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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편 윤동주를 새기다
윤동주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2년 2월
평점 :
길
- 중략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
대중에게 사랑받는 명작은 다양한 버전으로 재탄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윤동주의 시집이 아닐까 싶다. 일제 강점기, 조국의 암흑기에 삶의 고뇌와 사색을 문학으로 승화한 민족 저항 시인을 나 또한 사랑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가끔씩 꺼내 읽어보며 그 시대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다. 윤동주의 시의 시어가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품이 많은데 이 명작에 감성적인 일러스트를 가득 더해 시를 음미하는 시간이 더욱 행복해진다. 신간 '하루 한 편 윤동주를 새기다'라는 맑고 투명한 느낌의 수채화, 기품 있고 묵직한 유화 느낌의 다양한 풍경화를 담고 있어 그림 자체만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빨래
빨랫줄에 두 다리를 드리우고
흰 빨래들이 귓속 이야기하는 오후,
쨍쨍한 칠월 햇발은 고요히도
아담한 빨래에만 달린다.
민족 시인의 시를 독립운동가의 서체로 필사해 보며 한 편, 한 편 시가 머금고 있는 의미와 감성을 깊이 느껴 볼 수 있다. 글을 직접 손으로 베껴 쓰는 작업인 필사는 더욱 깊은 독서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자, 글쓰기를 간접으로 체험할 수 있는 행위이다. 또한 문장력을 향상시키며, 저자와의 깊은 상호작용을 통해 작품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더불어 집중력을 기르고 차분한 마음가짐을 유지하여 글자를 써보는 과정에서 치유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이 도서가 매력적인 이유는 김구, 한용운, 안중근, 윤봉길과 같이 민족의 명맥을 이어온 독립운동가의 필체를 구현하여 독자들이 따라 써 볼 수 있도록 한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세로형 원고지도 제공하고 있어 그 시대의 쓰기 문화를 경험해 보는 것도 필사의 즐거움이 될 것 같다.
달밤
흐르는 달의 흰 물결을 밀쳐
여윈 나무 그림자를 밟으며
북망산을 향한 발걸음은 무거웁고
고독을 반려한 마음은 슬프기도 하다.
누가 있어만 싶은 묘지엔 아무도 없고
정적만이 군데군데 흰 물결에 젖었다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소년, 또 다른 고향 등 윤동주의 대표시를 비롯해 총 70여 편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1장 1917년 12월 30일 윤영석과 김룡의 아들 윤동주 출생, 2장 1943년 7월 14일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 3장 1945년 2월 13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향년 27세, 4장 1947년 2월 13일 「쉽게 쓰어진 시」 해방 후 최초 발표, 이렇게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빛 한줄기 희망이 보이지 않던 암흑 같은 시대에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껏 짧은 삶을 연소한 윤동주.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사색, 내면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시화집이 요즘 같은 시기에 따스한 위안을 전해줄 것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 시 일러스트 시 엽서 4종을 선착순으로 증정한다고 하니,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본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