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는 '삶과 일의 균형'에 대해 다룬다. 현생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 일은 생업을 위한 필연적 수단이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만 하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먹고살아야 하는 노동의 굴레 속 부대끼는 삶이란 자아실현이니, 성장이니 하는 이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자신의 취향과 강점을 알고 역량을 발휘해 일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 처한 다양한 상황 속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고 희망의 씨앗을 품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나와 가족을 사랑하며 주변 사람들과 끈끈한 유대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오늘에 매진하는 열정가들.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그들의 모습에서 내가 처한 문제 상황의 돌파구에 대한 영감도 받을 수 있었다.
감각의 크레마가 사라지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그동안 우리는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것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 현시점에서 일어나 잠들기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일에 대한 관점'을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만들어 나만의 감각을 쌓아간다는 건 나를 아는 것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p.18
50년 차 이발사, 하루의 행복
아픈 과거에서 배움을 얻지만 얽매이지 않고, 큰 미래를 꿈꾸며 나아간다. 현재를 저당 잡히지 않으며, 오늘의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고 균형 있는 삶을 꾸려온 아빠를 보며, 아마도 나 역시 도전하는 노년을 보낼 게 틀림없다. 아빠가 나에게 물려준 유산은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니까. p.100
돌보는 사람
초등학교에는 돌봄 교실이 존재한다. 맞벌이 부모들을 위한 방과 후 교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처음에는 이 교실의 이름이 무척 낯설었다. 돌봄을 가르치는 교실이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공간인데, 아이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니고 싶었다. '저도 좀 돌봐주세요!', '엄마는 누가 돌보죠?'라고 외치고 싶은 심경이랄까.
퇴근길에 아이를 하원하고 집에 오자마자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엄마들의 어깨를 쫙 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대개 엄마들은 양육자로서의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기고, 육아에 협조적인 아빠들은 스스로를 대견해하기 바쁘다. 아빠들의 육아 참여 리뷰를 목격할 때마다 박수를 치는 한편, 당연한 거 아니냐고 묻고 싶은 마음도 있다. p.186

생업 속 꿈을 엮어가는 개척자, 고된 육아 속에서 아이의 성장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부모, 해외 성소수자의 사랑과 결혼 문화, 다양한 형태의 가족, 해외 출판 시장을 공략하는 K 문학 등 시공간과 국경을 넘나들며 무수한 난관을 다양한 형태로 극복해 가는 모습에서 삶의 충만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끝으로 독립잡지 발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세상에 빛이 되는 글을 엮어내기 위해 분투하시는 정유미 님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뻗어나가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잡지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길 바라본다.
- 본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