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흑역사 -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절반의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지음, 송경원 옮김 / 유노책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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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일본어 원제는 '돈과 종교의 세계사' 지만, 최근 역사 교양서에 유행처럼 '흑역사' 라는 단어를 붙이는 관계로 이런 제목으로 출간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흑역사' 라는 단어는 건담 시리즈에서 나온 신조어인 걸 생각하면 정말 빠르게 우리 생활 속에 자리잡았는데, 이 책도 이 '흑역사' 열풍에 편승하여 제목이 변경된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긴 합니다. 이 책은 주로 돈과 연관된 흑역사만 다루므로, 원제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거든요.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이 책은 종교의 여러 '흑역사' 들 중 특히 돈과 관련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교양서입니다.

유대인들이 어떻게 자본가의 상징이 되었는지,

교회세가 중근세 기독교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일본 불교가 어떻게 덴노와 유력 다이묘와 맞먹는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교와 돈의 흐름을 따라가며 차근차근 설명해줍니다.

 

사실 종교라고 하면 무조건 세속의 일에는 초연해야 하고, 돈을 밝히면 사이비 수준으로 이미지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현실 속에서 종교와 돈의 관계는 쉽게 다루기 힘든 주제긴 합니다.

그렇지만 저자의 이해하기 쉬운 설명과 여러 역사적 사례, 그리고 돈을 밝힌 종교가 역사에 미친 파급력 등을 차근차근 정리하며 읽을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히에이잔의 엔라쿠지 이야기나 일본 사찰의 승병 등 일본 불교의 역사 부분이 제일 흥미로웠습니다. 상황 정치로 조정을 휘어잡았던 시라카와 덴노도 왜 히에이잔은 어찌하지 못했는지, 노부나가가 왜 그렇게 불교를 탄압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는지 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줍니다.

아무래도 저자 입장에서 자국사다 보니 힘이 더 들어갔던 걸까요?

결론적으로 이 책은 종교에 관계없이 '신자' 라면 좀 불편할 수 있는 내용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돈 밝힌다고 소문난 기독교뿐만 아닌,

비교적 청렴한 종교로 알려진 불교, 가톨릭마저 돈과 엮어서 제대로 까내리니요.

종교의 어두운 면만 주로 다루니 저자 자체가 종교를 싫어하나? 라는 의구심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신의 이름으로' 돈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하는, 역사적 진실도 다시 한번 깨우칠 수 있는 책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당연히 순수히 신에 귀의하여 선행을 행하며,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선인들이 훨씬 많겠죠.

그러나 결국 종교라는 것도 인간들이 믿는 것이기에, 그 종교를 활용하여 돈을 챙기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이들에게 종교는 결국 '비즈니스' 였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종교를 활용하여 굴러간 돈들이 나라를 바꾸고, 정세를 바꾸고, 역사를 바꾼 걸 생각하면 이런 돈과 종교의 역사는 결코 어두운 '흑역사' 만은 아닌, 또다른 이면의 '숨겨진 역사'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흑역사에서도 교훈을 얻고,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르침이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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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러시아 - 러시아의 굴곡진 현대사와 독재자의 탄생
대릴 커닝엄 지음, 장선하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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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지탄받고 있는 지도자,

느닷없는 전쟁을 시도하여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식량위기의 암운을 드리운 지도자,

동시에 러시아를 어디로 이끌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지도자.

그가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현 러시아 대통령입니다.

이 책은 그래픽노블의 형식으로 푸틴의 생애는 어떤지, 푸틴이 어떻게 러시아 최고의 권력자가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푸틴이 얼마나 냉혹한 지도자인지 잘 보여줍니다.

책을 읽다 보면, 푸틴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닌 러시아의 혼란상이 만들어낸 복합적인 지도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푸틴은 정치 명문가나 금수저 출신이 아닌, 레닌그라드의 아주 평범한 가정 출신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단순히 KGB를 동경하고 삼보나 좀 할줄 알던 껄렁한 소년이 언제, 어떻게 러시아 중심부까지 진출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간단하지만 임팩트 있게 다가왔습니다.

