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피플 존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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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자 맡은 일에 집중하시게요. 의사인 저는 치료를, 간호사는 체크를, 보호자님은 식사를요.” 혈액암 말기로 입원 중인 장인어른 주간 간병을 10여 일째 맡고 있었던 날 오전, 나는 회진하던 의사에게, 아버님이 식사를 안 하시려고 하니 선생님께서 아버님께 식사를 잘하셔야 한다는 말씀 한마디 해주시라고 부탁했더니, 의사가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했던 말이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럼에도 밀려드는 서운함과 무안당한 데 따른 수치심과 분노를 나는 온종일 삭혀야 했다. 정이현의 소설집 <<노 피플 존>>에 실린 <선의 감정>을 읽으면서 떠오른 기억이었다. 종합병원 내과 전문의인 가 오진과 환자 보호자의 의료 사고 항의 가능성에 불안해하는 마음 전개를 따라 가면서 나는 병원과 다른 공간에서 일하는 내가 겪고 있는 불안을 되짚었다. 예상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고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던 일이 불거져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곤혹스럽게 했던 기억들이었다.

  정이현의 소설을 읽으면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현실과 현재의 삶을 문자로 그려낸 상상의 세계를 보았다. 그의 소설은 막연하지 않다. 내가 어디에선가 겪었을 법한 일이거나 앞으로 단 한 번도 겪지 못할 법한 상황과 일을 겪을 수도 있는 일인 것처럼 보여준다. <빛의 한가운데>에서 는 아들이 성범죄에 연루된 상황에 있다. 그 대상은 현재 자신과 가깝게 지내는 아는 동생 미령으로, 젊은 시절에 광고모델로 활동하던 때 얼굴을 아들이 딥페이크 소재로 삼은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는 부모, 그것도 아들을 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이고 위선적이며 심란할지 짐작이 간다. 그 마음이 소설을 통해 증폭된다. <이모에 관하여>는 직장인 여성의 출산과 육아, 경력 단절, 그리고 재택 돌보미의 삶 등을 담은 이야기다. 나는 직접 겪지 않았지만, 결혼한 조카들의 실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사는 사람>을 읽으면서 임장 투어라는 생소한 삶을 알게 되었다. 고급 아파트를 구매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빈곤층 청년이 아파트를 구하러 다니는 척 하면서 호기심과 만족감, 허세를 충족하려는 모습성과 학원 수강생에게 문제를 유출하면서 적당히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의 삶은 내 주변에 있는 누군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단 하나의 아이>에서 화자인 한나는 일대일 개인 돌봄을 하는 놀이 가정교사, 즉 개인 플레이 튜터다. 포괄적인 돌봄이 아닌, 함께 있기, 숙제 봐주기, 학원 버스 타는 데까지 데려다주기와 같은 구체적인 일감만 부여하고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수요자들은 보이지 않는 장막을 치고 필요한 돌봄 서비스만 돈으로 구매한다. 돌봄 대상자인 하유의 습관적인 거짓말과 가상의 친구와 주고받는 메시지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실패담 크루>에서 모임의 주축이자 를 초대한 성지연은 말로만 꼰대를 거부하는 거대한 꼰대 그 자체다. 자기만의 견고한 철갑성 안에서 이러쿵저러쿵 삶을 즐기고, 다른 이를 지배한다. 시답잖은 실패담을 나누면서 자기 과시와 인맥을 관리하는 가진 자들의 모임 참여자들은 가진 자에 의해 실패를 맛본 진짜 실패담은 차단한다. , 권력, 명예, 능력 등이 많은 이들은 그것들을 자랑하지 않는 듯 말하고 행동하면서 실제로는 강렬하게 드러낸다. 선을 긋지 않는다지만 일상에서 자기와 다른 수준인 사람과 보이지 않는 굵은 선을 긋는다. 그들에게 사람은 모두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떠난 해변에>는 방송 작가인 설과 그의 동성 친구 주영, 그리고 남녀가 3일 동안 고립된 공간에서 이름만 알고 지내는 TV 프로그램에서 만나 결혼한 정훈과 혜정의 삶이 나온다. 사람끼리 만났는데, 이별의 끝은 서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아 보인다. 내 삶에서 열렬히 만났다가 헤어진 사람 중에 끝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자문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가속 궤도>는 교제 폭력이 더욱 흉포해지는 요즘의 세태에서 사랑이 아닌 집착(스토킹, 성희롱)이 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보여준다. 나에 대해 내내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다. <언니>는 조교인 인회 언니에게 중국어 회화 학습 교재 번역을 시키고 결과물은 자신과 부인이 독차지하는 민교수의 횡포를 고발한다. ‘기어코 하는 사람인 성실한 인회 언니가 복학 거부, 논문 학기 중에 지도교수 교체 등의 대우를 받으면서 없는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오래된 현재의 일이다.

