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 ㅣ HiP 시리즈
정보라 지음 / 텍스티(TXTY)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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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귀야옹이라는 이름이 귀엽다. 그래서 마음이 이끌렸던 책이었다. 귀야옹? 귀여운 고양이 이야기일까 하고 가볍게 펼쳤던 책에는, 정보라 작가님의 단단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세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내 이름을 불러줘」
혁명이 끝났다. 여자는 성과 이름을 잃었고, 손목 안쪽에 박힌 작은 칩과 그 옆에 새겨진 초록색 여섯 자리 숫자로 불리게 되었다. 내 이름을 불러줘. 처형된 시신이 속삭이던 그 소리를, 자신이 낳은 아이를 국가에 빼앗긴 뒤 다시 듣게 된다.

인권이 사라진 끔찍한 세계였다. 나는 다정하게 불러주는 이름 대신 딱딱한 숫자로 불리게 되는 날이 온다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여자에게는 이름이 있었고, 그 이름을 불러주는 가족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갓 태어난 아기마저 빼앗기는 세계에서, 여자가 작게나마 불러보았던 이름은 자신이 낳은 아이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소망이자, 자신 또한 살아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려는 발버둥처럼 느껴졌다.

「바늘 자국」
20년마다 요물에게 가장 아름답고 순결한 처녀를 공물로 바친다. 죽기 위해 살아 있는 소녀에게 다가오는 것은 그의 몸종뿐이었으니, 두 소녀는 서로에게 유일했다. “나는 요물의 것도, 저자들의 것도 아닌, 네 사람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건 제물로 바쳐졌던 소녀였다. 그는 제 연인의 사람으로서, 제 연인을 위해 살고자 했다.

나는 사랑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원래라면 죽었을 목숨, 제 연인을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처절하게 느껴진다. 작가님이 담담하게 써 내려간 문장은 그들의 사랑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고, 읽는 내 마음도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왜 제목이 ‘바늘 자국’인지를 깨닫는 순간에는 모두가 바늘에 찔리는 듯한 아픔을 느낄 것이다.

「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
귀야옹 씨는 길고양이다. 여섯 마리의 새끼를 잃고 지쳐 길에 쓰러진 그는 한 여자의 집에 입양되어 안정되고 평온하고 쾌적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집에 찾아온 한 남자의 ‘냄새’가 귀야옹 씨의 일상을 비집고 들어온다.

사람들의 스마트폰에는 알려달라고 하면 무엇이든 알려주는 친절한 인공지능 어플이 깔려 있다. 이제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상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인간을 학습한다. 하지만 인간은 인공지능처럼 프로그래밍된 대로 행동하지 않는 존재이다. “인간을 지배하는 건 감정이야.” 이 소설 속 인공지능이 학습한 ‘인간’은 섬뜩한 인상을 준다. 귀야옹 씨의 상실이 인간과, 그 인간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은 내 마음을 오래도록 무겁게 만든다.

정보라 작가님은 등장인물들의 삶을 빌려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작가님이 이야기 속에 남겨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품게 된다. 짧은 이야기지만 여운만큼은 길게 남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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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가 XXX였던 건에 대하여
정해연 외 지음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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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대체 XXX가 뭘까?

내가 XXX였던 건에 대해서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애가 XXX였던 건에 대해서는 모두가 궁금해할 것이다.

‘최애’니까.

우리는 최애에 대해 늘 알고 싶어 한다.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아주 사소한 것조차 궁금해지는 존재가 최애이지 않나.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최애의 비밀을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최애와 나, 둘만 아는 비밀 말이다.

「아이돌 그룹 러비쥬 살인사건」 정해연
아이돌 그룹 러비쥬는 음악 방송 1위를 기념해 여행을 떠난다. 기쁨도 잠시, 다음 날 그룹의 리더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밤새 펜션에 드나든 사람이 없었기에 살인자는 함께 여행을 온 멤버들 가운데 있다.
『홍학의 자리』를 집필한 정해연 작가님답게 미스터리의 색채가 짙게 묻어난다. 반전을 좋아하는 작가님이라, 제발 제목의 XXX에 살인자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며 읽었다. 짧은 분량임에도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강렬한 시작이었다.

「엔딩 요정의 비밀」 김아직
이번에는 아이돌과 SF가 만났다. 팀을 알리기 위해 출연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촬영지가 외계 행성이다. 열심히 이리 뛰고 저리 뛰어보지만 좀처럼 분량은 확보되지 않고, PD가 그리는 그림은 '악마의 편집'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다. 네 편 가운데 가장 현실적으로 아이돌의 고민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백 명이 넘는 연습생이 경쟁하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무대에 섰지만, 이름을 남긴 사람은 소수였다. 하지만 이 소설 속 굳세고 당찬 아이돌 선유만큼은 내게 확실히 이름을 남겼다.