푸틴의 성공가도는 정석적인 길이라기보단 정보기관을 이용한 '사도'에 가까웠는데, 이는 소련 말기와 러시아 초기에 이르는 혼돈의 정국이 만들어 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소련 체제가 굳건했거나, 새로이 작동하는 러시아가 혼란스럽지 않았다면 푸틴은 그냥 FSB 내의 평범한 행정 직원으로서 커리어를 마칠 수도 있었지만, 소련의 해체와 옐친의 연이은 정책 실패가 푸틴을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려놓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푸틴이 어떻게 언론을 탄압하고, 자신들의 정적을 제거했는지도 간결하면서도 짧게 보여줍니다.

우리에게도 '방사능 홍차' 로 잘 알려져 있는 방사성 독극물 사용은 물론 총격, 방화 등으로 거슬리는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하려는 푸틴의 행적은 현대 지도자라기보단 고대, 중세의 폭군에 더 어울려 보였습니다.

물론 이건 모든 독재자의 공통점이지만, 푸틴이 다스리는 러시아만의 지독한 암살수법이 돋보여서 더욱 섬뜩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서방도 이런 푸틴을 자신들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줄 알고, 또는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방심했습니다.

오바마부터가 푸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트럼프는 아예 푸틴과 유무형의 커넥션이 있다는 설이 거의 기정사실이 되었을 정도이니요. 트럼프의 '러시아 게이트' 에 대해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지만, 적어도 합리적인 의심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푸틴에게 닥쳐온 가장 큰 위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입니다.

본래 푸틴은 3일만에 젤렌스키를 무릎꿇리고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킬 것이라고 상상했지만, 전쟁 개전 4개월이 넘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지원과 국민들의 투지로 열악한 전쟁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푸틴의 20년이 넘는 집권기간 동안 가장 큰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과연 푸틴은 러시아 전체, 아니 세계를 수렁에 빠트린 전쟁에도 불구하고 권좌를 지킬 수 있을까요?

아니면 결국 역사의 물결에 휩쓸려 무대에서 퇴장하게 될까요?

그 대답을 간략하게나마 알려주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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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 전쟁의 기원에서 미래의 전쟁까지, 한 권으로 읽는 전쟁의 세계사
제러미 블랙 지음, 유나영 옮김 / 서해문집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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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아는 역사적 사실에 전쟁사의 엑기스를 더해주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동서 로마의 분열로 대표되는 로마의 쇠퇴기를 우리는 단순히 '제국의 쇠퇴'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이 책은 로마군의 전술, 방진의 변화를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기존의 정복에 유리한 공격적인 진형에서 기동방어를 핵심으로 하는 팔랑크스 대형이 널리 보급되었고, 도시의 요새화를 강화한 것을 보며 더 이상 영토확장에 몰두하는 예전의 로마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군사적 변화가 역사에 미친 영향을 함께 서술합니다.

이러한 로마의 기동방어 전술로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로마군에 게르만족, 슬라브족 등의 이민족 용병들을 들여놓게 되었고, 결국 로마군은 기존의 시민군 성격에서 벗어나 이민족의 입김에 의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군대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로마 자체가 게르만족에게 유린당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다는, '맥락이 있는' 설명이 일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전술이 어떻다, 전략이 어떻다를 넘어 이런 군사적 변화가 어떻게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까지 알아보는 겁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책 뒷면에도 분명히 '서구 중심 역사 서술에서 벗어났다' 라는 말이 있음에도 이 책은 서구 중심 역사 서술 경향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 책이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전쟁사적 변화가 있는 중국사 파트는 고대 춘추전국부터 송나라까지 한번에 묶어서 짧게 넘어간 반면, 같은 시기의 서양 전쟁사는 고대 그리스, 로마 초기와 후기, 봉건시대, 십자군 등등까지 다 파트를 나눠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기존의 전쟁사 책이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대륙의 '전쟁사' 를 다룬 점은 흥미롭긴 하나, 앞서 말한 '서구 중심 서술' 에서 벗어났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끼워넣었다는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작가는 충분히 서구 중심에서 벗어났다고 느껴도, 정작 동양권 독자인 우리가 보기엔 이것도 '충분히 서구적' 이라고 봅니다.

