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행방 새소설 3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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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한국 문학의 참신하고 첨예한 작가들의 시선을 담는 소설들을 선별해서 <새소설>시리즈를 기획한 것 같다. 당당히 새소설 3번으로 자리매김한 책이 행운을 통해 내 손안에 들어왔다.

안보윤은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로 제1회 자음과 모음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 소개되어 있다. 이미 여러 소설을 발표하고 수상경력이 있는 작가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참신하고 흥미로웠다.

우리 모두가 기억하게 될
슬픔에 대한 묵직한 기록

죽음을 볼 수 있는 안테나이자 안내자인 신비한 나뭇가지를 만나게 된 주혁. 그리고 나뭇가지 '반'이 마주 잡았던 무수한 손들의 서사가 담겨있다. 때론 흥미롭게 때로는 아프게, 고통스럽게 때로는 간절한 희망을 갈구함으로.... 인간이 만들어 내는 죽음들에 대한 질문을 쏟아낸다.

사람이 만들어 낸 수많은 죽음들을 보았지만 1999년 6월 수련회 열악한 컨테이너 숙소가 화재로 새까맣게 타버린 그 건물을 작가는 잊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받고 다르게 기억하겠지만 이 사건 이후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신문에 실릴 때는 사건사고 기사에 불과한 일이지만, 그 일이 나와 관련된 가족의 일이라면...
숱한 밤을 지내며 죽음에 내몰리는 밤에 두려움을 물리치며 기적에 뒤척이는 시간들을 응시한다.

해원과 해림 자매의 이야기. 그리고 주혁과 영주 가족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언니 해원은 보통의 여느 사람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수순처럼 적당한 불의에 타협할 줄 모르는 해림이 늘 걱정이다.

무리 안에 포함되는 것.
모두와 같은 방향으로 헤엄치는 것.
어른이 되는 과정은 그처럼 간단했다.
그리고 그것은 해원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p.156

-그럼 네 주변 사람들은 올곧고 정직해?
너랑 같이 시위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다
어디갔어? 네게 비리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던
사람들은? 지지자들은?
지금 전부 어디 있는데?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어.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목소리 낼 기력이 있는 사람이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왜 하필 너냐고!
(중략)
-왜 하필 나냐고 물었지.
어둠 속에 선 동생이 고요히 물었다.
- 그럼 누구라면 괜찮은 건데? 내가 아닌 누구면 괜찮다는 거야?
p.167-168

사회의 불합리한 일들에 낱낱이 1인 시위를 하고 내부 고발을 하며 살아낼 수는 없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부당함에 맞서서 목소리를 낼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바로 내 가족이면 문제가 달라진다. 안전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고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남들보다 한마디가 더 많아 늘 세상에서 치이는 동생의 죽음 앞에서 더 이상 해원도 조용히 있을 수 없게 된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세상이 제자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시민단체도 있고 인권위원회도 있고 소방서도 경찰도 감찰하는 기관도 있어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게 직업인 사람들이 있으니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동생을 말리던 해원이는 자신이 동생을 죽인 것 같아 괴로워 하는 마음에 함께 서럽다.

해원이의 방문 이후 주혁은 제발 죽지 말라고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 대상은 바로 영주, 자기 아내였다. 그들은 아이가 죽은 이후 대화조차 없는 부부가 되었다. 서로에게 쏟아낼 것이 비난과 원망뿐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낮은 밤보다 지독한 형태로 주혁을 괴롭혔다.
세상 모든 곳에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아이가 있었다. 주혁의 품 안을 제외한 모든 곳에.
아이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종일 상상했다.
갓 태어났을 때 복숭아 씨처럼 쪼글쪼글하던
아이 얼굴이 어떤 식으로 둥글어졌는지. 애벌레같던 아이 손가락이 어떤 식으로 움직여
이유식을 떠 먹었는지. 아이의 미래에 대해,
아이가 마땅히 누렸을 무탈하고 평범한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했다. 아이가 선이 되고 면이 되고 이윽고 도형이 되는 모든 순간들에 대해서. 주혁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아이의 현재뿐이었다.
p.188

사고로 아이를 잃은 슬픔은 같을텐데.
아니 어쩌면 가기 싫은 아이를 설득해서 재밌는 캠핑장에서 친구들과 지내고 오라고 종용했던 엄마는 한층 더 괴로울텐데....
주혁은 마음 속의 말을 기어코 뱉어냈다.

-영주야 너는 왜 바쁘냐
-영주야 너는 어떻게 밥도 잘 먹냐
-그렇게 뻔뻔하게. 잘도 살고 있냐...

목이 메였다.
그렇게 뱉어낼 수 밖에 없는 아이 잃은 아빠의 심정도 이해되지만 그 말을 들어야하는 엄마 영주의 가슴에 꽂아내린 비수같은 말이 너무..
너무도 내가 들은 듯 아팠다.

죽음으로 내몰린 어린 생명들에 대한 분노는, 부실공사를 눈감아 준 관공서의 관리자가 아닌 야박하게도 같은 피해자일지 모를 아내에게 꽂아버린 것이다. 여러 죽음들을 바라본 후에 주혁은 비로소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을 맞는다.

모든 죽음들을 애도하고 억울한 죽음에 함께하는 단단한 응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전해졌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위로를, 희망이 필요한 사람에겐 희망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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