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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 동화전집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1
그림 형제 지음, 아서 래컴 그림, 김열규 옮김 / 현대지성 / 2015년 1월
평점 :
백설공주, 라푼첼,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의 오리지널 이야기
원작동화 210편 수록 완역본
일러스트 거장 '아서 래컴'의 일러스트가 수록된 그림형제의 동화전집이다. 어렸을 적에 읽었거나 들어본 친근한 동화들이 대부분이다. 지금도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도 재해석되는 이야기들, 200년 전에 수집한 원작들을 묶었다. 원작은 어린이에게 맞지 않는 잔혹동화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드디어 어른을 위한 동화 완역본을 읽게 되었다. 현대지성 클래식 서평단을 통해 좋은 책을 3달동안 읽었는데 마지막이라 아쉽다.
1000페이지 되는 벽돌책이다.
여러 날동안 야금야금 나눠서 읽어야 했다^^
<늑대와 일곱 마리의 새끼 염소>를 읽던 어린 시절에 숨바꼭질을 할 때면 커다란 시계 속에 숨고 싶었다. 술래가 찾아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전래동화 해님달님에서 호랑이가 밀가루를 묻히고 방문에 넣은 것처럼 늑대가 엄마처럼 목소리도 변장하고 손에 밀가루를 발라 속이는 설정이 비슷했다.
<열두 왕자의 이야기>는 안데르센 동화와 겹쳐지는 이야기였다. 누이 동생들은 마법에 걸린 사랑하는 오빠들를 위해 말없이 화형에 이른다. 그리고 바로 직전에 마법은 풀리고 오빠들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 어린 시절 얼마나 마음 졸이며 읽었던가.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 이야기며 <작은 빨간 모자>등 새록새록 기억이 떠오르는 맛에 매일 조금씩 재미나게 읽었다.
애니메이션으로 몇 해전 딸과 함께 보았던 <라푼첼> 역시 너무 흥미진진하다.
동화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왕비들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사랑하는 라푼첼이 흘린 눈물 두방울로 왕자의 눈이 다시 밝아지는 결말은 스르르 마음의 긴장과 불행이 풀린다. 동서양 모두 권선징악의 교훈은 비슷한 모양이다.
<신데렐라>와 <영리한 한스>, 우리나라 전래동화 같은 <요술식탁, 황금 당나귀, 자루 속의 몽둥이> 역시 그림 형제의 작품이었다.
읽을수록 이것도 이것도?
어린 시절 동심을 담아내어 읽었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거의 다 나와서 경탄이 나올 지경이다.
여우는 엄지둥이를 풀어 준 다음 집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귀한 아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여우에게 닭들을 선뜻 내주었습니다.
"그대신 제가 돈을 좀 가져왔어요."
엄지둥이는 여행 중에 번 동전 한 닢을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우에게 왜 불쌍한 닭들을 모두 주셨어요?"
"무슨 소리냐! 아무리 헛간에 닭들이 많아도 아버지에게는 살아하는 자식이 더 소중하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니?"
---엄지둥이의 여행
따스한 가족사이의 정과 사랑이 보이는 이야기도 있는 반면 너무 잔혹하게 묘사된 동화도 있다.
"이리와서 네가 직접 사과를 꺼내렴."
뚜껑을 열면서 새엄마가 말했습니다. 소년이 궤짝 위로 몸을 숙이는 순간, 악마가 다시 새엄마를 충동질했습니다. 탕! 새엄마가 뚜껑을 세게 내리닫았습니다. 소년의 목이 잘리면서 사과들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일을 어쩐다! 새엄마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하얀 손수건을 꺼냈습니다. 그런 다음 아들의 머리를 도로 목 위에 올려놓고 손수건을 목에 감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아들을 문 앞의 의자에 앉히고 손에 사과를 쥐어 주었습니다.
(중략)엄마는 소년을 들어다가 토막토막 썰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솥에다 넣고 끓였습니다.