요즘 역사책에서 '서구 중심 서술에서 벗어났다' 라는 말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경향이 매우 많은데, 그런 설명이 있다고 정말 균형있는 책인지는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옥의 티가 있긴 하지만 딱히 '서구 중심' 에 신경쓰지 않는 분들이라면 한번 가볍게 읽어볼만한 책이긴 합니다. 당연히 한 권의 분량이라 전쟁사의 모든 곳을 돌아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저자의 경력이 경력이니만큼 핵심은 전부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입니다.

전 세계가 전쟁 때문에 시끄러운 지금, 전쟁 공부 한번 해보는것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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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의 뿌리, 전문 학교
김자중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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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국숭세단...'
고3이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인서울 대학의 소위 서열표입니다. 학생들은 이 대학 순위에 목숨을 걸고, 하나라도 더 대학 이름을 높이려고 온갖 애를 쓰며,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재수, N수까지 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도대체 이 학벌주의의 근본은 어디서 온 걸까요?

오늘 다룰 책, '한국 대학의 뿌리, 전문학교'는 이러한 학벌주의가 이미 일제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최정점에 있는 경성제대 - 서울대의 모습은 건재하고,
그 뒤를 바로 이었던 보성전문, 연희전문도 지금도 고려대, 연세대라는 이름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소위 유명한 인서울 대학 반열에 든다는 이화여대, 성균관대 등도 그 시초는 전문학교들에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이외에도 일제 때와 지금의 학벌주의는 닮은 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예시로 당시도 전문학교들의 대다수는 경성, 즉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서울 대학만이 선호되는 지금의 세태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전문학교라도 경성의학전문학교, 경성법학전문학교 등의 관립 전문학교들의 성적이 사립인 보성전문, 연희전문보다 높은 편이고 경쟁률, 선호도에도 차이가 있었는데, 이 역시 국립 서울대가 사립 고려대, 연세대를 앞지른 것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 관립 전문학교들은 미군정 시기에 경성제대와 합쳐져서 국립 서울대학교를 형성했죠.

이외에도 막대한 학비부담이 들었던 전문학교 학생들의 고충과 이를 보조해 주는 장학회,
그리고 총력전 시기에 학업을 포기하고 군대로 끌려가거나 군사교육을 받아야 했던 전문학교생들의 비애도 담고 있습니다.
일제 시기 전문학교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목적이면 이만한 책도 없으리라 봅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이 책은 일제시대의 인서울 집중 학벌 체계가 지금까지 내려왔다고 전하고 있는데, 정작 60-7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등의 지거국 대학교들의 성적들이 유수 인서울 대학들보다 높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SKY' 가 학벌의 정점에 있는 건 일제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그 이하의 대학서열체계를 설명하려면 일제시대의 경험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이것은 산업화 이후에 급속히 진행된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 소외의 결과로 해석하는 게 옳다고 보는데, 이에 대해선 추가 연구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일제하의 몇 안되는 고등교육기관, 전문학교의 이모저모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쪽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볼만 할 것입니다.
동시에 언제부터 우리 한국인들이 대학에 대한 갈망을 키워왔는지, 전문학교가 어떻게 대한민국 교육사에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학벌사회의 근원을 알고 싶으신 분들에게 이 책을 자신있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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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 : 재앙의 정치학 - 전 지구적 재앙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Philos 시리즈 8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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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Doom),

