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미즈키 히로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일의 보람이란
사실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를기쁘게 하고,
그 일로 감사를 받는 것."

연노랑의 표지에서 풍기는 '병아리'라는 제목을 달고 나오는 주인공이 너무 힘없고 약해보여서 사실은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읽다보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에 두루 포진되어 있는 문제들을 꼬집어 이야기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이런 사회악은 일본이든 한국이든 ,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별 차이가 없는 듯해보여 안타깝다.

기업의 노동보험 및 사회보험 전반과 관련된 서류작성이나 제출을 대행하고 노무 관련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으로 주인공이 근무하는 사무소에서는 월급 계산 등도 대행한다.

졸업 후 정규직 취업에 실패해 파견사원으로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가 각고의 노력 끝에 사회보험 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아사쿠라 히나코.

"아주 잘하네, 병아리 씨. 당당한 노무사 같았어. 전혀 신입 같지 않더라"
니와 씨가 놀렸다. 니와 씨는 소장보다 조금 연하로 사십대 중반이다.
"병아리가 아니라 히나코예요."

주인공 히나코의 이름이 일본어로 '병아리'를 뜻하는 '히요코'와 발음이 비슷해 신입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처음에 거슬렸던 호칭의 궁금증은 풀렸지만 이름대신 이렇게 호칭하는 것은 작은 사무실이라고 해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내 손으로 일을 선택하겠다는 결의가 무색하게 간신히 작은 노무사 사무소에 취직해서 파견근무 중이라 그런지 움츠러들고 잔뜩 긴장한 상태다.

"경리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지 않습니까?
특히 여자가 하는 일로는.​
그런데 두세 달 만에 더는 못 하겠다는 소리를 하더라고요."

여자를 비하하는 듯한 성차별적인 대사도 많다. 직장 내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지난 세대의 여성들이 참고 살아온 관습에 의한 것은 아닐까.

지금 젊은 여성들은 자기 표현을 제대로 하고는 있지만 남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직장 내에서, 게다가 직속 상사에게 듣는 말이라면 감수하고 넘어가게 될지 모른다.
이런 회사라면 두세 달만에 그만둘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불의를 볼 때마다 입바른 소리로 상사의 눈 밖에 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 참고 지낼 수도 없는 직장 내의 생활고충이 드러난다.

곧바로 업무에 투입되어 마주하게 된 클라이언트들이 의뢰해 온 것은 겉으로는 단순한 노사 간의 의견 차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내면 직장 내 괴롭힘, 여성 직원의 출산 문제, 연장 근로 시간 조작 등 다른 실상이 보이는 문제들에 혼란스럽다.
열의에 가득 차 있다가도 좌절하고, 작은 실수에 주눅 들다가도 결국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회초년생 사회보험 노무사로서 차근차근 성장하며 업무를 해결해 나간다.

"더 제대로 보고 잘 듣자.
그리고 나도 좀 더 잘 표현하자.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건 당연하지 않나.
내일부터는 꼭. "

현실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던져진다고 해서 당장 일자리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닥치는대로 주어지는 일을 하는 비정규직 혹은 파견 근무직은 잔업이나 허드렛일을 해야한다.

패기어린 열정이 오히려 지적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문제점이라든지 직장내 노동시간의 조작이나 악덕 기업의 행태,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에 따른 여러가지 문제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대우, 산재와 직장내 괴롭힘 등등,,,

사회 구조 안에서는 다양한 문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알아도 눈을 감고, 혹은 몰라서 당하는 일들을 보며 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직원들도 도마라는 아이를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다루고 있네."
"탄광의 카나리아?"
나는 무슨 소린지 몰라 니와 씨를 바라봤다.
"몰라? 옛날에 탄광에서 작업할 때 카나리아를 데리고 가서 경보기 대신 썼다잖아. 카나리아는 끊임없이 조그맣게 지저귀는데 메탄이나 일산화탄소가 늘어나면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죽어버려. 물론 울지도 않지. 카나리아로 탄광 안이 위험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체크하는거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는 제1호로 상황을 파악하는 거군요."

"개인적으로는 도마 씨의 힘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내일이 아니었다.
내 일이 아니지만...
내 마음 역시 다양한 빛깔 속에 있었다."

개인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우선시 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회사의 입장에서이다. 어떤 사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만을 위한 결정이기에 그 안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은 침묵하는 근로자와 노동자들의 몫이다.
그들을 위해 일하고 법률을 대행해주는 기관마저 공평한 일 처리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며 죄책감과 회한이 자리 잡는다.

"여러 종류의 정식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골라 주문했더니 제시되어 있는 금액과 달랐다. 계산대에 물어보니 정규직과 파견직은 가격이 다르다고 했다. 복리후생비가 사원식당 운영비로 들어오기 때문에 파견직과 출입하는 업자는 외부이용자 가격을 받는다고. 정규직은 사원은 선불카드가 아니라 사원증을 내밀었다.
정말 치사하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한번쯤 나의 이상과 현실적인 노동의 문제들이 하나둘씩 강하게 부딪친다.
이 소설에서 거론되는 문제들 뿐 아니라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문제들이라 직접 경험은 하지 않아도 함께 분개하게 된다.

육아휴직 관련법안이나 근로기준법, 노동법, 실직수당 등등 기본적으로 알아야 누릴 수 있고 모르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직장 내에게서 이런 것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잘 알 것 같은 내용이다.

이러한 사회의 구조와 병폐들이 고착화되어 있을 뿐 어떠한 개선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 청년들이 제대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꿈을 위해 입사한 회사에서 이런 대우를 받으며 좌절하고 꿈을 꺾게 되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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