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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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2·3 계엄 선포일 밤 11, 두런두런 말소리에 잠에서 깼다. 여보, 계엄을 선포했어, 대통령이. 뭔 헛소리를. TV 켜봐. 사실이었다. 이거 지금 바로 거리로 나가야 하는 거 아냐? 외출복을 챙기다 다시 철퍽 주저앉았다. , 지금 도망가야 하는 거 아냐? ? , 설마. 내일 3일째 치를 2차 고사(기말고사)? 놀람과 두려움, 당혹이 섞인 난감함을 기억한다. 머리 안을 계속 떠다녔던 것은 19805월의 광주였다. 그리고 1991310일 이른 저녁에 들이닥친 사람들. 어째야지? 새벽,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학교 관리자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다. 아침 630. 여느 때처럼 자전거 전조등을 켜고 출근길에 나섰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었다.

독후감 공모 공지문을 접한 두 달 전 저녁,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아래층에 있는 문학책만 꽂아 놓은 방에 갔다. 없다. , 거실 책꽂이에 꽂아두었지? 작년 가을, 설악산 백담사 들어가는 계곡에 있는 민박에서 짐을 푸는데, 옆에서 휴대전화를 보던 셋째 형이 한강이 노벨문학상 받네.”라고 말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몇몇 작가들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뉴스를 검색하려고 했는데, 형이 결과를 말해서 살짝 김이 샜다. 잘됐네, 대단한 일이네, 기대 조금 했는데 등 구렁구렁 혼잣말을 했다. 난생처음 설악산 봉정암까지 오른 다음 날, 이른 오전에 책방에서 󰡔소년이 온다󰡕를 꺼내 식구들에게 보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 작품이라고 말했다. 다들 건성으로 들었다. 나는 반년이 다 지나도록 거실 책장에 꽂아 놓은 채 읽지 않고 있었다.

책은 말끔했다. 종이는 바래서 누렇다. 초판 232016531일자. 1쇄가 2014519일이다. 2016년 독서토론동아리연합 토론대회를 준비하면서 예비 도서로 마련했던 책일 테다. 처음 나올 때부터 애써 외면했던 책이었다. 외면? 애써 잊으려는 일들이 있다. 잊었을 것만 같은데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불편하다. 마음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어떤 사회학 연구자가 제주도에 잠깐 살면서 소규모 독서 모임에 나가 4·3 사건을 꺼냈더니 다른 참석자가 좋은 날에, 제주도와 같이 풍광이 좋은 데에서 그런 말을 하냐며 불평하더라는 신문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기분 좋게 술 마시고 흥에 겨워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데 한 동료가 무겁고 느릿한 리듬에 실연의 아픔을 담은 노래를 부른다고 비난하는 모양새라고 할까.

19805월 이후의 광주는 내게 진한 어둠과 무거운 바위로 다가온다. 작가 한강은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20131월의 서울 거리에서 예식장 샹들리에의 화려함을 보면서 화사하고 태연한 사람들이 낯설었다고 적었다. 소설집을 보내달라는 선배의 웃음 섞인 항의에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를 되뇌었다고 한다. 항쟁 마지막 날 전남대학교병원 입원실로 피신한 󰡔소년이 온다󰡕의 은숙이 유월의 도청 앞 분수대에서 물이 뿜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벌써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라는 목소리를 상상했다. 절규, 외침 또는 낮은 목소리의 읊조림으로 따라 읽었다. 나는 󰡔소년이 온다󰡕를 교무실에서, 교실에서 틈틈이 읽을 때마다 비현실감에 휘청대었다. 오월 광주가 현실이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비현실이다. 동호 엄마가 꽃 핀 쪽으로에서목숨이 쇠심줄 같어서 너를 잃고도 밥이 먹어졌제.”라고 말하는 심정에 아주 조금 닿는 마음이 이러한데, 직접 겪은 이는 어쩌겠나.

