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를 대신하는 것으로 지방)과 신줏단지가 있다. 신주는장손이 모시므로 신주를 모시지 않는 집안에서는 지방으로 대신했다. 지방은 신주 크기로 창호지를 오려서 신주에 쓰인 격식대로제사에 모셨다가 제사가 끝나면 태워버렸다. 또 사당을 만들 수없었던 농가에서는 장손의 집에서 신줏단지를 모셨다. 신줏단지는 집 안방에 모시는데, 항아리에 쌀을 가득 채우고 한지로 봉했다. 항아리의 쌀은 햇곡식이 나면 햇곡식으로 바꾸어 넣고, 묵은쌀은 가족끼리 밥을 지어 먹었다. 신줏단지는 신주를 모시기보다는쌀을 넣어두는 경우가 많아 조상단지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점차 사당이 사라짐에 따라 신주는 지방이나 사진으로 대체되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에는 1934년 의례준칙을 발표해서 신주를 지방이나 사진으로 바꾸도록 법적으로 강제했다. 나중에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신주는 거의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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