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대표 한시 312수 - 한시가 인생으로 들어오다
이은영 편역 / 왼쪽주머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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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동양의 문화를 대표하는 문자, 즉 한문으로 쓰인 시를 말한다. 한자 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 종주국인 중국 그리고 일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문자가 특권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만큼 대부분 한시의 작가가 각국을 대표하는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신분으로 차별받았던 서얼, 여인, 노비의 희로애락도 엿볼 수 있다. 총 194명의 312수가 수록되어 있고, 천지인풍 즉 하늘의 이치, 땅의 기운, 사람의 삶, 자연의 멋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장점이라면 한시의 상징과 비유, 함축적인 의미를 파악하기에 아직 혜안이 부족한 독자들을 위한 해설이 하단에 제시되어 있는 점이다. 더불어 작가의 특징, 시대적 배경, 관련 주변 인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해설자의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 또한 재미를 더해 준다. 원문인 한문에도 음독을 달아주어 읽기 편하며 한자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눈여겨볼 수 있어 좋다. 하단에는 주요 한자의 뜻도 기재돼 있어 원문만 읽을 때 참고해 볼 수 있다.

국가의 비율로 보자면 우리나라 > 중국 > 일본 순으로 일본의 한시는 매우 적게 실려 있고, 문자 사용에 제약을 받았던 여인들의 시 또한 기대만큼 그 수가 많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대부분 조선과 고려의 문무 대신, 학자, 승려 등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학창 시절 국어와 국사 시간에 익히 들어 친숙한 이황, 정약용, 이성계, 이순신, 정도전, 김정희, 박지원, 박팽년, 왕건, 안중근, 한용운, 김시습 그리고 방랑 시인으로 유명한 김삿갓, 김병연과 대표 여류 시인 허난설헌, 황진이의 시가 실려 있다. 중국 당나라 하면 또 빠질 수 없는 당대 최고의 시인, 이백과 두보의 시도 역시 가히 명작이다.

오로봉

오로봉을 꺾어 붓을 만들고

삼상 강물을 끌어 벼룻물 삼아

푸른 하늘 한 장 큰 종이 위에

내 마음의 시를 써 보리라

이백

식이 깊고, 덕망이 높아 한 시대를 풍미하며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이자 지체 높은 양반집 자제일지라도 쓸쓸한 유배지에서는 가족과 친구가 그립고, 정을 나눈 이와 헤어질 때는 술 한 잔을 권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멀리 떨어져 있는 님을 그리워하고, 신분의 벽을 넘을 수 없는 사랑에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 권세와 영달에 눈이 멀어 탐욕스러웠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나 나이듦과 한 해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에 대해 노래하기도 한다. 또, 빈부 격차의 한탄, 기울어 가는 나라에 대한 걱정 등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친근감과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더욱이 한시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자연에 대한 예찬이나 풍류를 즐기며 인생을 읊조린 선인들의 멋과 여유는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과 대조적이라 참 부럽기까지 하다.

더위 속에서

맛난 과일 물에 담가놓고 술기운은 얼큰한데

책 몇 권 평상 위에 어지러이 널려 있다

성긴 대숲 사이로 시원한 바람 불어와

누워서 보는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흘러간다.

소순흠



우리가 사랑한 대표 한시 312수 ┃ 이은영 편역 ┃ 왼쪽주머니 ┃ 2020

눈 속에 찾아간 벗을 못 만나고

쌓인 눈이 종이보다 더 희길래

채찍으로 내 이름을 써놓고 가니

바람이 눈 위에 쓴 글씨 지우지 말아

주인이 올 때까지 남았으면 좋으련만

이규보

백 년 전, 수 천 년 전 다양한 역경 속에서도 호방한 기상을 잃지 않고 시를 통해 자신의 고민과 번뇌를 예술로 승화했던 수많은 선인들과의 만남이 참 즐거웠다. 그리고 잊고 살았던 그 시대의 정신과 가치를 통해 오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무더운 이 여름, '우리가 사랑한 대표 한시 312'와 함께 폭포수가 은하수처럼 쏟아지는 산속으로, 흰 눈 소복이 쌓인 고즈넉한 암자로, 조각 달빛 은은한 한밤중의 한 장면 속으로 피서를 떠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본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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