소설집 제목 <<노 피플 존>>은 이 책에 실린 9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문구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사람이 없는 구역일까. 아이의 출입을 불허하는 구역이란 뜻의 노 키즈 존의 키즈 대신에 피플을 넣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실패담 크루>의 모임, <우리가 떠난 해변에>의 러브 애드벌룬 프로그램, <가속 궤도> 안에 있는 소진의 내면, <이모에 관하여>에서 재연과 재택 돌보미 간의 관계, <사는 사람>에서 임장 투어하는 삶, <언니>에서 민교수의 행태, <선의 감정>의 병원, <빛의 한가운데>에서 아들의 성범죄를 겪는 부모의 삶, <단 하나의 아이>의 유아동 보육 플랫폼 케이 파라디소 등과 같은 것들에서는 사람은 있어도 사람이 없는 역설의 장이다. 보통의 사람이 아닌 특정한 사람에게만 허용되거나 거부되는 장은 보편적 권리와 가치를 지니는 사람이 없는 구역이다. 그래서 <<노 피플 존>>에 등장하는 여럿의와 은서 엄마인 재연이 건네는 정서는 고달픔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애초에 삶은 고통이라 했다. 그렇다 해도 피플 존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간간이 있다. 그곳에는 보통의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고달픔을 조금씩 덜어내면서 이 세상에 노 피플 존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 본다.

  소설 읽기의 효능감을 생각한다. 소설은 낯선 세계, 익숙하지 않은 세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와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일로 이끈다. 소설 읽기의 매력은 호기심을 불러오고 충족하고 해결하는 과정의 연속이란 데 있겠다. 이에 더하면 소설은 내가 이미 겪었거나 진행 중인 일의 일부나 전부가 있는 이야기에 대해 공감을 더 크게 하고 밀접하게 만든다. <선의 감정>, <빛의 한가운데>가 그렇다. <<노 피플 존>>에 실린 소설 9편 중에서 <이모에 관하여>를 빼고 나머지 8편 모두 가 화자로 등장하니 그 기능은 더욱 컸다. 현재의 내 삶이 어떤 분위기인지에 따라 소설이 다가오는 정도가 다를 것 같다. <실패담 크루>의 모임 주최자인 성지연은 <<노 피플 존>>에 실린 소설 속 여러 실패담을 하찮게 여길 것 같다. 고달픔을 모르기 때문이다. 성지연이 주변호사의 대형 로펌 정식 채용 실패담을 가로막은 이유는 실패가 아닌 단지 결핍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결핍을 경험한 적 없는 성지연에게 결핍은 혐오의 대상이지 공감의 영역은 아니다. 나는 다행히 성지연이 아니다. 고달픈 삶에 충분히 공감할 만큼 내 삶은 고달프다. 그래도 나는 <<노 피플 존>> 안에 있는 고달픈 이들처럼 살아가는 현실의 여러 사람과 토닥토닥 위로와 격려를 나누면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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