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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의 배신 - 은밀하고 정교하게 숨겨온 인간 본성의 비밀
조너선 R. 굿먼 지음, 박지혜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3월
평점 :
철학자 한병철은 신자유주의란 자유를 착취하는 이념이라고 한다. 개인의 자유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두는 이념이 실제로는 자유를 착취한다는 주장은 은유가 아닌 실재다. 자기를 자유로운 개인으로 치켜세우는 신자유주의 인간은 실제로는 자유를 착취하고 있는, 개인의 자유를 쥐어 짜내면서까지 성과를 만들어낸다.
<Invisible Rivals>의 저자는 인간 세상에서 착취는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자연 세계에서 암세포가 정상 세포를 착취하듯 인간 외의 동물이 다양한 모습으로 같은 종을 착취하듯, 인간도 협력이란 가면을 쓰고 착취를 일삼는 존재인 '보이지 않는 경쟁자'가 착취로 번영을 누린다고 주장한다.
굿먼은 대놓고, 노골적으로 다정함이란 착취를 위한 기만 전술이다라고 쓰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내내 그렇게 읽고 있었다. 문득 <다정함의 배신>이라는 한국어 번역서 제목에 있는 '다정'이란 단어를 <다정함의 배신>이라는 제목 외에 책 본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서늘하게 들었다. 한국어 번역서 제목만으로 나는 굿먼의 '보이지 않는 경쟁', '보이지 않는 경쟁자' 개념을 마지막 장에서 새롭게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 개념은 '보이지 않는 경쟁의 탄생'이라는 1장의 부제로 있었다. 3장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의 실체가 드러난다.
인간은 신뢰를 얻고, 타인에게 칭찬을 받고, 기업을 세우는 등 협력적 모험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지만 결국에는 협력을 중단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경쟁이다. 보이지 않는 경쟁이 주는 최악의 효과는 종종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을 가장 잘하는 사람에게 보상과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113쪽)
한국어 제목에 내가 낚였나? 작년에 나온 김민섭의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는 앞으로 읽을 도서 목록에 있고,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는 2021년에 나온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와 지난 3월에 나온 <왜 나의 다정함이 당신을 상처 입힐까>가 있다. <다정함의 배신>이 한 주 일찍 나와서 먼저 읽었을 뿐인데.
누군가 숏폼에서 보았다면서, 인류의 0.5%가 칭기스칸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던데, 이 말이 <다정함의 배신>에서 인용한 것이었나? 50여 군데 넘는 부분에 책갈피를 붙여 놓을 정도로 <다정함의 배신>은 협력과 경쟁 간의 논의를 인간 본성 차원에서 전개하는 데 흥미와 재미, 그리고 통찰을 전달해주었다. 말끔한 번역 문장은 몰입을 더 강화하였다.
<걸리버 여행기> 작가인 조너선 스위프트는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 아니라 훨씬 더 모호하고 어려운, 이성이라는 능력을 지닌 동물"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을 바탕으로, 굿먼은 인류란 협력적 동물이 아니고 '협력할 능력을 지닌' 동물이라고 주장한다. 협력을 당연시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협력하도록 장려할 수 있고, 인간의 결점을 인지한 상태에서도 더 나은 사회를 설계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이 주장이 1장의 마지막 문장이다. 결론인지 불분명하지만, 마지막 장이 7장이니까, 이걸 결론 장이라 본다면, 여기에서 굿먼은 이기심과 기만으로 가득한 세상을 바꾸려면, 그런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무임승차 하는 사람이 있고 그와 공존해야 함을 수용하면서, 보이지 않는 경쟁자와 그의 착취를 인식하고 그의 이기심과 기만에 맞서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이지 않는 경쟁자와 맞서는 일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런저런 부작용 탓을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경쟁자의 이익을 더욱 크게 할 뿐이다. 그들의 전횡을 막고자 강력한 통제 수단을 염두에 둔다면 조지 오웰이 <1984>에서 그린 전체주의 사회로 전락할 것이다. 자연 세계 어디에든 존재하는 착취와 내 안의 이기심을 인정하고 의식하면서 착취당하지 않고 협력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어 협력의 공간이 더욱 넓어지게 하는 윤리적인 삶을 지향하자는 굿먼의 주장은 결코 순진하지 않다.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인간 세상을 설명했다면, 굿먼은 '보이지 않는 경쟁' 또는 '보이지 않는 경쟁자'로 인간과 세상을 설명하려 들고 있다라고 독후감을 표현하면 오독 내지 과장일까. 그는 "인간은 모두 보이지 않는 경쟁자이다. 이것이 인간다움의 핵심이다."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