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에 관심을 갖고 조금씩 읽다 보니 돌아서면 증발되는 여운을 조금이나마 붙들어두고자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생각과 느낌도 기록하고 싶어졌다. 영어책 100권, 일어책 100권, 한글책 그보다 조금 더 많이 읽고 기록하면서 초반과 근래의 서평을 비교해 보면 그나마 조금 성장한 듯 보이긴 하지만, 역시 만족스러운 수준은 절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작법서나 작가들의 글쓰기 관련 도서에도 흥미를 갖게 됐는데, '관내 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유명한 김초엽 작가의 에세이 출간은 그래서 더 참 반가웠다. 역시 소설가 다운 반짝이는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된 이번 작품은 그녀의 개인적인 면모를 좀 더 들여다볼 수 있어 친근감이 들었다. 과학도 출신의 지성미와 이룬 성취에 비한 겸손함, 따뜻한 인간미까지 참 호감형 작가다.
SF에 대한 그녀의 철학, 작가로서의 고뇌와 보람, 창작을 위한 방대한 읽기와 쓰기의 반복 속에서 얻은 깨달음과 성장을 엿보며 나 또한 새로운 영감과 자극을 받았다. 굳이 고르라면 이과보단 문과 성향에 좀 더 무게 중심이 기우는 내가 그녀의 심도 있는 과학 세계를 이해하기는 버거웠지만, 그만큼 그동안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엔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인간 중심에서 탈피해 비인간 존재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SF라는 장르에 대한 매력을 살짝 맛볼 수 있었던 점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특히 과학뿐만 아니라 소설가란 창작의 고뇌 여정에서 그녀에게 자양분이 된 수많은 도서를 엿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독서에 대한 열정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시작한 나 같은 새내기 독자에게 책 속의 책을 통해 파생 독서로 안내하는 부록의 도서 목록도 그녀의 꼼꼼한 배려가 엿보여 고마웠다. 출간된 김초엽 작가의 소설과 그녀에게 영감을 준 도서들을 찾아 읽으며 관심 없던 SF 세계를 음미하고 과학의 바다에서 유영한 후 다시 이 책을 읽으면 좀 더 많은 문장을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아 재독할 날을 기대해 본다.
아이돌의 눈부신 화려한 퍼포먼스가 그녀의 소설이라면, 무대 뒤에서 흘린 땀방울과 내밀한 사적 이야기는 이 에세이가 될 것이다. 새내기 작가로서 겪었던 좌충우돌 생존기이자 혼란의 독서 여정에서 재능보다는 노력이라 말하는 그녀의 겸손을 통해 나의 글쓰기도 조금은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읽었다. 이성적인 과학의 토대에서 따뜻한 문학의 힘으로 승화하는 Z세대의 대표 작가로 한창 진화에 전화를 거듭하고 있는 그녀의 추후 행보도 열렬히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