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을 지워 드립니다 - 기시미 이치로의 방구석 1열 인생 상담
기시미 이치로 지음, 이환미 옮김 / 부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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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기시미 이치로 작가에게 감동을 받았다.
한국에서 <미움받을 용기>로 사랑받고 나서 보답하기 위해 한글을 배웠다고 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한국의 영화들을 보았다. 이 책의 내용은 스무편 가까이 되는 영화들의 주인공들과 철학자가 속깊은 대화를 시원하게 하며 자신의 실수나 잘못인 줄 모르고 했던 행동들에 대해 대화하는 형식으로 엮었다.

내가 보았던 영화들이 많아서 쉽게 공감이 되었고 아직 보지 않은 영화들은 보고나서 읽으면 더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하며 아껴둔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영화로
지금, 여기, 우리의 마음을 직면하다!"

책을 접어둔 곳이 너무 많아 정리가 어려울 정도로 좋았다. 인생에서 외로움과 고독을 온전히 떨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누군가와의 사랑을 갈망한다.
사랑에 서툰 남자 '상우'와 사랑을 버거워하는 여자 '은수'의 만남과 헤어짐을 섬세하게 그려 낸 영화 <봄남은 간다>를 소환한다.

어쩌면 어색하고 서툰 사랑과 드러내지 못하는 진실을 고민하는 문제들이 우리의 경험들과 맞닿아있다.
사랑하는 남녀는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하기도 하고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 번 사랑에 빠지면 상대의 생각을 묻거나 함께 의논하기 보다는 앞서서 생각하고 넘겨짚어 감정을 헤아리기도 한다.

같은 사건 속의 대화이지만 상수의 입장과 은수의 입장이 극명하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서로의 속마음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넘겨 짚어서, 혹은 지난 상처가 두려워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그렇게 이별을 고한다.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은 받아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느낌이고 사랑받고 있을 때 실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믿음이 생긴다.
항상 사랑을 확인하고 구걸하고 불안해 한다면 상대도 마음 놓고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의 감정이 변한다.
사랑을 할 때 주고 받은 맹세는 어디가는지 영원할 것처럼 쌓아올린 약속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허무한 감정이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두 사람이 겪은 일 때문도, 두 사람이 미숙했기 때문도 아니다. 좋은 관계를 구축하는 법을 서로가 몰랐기 때문이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현실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전기를 맞이하는 일이 왜 두 사람의 관계를 끝내도록 하는가하면 서로가 현실을 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때 두사람이 현실적으로 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현실의 여타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었으리라."

삶에서 죽음만큼 다양하면서도 낯선 영역이 또 있을까. 누구에게나 마지막 순간은 찾아온다. 이 세상에 이별을 고해야 하는 이는 불안과 고통을 감내하며 죽음과 마주한다.
그 고독한 숙명을 오롯이 홀로 견디는 남자 '정원'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 낸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오래전 심은하와 한석규가 주연으로 나온 잔잔한 드라마 같은 추억돋는 영화였다.

사람의 마음을 잘 들어주는 일.
지혜로운 상담자와 대화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랑을 하고
조금 더 현명한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시인으로서 시를 쓰는 것조차 부끄러워했던 <동주>영화까지..

"동주: 아무리 시를 써도 이 부조리한 세계를 조금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시를 쓰길 바라고, 시인 되길 원했던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철학자: 그런가요? 말씀하신대로 물론 직접 행동에 나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주: 저는 앞장서지는 못합니다.
철학자: 지금처럼 살기 힘든 시대를 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그런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동주: 저는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하지만 행동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철학자:시를 쓰는 것이 왜 부끄러운가 하는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동주: 시인이란 슬픈 천명입니다. 쓰고 싶지 않은 일도 쓸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철학자: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 있습니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은 쓰는 것이 천명이란 의미입니다.
더구나, 슬픈 천명이죠."

일본 철학자가 <동주>영화 속의 독립시인 윤동주와 대화를 시작할 때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제대로 자기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상담할 수 없고 자기 혼자만의 방에 가둬야 했을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들을 잔잔하게 들어주고 받아주는 내용들에 해소되는 부분이 있다.
들어주는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그리고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되는지 보여준다.

사랑과 예기치않은 이별, 그리고 결혼 이후의 변화들과 가족과 인생에 대해, 세상과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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