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 : 재앙의 정치학 - 전 지구적 재앙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Philos 시리즈 8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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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Doom),

이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뜻하지 아니하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불행한 사고' 라는 뜻이 나옵니다. 인류의 오랜 역사는 여러가지 재앙과 함께했으며, 인류의 역사 자체가 이런 여러가지 재앙, 재난에 인류가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중심으로 쓰여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유명한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역시 이런 '재앙의 역사' 에 주목해 본서' 둠: 재앙의 정치학' 을 출간했습니다. 저자는 일단 재앙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인류 역사상의 여러 사건들을 분류하는 한 가지 범주를 제시합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사건인 '회색 코뿔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사건인 '검은 백조', 

그리고 예측불가능성과 더불어 극단적일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가져오는 '드래곤 킹' 이 그것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흔히 '재앙' 이라고 부르는 정도의 사건은 최소한 '검은 백조', 심하면 '드래곤 킹'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줍니다. 

물론 각 재앙마다 죽은 사람의 수나 피해는 각각 다르지만, 어쨌든 우리들을 슬픔으로 몰아넣는다는 본질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재난, 큰 피해' 라는 뜻의 한자가 두 개나 쓰인 '재앙(災殃)' 이라는 단어로 불리는 것이겠지요.

 

또한 저자는 여러 재앙들을 다루며 이 재앙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과연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지, 이 재앙들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설명하는 재앙들은 지진, 화산 폭발, 기근 등의 자연적인 이유로 발생한 천재(天災)들도 있고, 비행기 사고, 원자력 발전소 피폭사고,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 같은 문명의 이기들을 잘못 다뤄서 생긴 인재(人災)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단 자연의 변덕으로 인해 발생하는 천재라 할지라도, 이후에 관련자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피해 규모가 천양지차로 달라지는 걸 생각하면 결국 재앙을 다루는 건 우리들의 몫이겠지요.

 

그리고 이 책에선 재앙을 마주하는 인류의 특이한 사고방식 하나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가져오는 재앙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는 그 재앙의 물결이 닥쳐오지 않는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그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나만 아니면 돼!' 같은 복불복식의 사고방식인 겁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1차대전 당시 영국군 참호에서 유행한 '지옥의 종소리가 땡땡땡' 같은 노래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호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기관총 사격과 전염병으로 죽어가도 자신에겐 그 지옥의 종소리가 절대 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왠걸요? 재앙의 물결은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왔습니다. 그런 근거없는 자신감과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죠. 솔직히 이번 코로나의 물결 속에서도 '에이, 설마 내가 확진자가 되겠어?' 라는 생각을 해본 사람들이 적지만은 않을 건데, 그런 사고방식이 상당히 위험함을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다만 책 자체에서 아쉬운 부분도 몇 가지 있었습니다.

먼저 이 책은 과도할 정도로 특정 재난, 현재 진행중인 코로나19에만 집중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큰 재앙이 코로나니 이런 서술도 마냥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코로나가 어느정도 진정되고 우리 모두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때 이 책을 다시 살펴봤을 때도 과연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저자가 코로나19에만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다른 재앙에 대해선 설명이 좀 부실해보이는 경향도 없지 않았고, 또 코로나와 연관되는 역사적인 전염병 쪽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춘 느낌도 들었습니다. 저는 재앙 자체에 대한 폭넓은 설명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로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너무 코로나만 신경쓴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책 후반부에는 뜬금없이 미중 패권경쟁에 관한 내용도 들어있었는데, 이는 책의 본 주제와 연관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앙에 대처하는 인류의 방식을 논하는 와중에 갑자기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를 통해 어떻게 대치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상당히 고개가 갸우뚱했습니다. 과연 이 부분은 정말 필요했을까 하는 의심이 상당히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최근의 코로나19 상황으로 '재앙' 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름의 이정표가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책 자체가 상당히 두껍기도 하고, 저도 읽는 데 상당한 수고를 들여야 했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필력이나 번역 자체도 나름 매끄러운 편이기도 하고요.

재앙에 대한 여러 내용을 톺아봄으로써 미래의 재앙에 대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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