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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하지 않는 환대

절대적 환대를 규정하는 마지막 항목은 적대적인 상대방에 대해서도환대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원을 확인하지 않는 환대나 답례를 기대하지 않는 환대보다 훨씬 더 실천하기 어려운 미덕처럼보인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고, 대가를 전혀 계산하지 않고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돌변하여 우리를 해치려 할 때도 여전히 그럴 수 있을까?
데리다는 이 어려움을 강조하면서,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타자가 당신에게서 가정이나 지배력을 빼앗는다 해도,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그것이 무조건적 환대의 조건이다 당신은 당신의 공간, 가정, 나라에 대한 지배력을 포기한다.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순수한 환대가 있다면, 그것은 이런 극한까지 고양되어야 한다."") 순수한환대가 그런 것이라면, 과연 우리는 그것을 거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타자‘가 죽음이나 운명의 메타포라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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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족은 왜 ‘사람에 토대를 둔 가족‘으로 
이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우정의 조건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에 토대를 둔 가족, 혹은 관계 그
 자체가 중요한 가족관계적가족‘의 구조는 
우정의 구조와 비슷하다. 관계 속의 개인들이 
서로를 도구화하지 않고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인 관심을 관계 바깥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관심이 가운데 놓이자마자
관계는 복잡해지고 불안정해진다.
 마음이 돈으로 환산되고, 
돈이 마음을 대신하며, 
함께했던 시간 전체가 투자, 기대, 이익, 손해, 청산 같은경제 용어로 기술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약자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가족이라면, 
경제적인 관심을 가족의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자본주의적 산업화는 무급가족종시자나 
전업주부처럼 가족을 매개로 
경제에 간접적으로 접속되어 있는
개인들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는 경향이 있다. 
비계약관계에서 계약관계로, 또는 
선물경제 영역에서 화폐경제 영역으로의 이러한 이동은 
개인들을 인격적 종속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노동의 가치를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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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선물이란 
결국 경제적으로 의미를 갖지 않는 선물, 
실제로 그것이 지니는 물질적인 가치와 무관하게, 
상징적인 관점에서만 평가되는선물을 말한다. 
이는 경제활동과 선물 교환이 별개의 영역이며,
 개인들이 선물 교환에 의지하지 않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른 말로 하면, 순수한 우정의 관념은 
경제적으로 자율적인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가정한다. 자율적 개인의 이상이 함축하는
경제와 개인의 관계를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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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족은 왜 ‘사람에 토대를 둔 가족‘으로 이행하지 못하는까?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우정의 조건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야 한사람에 토대를 둔 가족, 혹은 관계 그 자체가 중요한 가족관계가족‘의 구조는 우정의 구조와 비슷하다. 관계 속의 개인들이로를 도구화하지 않고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인 관심을 관계 바깥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관심이 가운데 놓이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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