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새움 세계문학
버지니아 울프 지음, 여지희 옮김 / 새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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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은회색의 은은한 빛이 감싸고 있어서
꽤 분위기가 좋은 느낌의 책이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는 어릴 적부터 로망같은 이름이었다. 나에게도 여성의 번영은 기분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나이팅게일과 퀴리부인의 전기를 읽으며 그들의 뒤를 따르고 싶었고, 신사임당처럼 살던 조선시대를 안타까웠다.

1910~20년대에 이렇게 페미니즘으로 앞서나간 여성작가가 존재해 여러 작품을 남겼다는 것이 소름끼칠 정도로 존경스러웠다.

최근 들어 읽어 본 그 어떤 에세이 산문집보다 월등하게 품격이 넘치고 자기의 주장에 명료함과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 읽는 동안 제대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생각과 글에 녹아들어 함께 비탄에 빠지기도 하고, 함께 배열을 깨뜨리기도 하며, 흐릿해진 나의 삶의 기록들을 회상해 보았다.

"또 한쪽 성의 안전과 번영과 또 다른 성의 가난과 불안정함에 대해서, 한 작가의 마음에 전통이 미치는 영향과 전통의 결핍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저는 마침내 저러한 논쟁들과 저러한 기억들, 분노와 웃음으로 표피가 쭈글쭈글해진 하루를 돌돌 말아서, 산울타리 속으로 던져 버릴 시간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광막하고 푸른 하늘 벌판에 수천 개의 별들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불가해한 사회에 마치 홀로인 듯 싶었습니다. "

한쪽에 치우친 것을 번영이라 하고 반대로 기울어진 여성을 가난하다고 표현했다. 그 이전의 시대부터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여성들의 사상에 대한 결핍이 지나쳤던 사회였구나..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홀로 외롭던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에 애달퍼졌다.

"옥스브리지를 방문해 가졌던 오찬과 만찬은 벌떼같이 쏟아지는 질문들로 시작됐습니다.
왜 남자들은 와인을 마시고 여자들은 물을 마시는가? 왜 한쪽 성은 그토록 번창하는데 다른 쪽 성은 그리 가난한가? 가난은 픽션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예술작품 창조에 필수적인 조건들은 어떤 것인가?
천 가지 질문들이 한꺼번에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필요했던 건 답이지 질문들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1년이란 기간 동안 여성에 관해 얼마나 많은 책들이 쓰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얼마나 많은 책들이 남자들에 의해 쓰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

이웃의 블로그에서 여성 작가들만의 책 목록을 작성한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남성 작가들의 지분이 월등히 많아서 여성 작가들이 이름을 올릴 자리는 미비했다.

언제나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더욱이 그 오래전 시대에서 자신의 진실을 제대로 글로 써내기 위해서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편견에 맞서야 했던 시기였으리라.
홀로 다른 생각을 앞세우고 주장하는 것은 온전히 세상과 맞서는 일처럼 막막하기도 했을 것이다.

작년에 읽었던 <여성의 글쓰기>라는 책의 저자도 기자로서 글을 써오던 시절에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많은 의지를 꺾어야 했기에 기자아닌 자신의 글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 바있다.

아직도 여성들은 할 말이 많다. 많은 부조리와 불합리한 상황에서 아닌 척 살아 온 시간들에 파묻히고 익숙해져버린 굳은 기름을 걷어 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여기 저기에서 울리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여성의 언어로 세상을 말하는 서사들이 많아지길 응원한다.

"왜냐하면 걸작이란 혼자 외톨이로 태어나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숱한 세월을 거치며 사람들이 형상화한 공통적인 사고의 산물이고, 따라서 하나의 목소리 뒤에는 집단의 경험이 있는 것입니다. "

"소설은 실제 삶에 이렇게 상응하므로, 그것의 가치 기준은 어느정도는 실제 삶의 가치 기준들입니다. 하지만여성의 가치 기준들이, 다른 성에 의해 만들어진 가치 기준들과는 종종 아주 다른 건 분명합니다. 그건 당연히 그렇지요. 그럼에도 지배적인 건 남성의 가치 기준들입니다."

가부장적인 사회 제도 안에서 위축되지 않고 자신들의 글을 당당히 써낸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을 논할 때마다 그들의 작품들을 다시 읽고 싶었다.
여성 소설들들은 자신들의 성의 한계를 용감하게 인정해야만 뛰어난 경지에 도달하길 열망할 수 있다.

"창에서 머리를 떼면서, 새삼 마음이란 건 확실히 몹시 신비로운 기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전적으로 거기에 의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관해 알려진 건 거의 없습니다. 왜 제겐 마음에도 절단과 대립이 있다고 느껴지는 거까요? 명백한 원인들로 인해 몸이 긴장하듯이 말입니다.
분명히 마음은 아무 때고 어느 한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기에 절대 단일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백년이 지나도유효한 가장 탁월한 페미니즘의 고전이라고 칭송받을 만한작품이었다. 홀로 자기만의 방을 꿈꾸는 모든 여성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기대처럼 찬찬히 생각하며 읽을 행간들이 너무도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멋졌다.

버지니아 울프는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창조적인 삶을 위해 끊임없이 글을 썼던 것이 아닐까.

잠자고 있던 무딘 감각들이 촉수처럼 살아 움직이는 듯이 하나하나 건들고 지나는 잔잔하지만 강인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감히 섣불리 감상조차 꺼내기 두려울 정도로 벅찬 언어들이 많아서 가슴에 오래 간직하고 싶을 뿐이다.

"이 모든 한없이 흐릿한 삶들이
기록되어야 해요.
당신이 쓰고 싶은 것,
그것이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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