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철마다 직접 만들어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각종 나물과 장아찌를 어릴 때는 왜 그렇게도 싫어했는지 모르겠다. 잡곡밥과 찌개, 김치와 대여섯 가지 나물, 잘 구운 생선에 쌈채소까지 늘 푸짐한 밥상이 차려졌지만, 육식파였던 나는 딱히 젓가락 갈 곳이 없다며 깨작거리다 혼나기 일쑤였다.
무더운 여름이면 외할머니가 두부를 듬뿍 넣어 자박하게 끓인 강된장에 호박잎쌈을 싸주셨는데, 그건 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양푼에 갓 지은 밥을 넣고 각종 채소와 고추장 한 숟가락, 참기름을 넉넉히 둘러 온 가족이 다 함께 비벼 먹던 비빔밥도 엄지척이었다.
나이가 들어 직접 밥상을 차려보니 매 끼니마다 얼마나 큰 수고가 숨어 있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전자레인지로 뚝딱 완성하는 간편식도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고, 배달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중국집 정도였다. 클릭 몇 번이면 장 본 물건이 현관 앞까지 오는 마트 앱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생활이 편리해진 만큼 내가 먹는 음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귀찮아서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간편한 덕에 빵이나 면으로 한 끼를 때우는 날이 많아졌다. 게다가 스트레스를 야식+폭식으로 해소하는 나쁜 습관까지... 어릴 때는 싫다고 밀어내던 나물과 채소가 밥상의 중심이었다면, 어느 순간부터 쉽고 빠르고 자극적인 음식들이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올해 초 몸무게가 무려 7kg이나 불어난 것도 그런 식생활과 무관하지 않았다. 귀차니즘을 등에 업은 편리함과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는 자극적인 음식의 조합은 꽤 강력했다. 정제 탄수화물의 단짠단짠 조합에 기름기 가득한 고열량 음식까지. 쉽고 빠르고 맛있다는 이유로 자주 손이 갔지만, 문제는 단순히 살이 찐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마침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다'를 읽으며 내가 그동안 무엇을 먹어왔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이 책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노화의 속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같은 나이라도 신체의 노화 정도가 서로 다른 이유를 식생활에서 찾아가는 것이다.
영국의 과학·건강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6개국의 장수 지역을 찾아가 세계적인 노화 과학자들을 인터뷰하고, 자신 역시 여러 식이요법을 직접 실천한다. 생체나이와 노화 관련 지표를 측정하고 내장지방을 MRI로 확인하는 등 식습관을 바꾸기 전후의 변화를 과학적인 검사로 추적해 보여주는 점도 흥미롭다.
책이 말하는 건강한 식사의 핵심은 특별한 음식 하나를 찾아 먹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매일 반복되는 식사에서 몸에 부담을 주는 요소를 하나씩 덜어내는 데 가깝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지 않고, 여러 단계의 가공을 거친 초가공식품보다는 원재료의 형태가 살아 있는 음식을 선택한다.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나 높은 온도에서 바싹 굽고 튀긴 음식은 줄여 AGE 생성을 낮추며, 채소와 과일, 콩, 통곡물, 견과류처럼 비타민과 미네랄, 파이토케미컬이 풍부한 식품은 충분히 챙겨 먹는다. 육류와 정제곡물에 치우치기보다는 다양한 식물성 식품을 곁들여 식이산 부하를 낮추고, 지방 역시 무조건 피하기보다 생선과 견과류, 씨앗류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지방을 선택한다.
장내 환경을 위해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마다 같은 음식에도 다르게 반응할 수 있으므로 내 몸에 맞는 식사법을 찾아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무엇을 먹느냐만큼 언제 먹느냐도 중요하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식사보다는 몸의 생체리듬에 맞춰 일정한 시간에 먹는 습관이 도움이 된다.
결국 책이 이야기하는 식사의 방향은 의외로 단순하다. 덜 가공하고, 덜 달게 먹고, 지나치게 태우지 않으며, 식물성 식품은 더 다양하게 먹고, 몸이 필요로 하는 만큼 적당히 먹는 것. 거창한 비법이나 특별한 슈퍼푸드보다 매일의 평범한 한 끼가 차곡차곡 쌓여 결국 지금의 몸을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평소 보충제의 효능에는 다소 회의적인 편이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식단으로 충분히 챙기기 어려운 영양소는 필요에 따라 보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오메가3 정도는 다시 한번 챙겨볼까 싶다.
돌아보면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가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밥상이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강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는 그렇게도 손이 가지 않던 나물과 채소가 이제는 가장 반가운 반찬이 되었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거창한 계획보다는 매 끼니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빠뜨리지 않고 챙겨 먹는 것부터 시작해봐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빵순이 탈피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