「PMC 아이돌」 정명섭
‘군필돌’이라는 콘셉트로 데뷔하게 된 아이돌 그룹 PMC. 민간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의 약자를 그룹 이름으로 지었다는 데에서 콘셉트 참 지독하다 느껴지는데, 밀리터리 콘셉트를 확고히 하기 위해 아프리카까지 건너가 뮤직비디오를 촬영한단다. 그런데 현지 사람들이 오해를 한 모양이다. 그들은 평범한 아이돌일 뿐인데. 상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는지 집중했던 소설이다. 대한민국 남자 아이돌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군 복무 소식에 눈물 흘리던 친구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눈물을 마시는 요괴」 박지선
무대 위에서는 반짝반짝 빛나는 걸그룹의 메인 보컬이지만, 무대 밖에서는 인간 사이에 숨어든 요괴를 찾아 퇴마하는 퇴마객 아이돌의 이야기다. 무려 투잡을 뛰는데, 아이돌도 퇴마객도 무엇 하나 대충 하는 법이 없다. 네 편 가운데 가장 방대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단군신화를 차용한 설정이 흥미롭다. XXXX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도 바로 이 이야기일 것이다. 내 최애가 사실 퇴마객이었다니. 이렇게 기특할 수가 있나!

소설은 우리에게 최애의 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는 화면 속에서 반짝이는 최애의 모습만을 알고 있다. 화면 뒤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그들이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을지 상상해 본 적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XXX는 하나의 대답이 되어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당신이 생각했던 XXX는 무엇이었는가.

이 책은 ‘최애’를 향한 우리의 마음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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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의 죽음에 관하여 ㅣ 매드앤미러 1
아밀.김종일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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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행복한 신혼, 죽음에서 돌아온 남편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문장 하나로 시작한, 두 가지의 이야기.

아밀 작가님의 「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것」과 김종일 작가님의 「해마」는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한 문장 뒤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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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것」

“혹시 알아, 네 남편, 네가 아는 사람이랑은 다른 사람일지.”

은진과 동우는 결혼했다. 행복한 신혼을 보내던 어느 날, 은진은 동우가 친구와 통화하며 자신을 모욕하는 말을 듣게 된다. 그를 추궁하던 은진은 결국 동우를 밀어 죽게 만들고 만다.

‘네 남편이 살아나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죽게 된 이유도 기억하지 못할 게다. 그것을 절대 일깨우면 안 돼. 그 기억을 돌이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죽음에서 돌아온 남편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죽게 된 이유도 기억하지 못한다. 오직 은진만이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죽게 된 이유를 알고 있다. 게다가 동우는 은진에게만 머리에 피를 흘리는 모습으로 보인다. 남편이 죽음에서 돌아왔지만, 은진은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못생긴 거 알지, 누가 몰라.”

남편이 죽기 전에 남긴 말이 은진을 찔러댄다. 예쁘지 않았다. 거울 속의 나는 전혀 예쁘지 않았다. 그저 예뻐 보이려고 최선을 다한 못생긴 여자가 서 있을 뿐이었다. 미학을 연구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만의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은진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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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

“지금 작가님 남편…… 진짜 남편이라 믿으세요?”

비 오는 날 차 사고를 당한 이후, 시광과 회영은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돌아온다. 그때의 충격 때문일까, 회영은 자꾸만 그날의 악몽을 꾼다.

그러던 어느 날, 의미심장한 말로 자신을 불러낸 여자는 회영에게 남편에 대한 의심을 심어준다.

냉혹하고 이기적인 면모가 점점 두드러지는 남편.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자 이전에는 지나쳤던 그의 폭력성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호스트를 찾았어.’

‘해마’라고 불리는 기생체가 남편을 숙주로 삼았음을 확신하게 되고, 이를 없애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남편의 낯선 모습이 정말 그에게 해마가 기생하고 있어서일까.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모습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해마의 존재를 믿는 편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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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모든 구성이 독특하다.

매드앤미러 시리즈의 줄임말인 ‘매미’가 소설 속에 등장한다. 단순히 시리즈의 줄임말이라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 소설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 그 의미를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또한 각각의 작품에서 서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앞뒤 페이지를 번갈아 넘기며 내가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 역시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제일이다.

