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나카무라 구니오 지음, 이현욱 옮김 / 밀리언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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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아침 5시에 일어나 4시간 동안 원고지 20매를 쓰고, 두 시간 달리기를 통한 철저한 자기 관리로 재능을 뛰어넘는 성실한 노력파!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일본 현대문학의 거장이자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이며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학창 시절, 그의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 (국내에서는 '상실의 시대'로 번역됨)이 꽤 인기를 끌어 시류에 쓸려 나도 읽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당시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데다 소설 전반적으로 암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와 익숙지 않은 원색적인 묘사로 그다지 만족감이 크지는 않았던 작품이다. 세월이 조금 흘러 이번에는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여행 에세이를 골랐는데, 이 책 역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초반에 몇 페이지 읽다 덮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분명 대문호로서 각인되어 있지만, 딱히 마음을 파고드는 작품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그러던 중 일본 원서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면서, 숙제처럼 남아 있던 그의 작품을 다시 진지하게 마주하고 싶어져 대표작을 몇 권 구입했다. 그런데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라는 신간을 먼저 읽게 돼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책을 쓴 저자는 하루키의 작품에 심취해 문학의 매력에 사로잡혀 작가가 됐다고 하는데 하루키에 대한 애정, 관찰력, 분석력이 정말 감탄스럽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배우는 '맛있는 문장' 쓰는 47가지 규칙이란 부제에 걸맞게 책장에 꽂힌 하루키의 명작을 꺼내들어 낱장으로 찢은 후 카테고리별로 분류해 정리한 듯한 열정과 수고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루키의 에세이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에 대한 오마주가 느껴지는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라는 제목부터가 그의 열혈 하루키스트답다.


라카미 하루키는 분명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매력이 있는 작가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 같이 수수께끼 같은 긴 제목을 붙이기도 하고, '1973년의 핀볼'처럼 구체적인 연도를 쓰기도 한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나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연결해 호기심을 자아내는가 하면, 일본보다는 한국과 대만에서 더욱 붐이 됐던 '소확행'과 같은 참신한 신조어를 사용하거나 다양한 작품에서 같은 등장인물이 등장해 반가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또한 독특한 방법으로 음식 먹는 방법을 서술하고, 색에 상징을 부여하며 고전음악의 아름다운 세계를 표현한다. 기발한 장치를 요소요소에 배치하거나 다양한 참신한 시도도 그렇지만 특히 하루키가 범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한 인류 보편적 감성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탁월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우리에 맞게 역사를 다시 써도 벗어날 방법, 숨길 방법 그런 건 없다.만약 방법이 있다면 상대가 인정할 만큼의 사죄하는 것, 그것뿐이다.


내가 대표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대표해야 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다.오직 나의 신념뿐이다. 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품격이다.소설가는 예술인이기 이전에 자유인이어야 한다.

p. 59 폐쇄적, 배타적,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모국 일본에 일갈하는 소신 발언

이 책은 하루키의 다양한 명작 중 대표 샘플러를 잘 선별해 먹기 좋게 독자들 입에 쏙쏙 넣어준 맛있는 안내서였다. 단순히 글 잘 쓰는 작가 하루키를 넘어 인간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어 신선했고, 인간미 넘치는 예술인이자 영향력 있는 지식인의 다양한 작품을 이제 슬슬 한두 권씩 읽어나갈 원동력이 되어준 것 같다. 일상적인 날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하루키의 발견을 그의 명작에서 앞으로 차근히 만나 보고싶다.


- 본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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