---향나무
정말 상상만해도 으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 신데렐라의 신발 역시 언니들이 발뒤꿈치를 잘라 피로 물든 이야기도 나온다.
나는 피를 잘 못보는 잔인한 영화를 못본다. 이런 글에도 속이 울렁댄다. 우리가 읽어왔던 아기자기하고 이쁜 그림동화가 동심을 키워줘서 정말 다행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원제:들장미 공주)의 물레 돌리는 옥탑이 떠오르는 이야기 역시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에게 마법사가 다가옴으로 깊은 잠에 빠져든다. 거기에 너무 잘 알고 반가운 동화 <백설공주>의 등장이다. 독일에서 미인의 기준은 까만 머리에 하얀 눈처럼 하얀 피부의 여자아인가?^^ 엄마들은 늘 기도한다.
"눈처럼 희고 피처럼 붉고 숯처럼 검은 아이가 있었으면!"아기는 눈처럼 하얀 살결과 피처럼 붉은 입술과 숯처럼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각만해도 아름답고 이쁜 백설공주였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아가들은 사랑스럽다.
<어린 양치기 소년> 폐하의 질문에 재치있는 양치기의 재치있는 답변이 인상적이다.
지금 내어도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바다에는 물방울이 몇 개가 있느냐?"
"폐하, 제가 바다에 있는 물방울의 수를 다 셀 때 까지 바다에 물방울이 흘러 들어갈 수 없도록 육지에 있는 모든 강물을 막아 주십시오. 그럼 제가 페하께 바다에 있는 물방울의 수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몇 개나 있느냐?'
"제게 커다란 백지를 한 장 주십시오."
소년은 펜으로 종이 위에 수도 없이 많은 미세한 점을 찍었습니다. 종이 위에 찍힌 점은 거의 보이지도 않았고 그 수를 세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점을 세려고 시도했다가는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았습니다.
"하늘에는 이 종이 위에 있는 점과 같은 수의 별이 있습니다. 세어 보십시오."
이런 현명한 대답을 만들어낸 그림 형제는 그 당시에 총명했을 것 같다.
<노인과 손자>라는 짤막한 동화 한편은 우리나라 전래동화 '고려장' 이야기와 비슷하다.
나이 많은 노인이 수저를 들지못해 수프를 줄줄 흘리고 입에서 음식이 뚝뚝 떨어지자 아들 내외는 난로 뒤편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밥을 먹게 했다. 그릇마저 들 힘이 없어 접시를 깨뜨리자 며느리는 잔소리를 퍼부으며 싸구려 나무 접시에 밥은 쥐꼬리만큼 주었다. 얼마 후 어린 손자가 나뭇조각을 짜맞추고 있어 부모가 뭐하는 거냐고 물었다. 작은 여물콩을 만드는 중인데 나중에 부모님께 드릴 음식을 담겠다고 하는 말에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밥상으로 모셨다는 이야기다.
효의 근본이 무엇일까?
아이들의 최고의 스승은 부모라는 말이 맞는 것같다. 거울처럼 보고 흡수하며 따라하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모처럼 동화에 빠져 읽다보니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처럼 몇 년은 어려진 기분이다.^^ 시간여행을 허락해 준 그림 형제에게 감사를 해야할 것 같다.
사실 나는 창작이 부족하고, 맛깔나게 꾸며내는 이야기꾼은 아니라서 그런지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빠져든다. 어쩜 이런 이야기들을 이렇게나 다양하게 지어낼 수 있을까?
종종 꺼내 읽어도 좋을 듯한 어른을 위한 동화였다. 현대지성 클래식 서평단을 마치며 책의 두께에 비해 읽기에 너무 즐거웠던 세 권의 벽돌책을 읽고 소장해서 너무 뿌듯하다.
셰익스피어. 안데르센 그리고 그림 형제..
거장들의 책을 스스로 찾아 읽을 기회가 쉽지 않은데 열심히 책읽는 바보로 살게 해 주어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