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계절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페르난다 멜초르의 <태풍의 계절>은 너무나도 독한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은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의 경험 때문인지 서술자의 시점은 더없이 리얼하고 냉철했다. 수로에서 마녀하고 불리웠던 사람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와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펼쳐진다. <태풍의 계절>은 여느 작품과 다른 강렬함을 가져온다.

다섯은 일제히 마른 풀밭 위를 기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한 몸처럼 바짝 붙어서 움직이던 그들 주변으로 파리 떼가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그건 갈대와 길에서 바람에 날려 온 비닐봉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죽은 이의 부패한 얼굴이었다. 한 무더기의 검은 뱀들 속에서 거무죽죽한 빛깔의 가면처럼 꿈틀거리는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p13) 소설의 시작처럼 인간이지만 인간다움을 누리지 못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설명할 수 없는 무거움으로 아팠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나 운명은 선택할 수 없다. 신의 장난인지 형벌인지 이 작품 속 사람들은 비참한 운명을 거부하지 못한 채 그 안에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너무나도 야생적인 밑바닥 삶을 사는 그들에게 이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근친상간, 동성애, 폭행, 폭력, 마약이 난무하는 사회는 아수라 그 자체이다. ‘바로 그 순간, 축축한 습기를 머금은 돌풍이 갑자기 트럭 유리창에 몰아쳤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한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자 풀포기들은 모두 바닥에 납작 엎드렸고, 저 멀리 하늘에서는 거대한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더니 번개가 소리없이 근처 언덕을 내리쳤다. 거기 서 있던 말라붙은 나무는 부서지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쪼개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재로 변했다.’(p148) 마녀라고 불렸던 사람과 루이스 미겔, 그리고 브란도 그들이 서로 엮이지 않았으면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이성을 가진 어른들이 있었다면 노르마나 예세니아의 삶은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모든 동화는 그래서 왕자님과 공주님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만 실제 인생에 해피엔딩은 없다. 가진 것이 많건 그렇지 않건 지위가 높건 그렇지 않건 삶은 어느 정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도 그 안에 귀금속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보물은 없다. 단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가슴을 찢는 고통만이 어른거리고 있을 뿐이다.’(p349) 라는 말을 한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인데 우리는 왜 사는가. 의미 때문이다. 높은 산에 오르는 것도 등반 그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숨차고 발이 부르트는 고생을 자처하며 산에 오른다.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둘 때 그 과정이 힘들어도 고통을 견딜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힘은 의미에 있다. 우리는 의미에서 살아갈 힘을 얻기에 무엇에 의미, 즉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가치조차 찾을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인물들이 모두 엇나가는 선택을 하고 그 혼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고난의 삶이 이제 다 끝났으니 어둠도 곧 사라질 거요. 그러니 더 이상 두려워할 게 뭐 있겠소.’(p355) 무덤을 만드는 노인의 말처럼 그들의 삶이 끝나야 비로소 드리워진 그 어둠이 사라지는 것이다. ... 마지막 장을 무겁게 덮은 책 <태풍의 계절>은 많은 생각을 남겼다.

 

이제는 비도 당신을 괴롭힐 수 없을 거고, 어둠도 영영 계속되지는 않을 거요. 보셨소? 저 멀리서 반짝이는 빛, 마치 별처럼 보이는 더 작은 빛 말이요. 여러분이 가야 할 곳은 바로 저기요. 그가 그들에게 설명했다. 저기가 바로 이 구덩이에서 빠져나가는 길이오’(p3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