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과 탄광
진 필립스 지음, 조혜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으면서 추억을 떠올리는 일은 즐겁다.
다소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함과 동사에 색다른 인간미가 있다. 가족간의 따스함이 곳곳에 숨어 있고 사람냄새 풍기는 평범한 주말 드라마 같았다. 우물과 탄광이 어떤 맥락으로 얽히는지 궁금해서 문학동네 출간 이벤트에 신청했던 책이다. 집마다 없으면 안되는 식수의 근원지였던 우물의 주변은 딸 테스가 좋아하는 공간이기도하다. 탄광은 그 일대 주민들이 일하는 장소로 소설의 배경이 된다.

"어떤 여자가 우물 안으로 아기를 던져 버렸어."

하얀 목화밭과 검은 광산이 공존하는
1930년대 미국의 탄광 마을이 배경이다.
우물물처럼 잔잔한 가족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 미스터리.

책 표지가 이뻐서 여러번 찍었다.
띠지를 벗겨내면 잡지화보같은 느낌이다.
우물과 탄광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처럼
어두운 표지가 아니라서 좋았다.

이 소설은 친절하다. 시점이 바뀔 때마다 말하는 주인공을 다르게 내세워 이야기를 한다. 누가 하는 이야기인지 정확히 알고 읽을 수 있고 진솔한 서술을 통해 마음을 드러낸다. 아마도 이 책의 주인공은 한 사람이 아니라 1인칭으로 서술하는 모든 사람들이 되는 것 같다.

한 사건을 직접 보게 된 아이의 입장에서 밤마다 악몽을 꾸며 그런 일을 누가 왜 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갖는 테스, 그리고 그의 언니 버지, 남동생 잭과 아이들의 변화를 시시때때로 감지하고 걱정하며 사랑으로 양육하는 부부 리타와 앨버트.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 뿐 아니라 앨버트가 관리자로 일하는 탄광의 이야기 속에는 백인과 흑인의 인종차별도 다루고, 가족과 고향, 참된 노동의 가치 등을 마을과 구성원들의 삶 속에서 그려낸다. 큰 여운보다는 잔잔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이 소설은 평화로운 일상의 일면 속에 등재하는 두려움과 언제든 덮치는 가족이나 이웃의 비극적인 일은 언제나 우리 주위에도 도사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내 인생 중 절반을 땅 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일에 썼다면, 나머지 절반은 땅 속에 무언가를 심는 일에 썼다. 탄광 아래로 계속 길을 파고 들어가면서도 무사히 땅 위로 올라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집 근처의 땅뙈기에는 우리가 직접 농사를 지었다. 촉촉한 땅의 냄새은 온통 검은 바위뿐인 척박한 땅의 냄새와 달랐다. 싱그러운 녹색 식물들이 쑥쑥 자라나는 냄새를 가슴 가득 들이마시면 기분이 무척 좋았다. 늘 질식할 것 같은 상태에서 유독가스나 질식가스 사이로 들이마실 공기가 남아 있는지 조심스레 조금씩 호흡하다가 콩과 호박, 그리고 흙의 냄새를 가득 마실 수 있는 이 때가 정말 행복했다. 콩을 따느라 여전히 허리를 굽혀야 했지만 그래도 여기선 내가 원할 때 펼 수 있었다. 그 작은 자유가 통증을 잊게 했다.
p.64

광부들은 아침에 커피 한잔 마시는 일만큼 일터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탄광사고로 이미 몸이 성치않은 앨버트지만 관리자로서 책임감과 인종에 대한 차별없이 직원들을 돌볼 뿐 아니라 자식들을 가르침에 있어서도 선한 본보기를 보이는 멋진 아빠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불현듯 추억속의 어떤 부분들이 떠오르곤 했는데 이 부분에서는 <젊은이의 양지>라는 오래된 드라마가 한몫했다. 이종원, 하희라, 배용준, 전도연, 허준호 등이 나오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였는데 강원도 탄광촌이 배경이었다. 탄광굴로 들어가는 선로도 기억나고 얼굴에 검은 가루를 묻혀가며 눈만 반짝이며 석탄을 캐내던 광부들도 떠올랐다. 깊은 굴로 들어가 탄가루를 마신다고 생각하니 내 호흡이 블편해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렇게 가족을 지켜내던 광부들이 삶이 드러나는 문장을 한참 읽었다. 땅도 같은 땅의 느낌이 아니었던 것이다.

