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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사랑한 파리 - 명화에 담긴 101가지 파리 풍경 ㅣ 화가가 사랑한 시리즈
정우철 지음 / 오후의서재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함.

이 책은 ‘낭만의 도시 파리’를 무대로, 101점의 명화를 통해 다양한 화가들의 개성과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된 작품집이다.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독자에게도 익숙한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클로드 모네를 비롯해 총 14명의 작가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시선과 감성이 담긴 파리의 작품 세계를 따라가게 된다.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거장부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화가들까지, 한 도시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예술 세계를 펼쳐 보이는 점이 흥미롭다.
회화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이미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작품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 작가의 생애와 당시의 상황, 그가 느꼈을 감정, 미술 사조와 작화 스타일 같은 맥락이 조금 더해질 때, 그림은 비로소 입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친절하게 짚어준다.
미술사적 흐름을 중심으로 전문 용어가 빼곡하게 나열된 기존의 명화 작품집들과 달리, 이 책은 정우철 도슨트가 곁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다정하고 부드러운 설명이 인상적이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 해설을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내어, 마치 산책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특히 작품을 우리의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스토리텔링은 감상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그림과 설명의 비중도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어, 부담 없이 읽기 좋은 회화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다.
자유와 평등을 갈구하던 시대에서 산업화를 거쳐 현대로 넘어오는 동안, 파리의 얼굴은 수없이 변화해 왔다. 어떤 시기에는 환희로, 또 어떤 순간에는 고독과 불안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희로애락의 표정이 각양각색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늘 멋과 아름다움, 그리고 파리 특유의 세련미가 흐른다. 설령 무채색의 무표정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위대한 화가들도 절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역시 실패했고, 좌절했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도슨트로서 화가들의 삶과 그림을 바라보며 매 순간 곱씹는 말이 있습니다. "그저 내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에필로그 중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되면, 늘 숨 가쁘게 달려온 것 같은데 막상 손에 쥔 것이 없는 듯한 공허함이 밀려온다. 그런 마음에 이 에필로그를 읽으니, 하루하루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오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저자의 말이 토닥토닥, 쓰담쓰담 조용히 등을 두드려준다.
나처럼 현실을 외면한 채 살아갈 수 없는 사람에게, 순수 예술가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다. 빵보다 신념을 택하고, 자신의 인생을 예술혼에 기꺼이 걸 수 있는 삶.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담보로 불확실한 미래에 사활을 거는 그 대담한 선택은, 감히 쉽게 넘볼 수 없는 이상향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이 책 속 화가들의 삶과 그림은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화가가 사랑한 밤, 화가가 사랑한 바다, 화가가 사랑한 나무'로 이어지는 시리즈 역시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이 책을 덮으며, 파리를 사랑한 화가들의 시선을 따라 또 다른 장면들을 만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