근래에 속하는 1894년 동학농민전쟁을 다룬 소설을 읽으면서 일본군 총칼에 찢기고 잘리는 농민군의 참상을 접한다. 공주 우금치 기념비 앞에 서서 죽창을 들고 돌진하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 농민군.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저 멀리 만주 벌판에서 일본군에 머리를 잘리고 고문당한 독립투사들. 해방 직후 여수·순천과 제주도에서 벌어진 살육, 한국전쟁 전후 지리산에서 벌어진 살상을 상상한다. 매년 그때가 오고 가끔 그 지역에 머물 때 떠올린다. 나의 일상과 안온함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오월 광주는 그 느낌을 가장 생생하게 전한다.

동호, 왜 애국가를 불러요?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가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다섯 명의 어린 학생들이 두 손을 들고 이층에서 한 줄로 걸어서 내려오는데, 그들을 향해 시민군의 등을 밟고 서있던 군인이 M16 소총으로 조준 사격을 했다. 작은형은 동호가 바로 숨이 끊어진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작은형과 큰형은 아버지 삼우제 준비할 때 멱살을 잡고 다투었다. 큰형이 왜 동생을 데리고 오지 않았냐고 타박하자 작은형이 짐승의 울부짖음으로 맞받았다. 엄마는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찾아갔을 적에, 네가 그리 순하게 저녁에 들어갈라요, 말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으까이.”라고 말한다. 가슴에 피멍이 들도록 후회와 낙심으로 긴 세월을 보냈다. 동호가 찾으려고 했던 사랑방에 셋방을 산 정대는 죽은 몸으로 자기의 시신 위로 포개지고 포개지던 여러 시신에 석유가 뿌려지고 불태워지면서 누나를 떠올린다. 이 오누이의 아비는 자식을 찾느라 헤맨다. 스물세 살의 교대 복학생은 고문당하면서 몸이 사라져주기를, 지금 제발, 지금 내 몸이 지워지기를그는 도청에 남은 이유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인 양심에서 찾는다. 김은숙, 선주 누나. 김진수.

20178월에 개봉한 영화 󰡔택시 운전사󰡕를 온 가족이 함께 봤다. 내친김에 방학 끝무렵에 식구들과 함께 망월동 묘지에 다녀왔다. 고교 선배인 조성만 열사가 계신 곳이고, 2015년에 돌아가신 김형근 선생님이 묻히신 데다. 2004년부터 고교 논술 교육에 관한 조언을 얻으려고 선생님을 만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이끌었던 중·고교 통일 교육에도 조금 참여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회문산 빨치산 추모제로 구속, 해임 등을 겪으셨고 꾸준히 통일 운동을 하시다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전주교도소에 계실 때 면회를 갔지만 뵙지 못했다. 부고를 접하고도 조문을 하지 못해 늘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었다. 구묘역에 묻히신 두 분 앞에서 절을 하고 돌아왔다.

묵직한 돌맹이 하나씩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숙명이다. 1980년대를 산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어느 시대이든 무참한 일을 겪은 이라면 특별한 모습이 아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갑오농민전쟁, 일제강점기, 4·3, 한국전쟁, 4·19, 군부독재의 압제,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참사 등을 우리가 들여다보고 논의하고 품고 공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4년 전 3, 그리고 그로부터 5년 후 일상에 복귀한 지 내년이면 30년이 된다. 잊고 지내다 그날이 오면, 불현듯 마주치면 떠오르는 사람들과 사건들에서 내 삶을 분리할 수 없다.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전문을 이번에 꼼꼼히 읽었다. 과거와 현재는 늘 서로 돕고 서로 구하는 관계임을 강조하는 말로 읽었다. 󰡔소년이 온다󰡕를 읽은 덕분에 그렇게 내게 읽혔다. 오늘 아침, 식은 밥 위에 냉장고에서 꺼낸 콩나물국 두어 국자를 뜨는데, 콩나물 몇 가닥이 걸린다. 구금 장소에서 식판 하나를 놓고 김진수와 밥을 함께 먹으면서 그가 콩나물을 다 먹어버릴까봐 긴장하던 교대 복학생과 그의 차갑고 공허한 두 눈이 생각났다. 우리는 사람이고 사람이어야 한다. 1980년 오월의 광주가 내게 말을 건네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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