" 엄마는 가끔 그랬다. 다친 곳을 어루만져 주다가도 그 상처를 전보다 더 아프게 건드렸다. 엄마는 우리 중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았지만 엄마의 실망한 모습을 보는 건 아빠에게 열 두번을 매맞는 일보다, 심지어 벨트로 맞는 일보다 우리를 더 아프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말을 멈출 때까지 잭은 계속 눈물울 흘렸다. 엄마는 잭을 안아올리고 그 무게 때문에 살짝 끙하는 소리를 내며 침대로 데려다 주었다. 그러고선 이불을 덮어준 뒤 이마에 뽀뽀룰 해 주고 잭이 울음을 그치고 잠들 때까지 지켜보았다."

엄마 리타의 훈육은 아빠의 그것과 다르다. 일관성있는 엄격함과 단호함 속에 사랑이라는 근간이 있어야 가능한 꾸지람이지만 아직 어린 테스나 잭에게는 그저 무섭고 아픈 잔소리일 뿐이다. 아이들을 혼내는 기준과 정도를 일관되게 하는 것이 참 어렵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상처를 서로 덜 주고 받으며 해결하고 싶지만 애매한 말로 오히려 상처가 될 때가 있다. 마음의 아픈 상처가 오래 남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이들은 좋은 기억보다 아픈 가억을 오래 갖고가기 마련인가보다.

우리 집에는 화초를 좋아하시는 아빠 덕분에 화단에 꽃나무가 많았다. 특히 5월이면 덩쿨장미가 담장 밖에까지 뻗어나가서 멀리서 골목으로 보이는 우리집을 알 수 있었다. 장미가 울타리 너머 보이는 우리집이 아빠의 정성으로 가꾸어진 뜰이었음을 나이들면서 알게 되었다.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나 당연하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

"아빠에게 선함이란 손으로 잡을 수 있을만큼 아주 구체적인 것이었다. 석탄 암석처럼 단단하고 확실한 무엇, 무게를 달고 길이를 재보고 처음과 끝을 구분할 수도 있는 것. 아빠에게 누구든지 사람을 혐오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른들에게 대답할 때 우리는 공손해야했다. 엄마가 부탁하지 않아도 먼저 돕는게 원칙이었다.
이런 확실한 도덕적 관점은 아빠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원하고 기대하는지, 그리고 어떻게하면 실망할지를 알게 한다는 점에서 좋았다. 하지만 자신의 도덕적 관점이 확실한 대신 남의 도덕적 관점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아빠와는 그 어떤 의견 조율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는 스스로에게 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댔다."

"가끔 아빠와 엄마를 보면 석탄 대신 용광로에 들어가도 그 안에서 타버리는 것 대신 오히려 더 단단하고 강해져 절대 흔들림없는 무언가가 될 것 같았다."

"잭은 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늘 활짝 웃었고 깁스와 멍자국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다. 내가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고통이 영광의 트로피라도 되는 듯, 가까운 친구라도 되는 듯 그렇게 생각하도록.
언젠가는 나도 일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튼튼해 보이지만 허약하고 지긋지긋하지만 그래도 소중한 이 몸이 언젠가는 고삐에서 벗어날 날이 올 것이다. 내 삽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이 석탄들처럼 무너지고 타버릴 것이다.
탄광에서는 내내 추웠다. 등이 땅에 흠뻑 젖었어도 몸은 늘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일했다. "

우물에 버려진 아이를 둘러싼 사건으로 시작해서 사춘기 두 자매의 엉뚱한 상상력과 가족을 위해 탄광에서 일하는 가장의 삶, 어린 동생이지만 탄광에서 사고로 다친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이 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속깊은 꼬마 동생 잭. 그리고 묵묵히 가정을 꾸리는 사랑받는 엄마 리타. 주변의 동네이야기들과 사회의 주변 문제들을 가족사에 녹여냈다. 각자의 다른 생각들이 다양한 시선들을 담아 서로의 입장을 좀 더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사건으로 인해 서서히 벌어지는 가족 간의 균열도 보이지만 그냥 가족끼리 둘러앉아 서로의 얘기도 듣는 기분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잘 지켜내고 온힘을 다해 버티며 살고 있는 모습은 흡사 우리의 가족들과 비슷했다.
어떤 기억들은 우리 마음 어느 창고 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이렇게 하나씩 서랍을 열고 나오듯 툭툭 올라온다.

"잭은 나보다 더 일찍
그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다.
정답이 동시에 여러 개일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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