이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뜻하지 아니하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불행한 사고' 라는 뜻이 나옵니다. 인류의 오랜 역사는 여러가지 재앙과 함께했으며, 인류의 역사 자체가 이런 여러가지 재앙, 재난에 인류가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중심으로 쓰여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유명한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역시 이런 '재앙의 역사' 에 주목해 본서' 둠: 재앙의 정치학' 을 출간했습니다. 저자는 일단 재앙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인류 역사상의 여러 사건들을 분류하는 한 가지 범주를 제시합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사건인 '회색 코뿔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사건인 '검은 백조', 

그리고 예측불가능성과 더불어 극단적일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가져오는 '드래곤 킹' 이 그것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흔히 '재앙' 이라고 부르는 정도의 사건은 최소한 '검은 백조', 심하면 '드래곤 킹'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줍니다. 

물론 각 재앙마다 죽은 사람의 수나 피해는 각각 다르지만, 어쨌든 우리들을 슬픔으로 몰아넣는다는 본질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재난, 큰 피해' 라는 뜻의 한자가 두 개나 쓰인 '재앙(災殃)' 이라는 단어로 불리는 것이겠지요.

 

또한 저자는 여러 재앙들을 다루며 이 재앙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과연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지, 이 재앙들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설명하는 재앙들은 지진, 화산 폭발, 기근 등의 자연적인 이유로 발생한 천재(天災)들도 있고, 비행기 사고, 원자력 발전소 피폭사고,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 같은 문명의 이기들을 잘못 다뤄서 생긴 인재(人災)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단 자연의 변덕으로 인해 발생하는 천재라 할지라도, 이후에 관련자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피해 규모가 천양지차로 달라지는 걸 생각하면 결국 재앙을 다루는 건 우리들의 몫이겠지요.

 

그리고 이 책에선 재앙을 마주하는 인류의 특이한 사고방식 하나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가져오는 재앙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는 그 재앙의 물결이 닥쳐오지 않는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그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나만 아니면 돼!' 같은 복불복식의 사고방식인 겁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1차대전 당시 영국군 참호에서 유행한 '지옥의 종소리가 땡땡땡' 같은 노래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호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기관총 사격과 전염병으로 죽어가도 자신에겐 그 지옥의 종소리가 절대 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왠걸요? 재앙의 물결은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왔습니다. 그런 근거없는 자신감과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죠. 솔직히 이번 코로나의 물결 속에서도 '에이, 설마 내가 확진자가 되겠어?' 라는 생각을 해본 사람들이 적지만은 않을 건데, 그런 사고방식이 상당히 위험함을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다만 책 자체에서 아쉬운 부분도 몇 가지 있었습니다.

먼저 이 책은 과도할 정도로 특정 재난, 현재 진행중인 코로나19에만 집중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큰 재앙이 코로나니 이런 서술도 마냥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코로나가 어느정도 진정되고 우리 모두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때 이 책을 다시 살펴봤을 때도 과연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저자가 코로나19에만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다른 재앙에 대해선 설명이 좀 부실해보이는 경향도 없지 않았고, 또 코로나와 연관되는 역사적인 전염병 쪽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춘 느낌도 들었습니다. 저는 재앙 자체에 대한 폭넓은 설명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로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너무 코로나만 신경쓴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책 후반부에는 뜬금없이 미중 패권경쟁에 관한 내용도 들어있었는데, 이는 책의 본 주제와 연관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앙에 대처하는 인류의 방식을 논하는 와중에 갑자기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를 통해 어떻게 대치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상당히 고개가 갸우뚱했습니다. 과연 이 부분은 정말 필요했을까 하는 의심이 상당히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최근의 코로나19 상황으로 '재앙' 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름의 이정표가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책 자체가 상당히 두껍기도 하고, 저도 읽는 데 상당한 수고를 들여야 했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필력이나 번역 자체도 나름 매끄러운 편이기도 하고요.

재앙에 대한 여러 내용을 톺아봄으로써 미래의 재앙에 대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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