 인터뷰 질문과 답변도 실었다.
그리고 20명의 자녀들이 아버지를 향해 쓴 편지글이 빼곡하다.

나의 아빠를 생각해본다.
23살 엄마와 30살 아빠는 결혼을 하셨다.
엄마는 대학을 2월에 졸업하고 3월에 결혼이니 무척이나 이른 결혼이었지만 아빠는 꽉 찬 나이셨다.
일찍 혼자 되신 할머니를 큰댁에서 모시지 못해서 아빠와 엄마께서 임종까지 모시고 살았다.

젊은 우리 아빠는 테니스를 잘 치셨다.
주말이면 테니스코트에서 테니스를 치는 아빠가 멋있어서 대학가면 꼭 테니스를 배워서 언젠가는 아빠와 함께 공을 치고 싶은 꿈도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아빠에게 테니스를 배우려고 하니 아빠는 웃으며 채송화 같은데 무슨 테니스냐며, 탁구를 치라고 하셨다. 아빠의 눈에 나는 아직 작은 아이였던 모양이다.

무거운 테니스 라켓 대신 탁구채를 권하시던 사랑하는 우리 아빠의 자랑이었던 나는 별로 큰 소리를 내는 아빠를 보았던 기억이 없다.
친구들이 오는 날이면 손에 한가득 샤프라도 들고 오셔서 하나씩 나눠 주셨다.

약주를 좋아하셔서 들어오시면 나에게 검문을 받기도 했고, 고등학교시절에 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오면 아빠는 밤마다 학교 앞에 오셨다. 아침에 버스를 탈 일이 있으면 내 손을 잡고 함께 뛰어주시던 아빠.
그런 아빠를 실망시키고 힘들게 했던 건 결혼시작부터였다.

아빠가 걱정하시는 힘든 환경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무모한 일을 저질렸다. 여튼,,오랜 시간 고생했지만 나는 기쁨으로 교회일을 오래 하면서 노숙자 식사는 물론, 새벽반주, 주일학교, 성가대..등등 감당하기 힘든 일을 어린 나이에 하며 살았다.

내가 혼자 되던 해에, 아빠는 수술을 하셨다. 마음 고생이 크셨는지 끙끙 앓으셨는지... 말씀도 없는 분께서 내겐 말도 없이 병원에서 수술 마치고 연락이 닿았다.
탈장수술을 하셨는데 내가 걱정할까봐 말도 없이 수술까지 마치신 아빠 병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었다. 지금처럼 몸도 마음도 환하지 않았다. 내 몸과 내 마음 하나 제대로 건사하고 추스를 여유가 없었다.

어느 날, 술도 못마시던 나는 아빠와 소주자을 기울이며 저녁에 시작한 술을 천천히 야기하며 새벽 2시까지 식탁을 추우고 엄마가 과일을 주시고, 아이스크림으로 입을 달랠때까지 함께 속깊은 이야기를 했다. 아빠의 힘든 시절을 내가 어른이 되니 이해할 수 있었다. 전쟁을 겪은 피난시대를 살아오면서 가난했던 그 시절에 참고 포기해야했던 아빠, 이해하지 못한 순간에도 아빠는 아빠의 삶을 살고 고민하고 힘들게 버티고 오셨을 터이다. 나도 내색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아온 세월 눈물을 흘리지 못했던 시간..

술한잔도 못하던 내가 힘들 풍파를 거치며 아빠와 처음으로 술잔을 기울이던 날, 아빠는 함께 대작을 하는 날이 온다며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여러 감정이 파고들었다. 딸의 아픔과 시름을 술 한잔에 담아 내려는 것,
혹은 그렇게 함께 술자리를 하는 그 자체의 온기.
지금은 내 딸이 받지 못한 아빠의 사랑까지 넘치게 주고 계시다.

우리는 누구나 처음으로 부모가 되어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낸다.
그 안에 묻어놓은 진실은 꺼내야 비로소 빛을 낸다.
어둠에 감추인 말들을 꺼내기 쉽지 않지만 소원해지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진심을 담은 대화가 필요할 때가 온다.

아빠가 아버지가 되는 순간
하지만 나는 아직 아빠라고 부른다.

글을 쓰다보니 너무너무 죄송한 마음이 커서 눈물이 난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은 꺼내면 글을 되고 문장이 되듯이, 책 속에 모은 글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

큰 산처럼 든든한 우리 아빠의 모습이 야위고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대신 아직도 해주실 게 남았다고, 아직은 아빠가 필요하다고 애교좀 부려야겠다.
아빠께서 좋아하시는음식을 싸들고 어버이 날에 찾아간다.
당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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