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은 사양할게요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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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하자마자 퇴장하고 싶은 무대에 선 기분이다.’(p7)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 놓였을 때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은 경험을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서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은 정말... 그런데 그런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소설의 시작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연극배우였던 자신의 꿈을 버리고 현실로 걸어 들어간 신입사원 연희, 배우라는 꿈을 따라가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삶을 포기하고 마는 장미, 그리고 연극도 현실도 버거운 소연언니 이들이 겪는 이야기는 젊은 시절의 꿈과 갈등의 순간을 생각나게 한다.

나도 신입시절 신입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었다. 그저 정신없게 낯선 업무에 쫒기다 보니 후루룩 시간이 흘렀다. 그 당시에는 분명히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일이었는데 문제는 발생했고, 내가 자란 곳과는 너무나 다른 그 문화 속에서 선택의 순간마다 늘 갈등했다.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했고 사수에게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런 날이 있다. 온 세상을 떠도는 불운이 나를 향해 집중된 것만 같은 날, 내가 우주의 먼지보다 못한 존재로 느껴지는 날, 나는 그런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며 발버둥 치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결국 엉망진창인 나는 맞닥뜨려야 하는 날.’(p93) 세상의 모든 머피가 나에게 모여 있는 것 같은 그런 날들이 나도 꽤 많았다. 모월 모일 모시로 만나자고 약속이나 한 듯이 세상의 모든 머피들이 다양한 얼굴로 내 앞에 오로록 앉아 있던 그날들이 생각난다.

지금의 나 같으면 아마 도망을 가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당시에는 나는 꽤나 당돌했던 것 같다. 지고 싶지 않았고 실패하고 싶지 않았기에 당돌할 수 있었나 보다. 나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것들에게 이기고 싶어 그 순간에 더 덤벼들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감정적이었지만 점점 체계적이고 이성적으로 지능적으로 ...:)

회 맛을 안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아도 필요하다면 삼킬 수 있는 이가 어른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만 곁에 두고 싫은 사람은 멀리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어른 세계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싫든 좋든 한 팀으로 묶이면 서로의 동승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간밤에 한 침대에서 알몸을 보았던 사이라 해도, 다음 날 각자의 옷을 입은 뒤에는 그 옷에 어울리는 관계가 되는 것이 어른이었다.’(p44) 이 글귀를 보면 지금의 나도 아직 미숙한 어른이다. 좋고 싫은 것이 자꾸 보이니.... 나는 그저 어른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품 속 장미는 이런 말을 한다. ‘나도 요즘 잘 모르겠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참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건지... 좋은 건 좋은 거고, 힘든 건 힘든 건데. 좋아하는 마음이 아무리 커도 고통스러운 상황이 해결되거나 나아지는 건 아니잖아. 이러다가 무대를 좋아하는 마음까지 다 소진해버리면 나중에 뭐가 남는 거지? 뭔가를 좋아하고 갈망하는 마음이 때로는 형벌같아. 나는 벌을 받기 위해 이걸 하고 있는 게 아닌데.’(p306) 이것은 나름의 경험이 많은 나도 아직 고민하는 문제이고 젊은이들은 더 깊게 고민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 충분한 생활이 되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다른 상황을 감수하고 그것을 이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자신에게 현실이 버겁겠지만 자신의 꿈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 밤 커튼콜의 시간이 다가오고 날이 밝으면 또 다른 공연은 계속된다. 그 공연은 어제의 무대보다는 더 나아질 것이고 보다 잘해내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나도 요즘 잘 모르겠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참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건지... 좋은 건 좋은 거고, 힘든 건 힘든 건데. 좋아하는 마음이 아무리 커도 고통스러운 상황이 해결되거나 나아지는 건 아니잖아. 이러다가 무대를 좋아하는 마음까지 다 소진해버리면 나중에 뭐가 남는 거지? 뭔가를 좋아하고 갈망하는 마음이 때로는 형벌같아. 나는 벌을 받기 위해 이걸 하고 있는 게 아닌데.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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