사랑하는 사람, 인생을 함께 걸어가겠다고 약속한 사람을 의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알고 있던 사람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의심.

한 문장으로 시작했지만 전혀 다른 색을 가진 두 이야기는 인간의 양면성을 마주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하며 시작되는 불안, 그 의심이 사실인 것만 같은 불쾌함, 그리고 매드앤미러 시리즈만의 개성까지 더해져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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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메가처치 - 2026 일본 서점대상 1위
아사이 료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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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가제본)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ー다들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거예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강렬히 좋아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이런 행위를 ‘덕질’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또 누군가는 연예인을 좋아하며, 다른 누군가는 스포츠를 좋아한다. 우리의 퍽퍽한 일상은 타인과의 연결을 희미하게 만든다. 하지만 덕질은 좋아하는 대상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공동체가 되며, 세상과 쉽게 연결해 주기도 한다.

아사이 료가 『인 더 메가처치』 에서 풀어내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외롭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 열등감을 느끼고 인정받으려 하는 마음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누구도 들키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그런 내면을 아주 솔직하게 드러내어 우리가 결국 원하는, ‘연결’이라는 주제를 마주하게 한다.

구보타 요시히코는 아내와 이혼한 뒤 혼자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딸과 영상 통화를 하며 인연을 이어가지만, 이 관계는 딸이 성인이 되면 끝날 것이다. 그는 이 연결고리를 놓치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상대가 누구든, 이 이상 타인과의 연결 고리가 줄어드는 게 싫을 뿐이다.’

변화하는 음악 시장 속에서 그가 좋아하는 팝송이 제이팝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 가는 모습은, 그가 세상과의 연결 고리가 희미해지는 모습을 담아낸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무토 스미카였다.

’주변의 시선이 사라지자마자, 예쁜 말로는 더 이상 속일 수 없는 감정들이 내 조종간을 움켜쥐고 만다.‘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자존감이 낮은 인물이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대학 동기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다. 위로받고 싶을 때는 자신보다 시야가 좁은 친구를 찾는 그의 모습은 다소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연결 고리는 툭, 치면 끊어질 것만 같다.

나는 무토 스미카의 변화가 가장 기대된다. 그가 누군가와 진심으로 연결되는 순간이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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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사 -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최윤석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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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동경이었다.

명관은 축구를 좋아한다. 신혼여행에서조차 몰래 축구 경기를 볼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는 그는 그중에서도 강민의 넘버원 팬이라고 자칭한다. 철딱서니 없을 정도로 축구에 열광하지만, 그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가 있다. 아직 솜털이 남아 있는 밤톨 같은 머리, 심장이 좋지 않지만 언젠가는 강민처럼 그라운드를 누비게 될 아들이었다. 아들의 생일을 맞아 찾은 축구 경기장에서 강민의 분풀이 공에 아들이 맞아 코피를 흘리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이후 명관은 강민의 곁에서 그의 여자 문제를 비롯하여 자질구레한 뒤처리를 도맡게 된다. 처음에는 그와 함께 일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러나 드넓은 한남동 저택을 드나들며, 강민의 화려한 삶을 가까이에서 볼수록 돈도 명예도 없는 초라한 자신을 마주한다.

그러던 어느 날, 경기 중 명관은 강민을 구하게 되고 사람들은 그를 의인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질수록 명관의 마음속에 욕심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도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다.’
한 번뿐인 인생, 더는 누군가의 이정표로 살기 싫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자신도 ‘최강민’처럼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명관은 자신의 삶을 NPC로 비유하고는 했다. 그런데 자신에게도 주인공이 될 기회가 찾아왔다.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설렘을 안고 스타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생각보다 일은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자신의 추악한 면을 알고 있는 강민은 명관의 입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명관은 결국 추락하고 만다.

“우리 복수라는 거창한 말, 하지 말아요. 그냥 받은 만큼 돌려주자고요. 누군가를 끌어올리는 건 어려워도, 끌어내리기는 쉬우니까요.”

동경은 증오가 되었다.

“저건 ‘파우사’라는 거야.”
“파우사?”
“응, 파우사. 스페인어로 멈춘다는 뜻인데, 바로 패스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상대가 더 끌려오게 만드는 전술이야. 그럼 수비라인이 조금씩 벌어지거든. 그 틈으로 훨씬 위험한 패스를 넣는 거지.”

이 소설의 제목인 ‘파우사’는 축구 전술이다. 소설은 이 전술을 제목으로 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챕터 제목 또한 전반전, 후반전, 동점골처럼 실제 경기의 흐름을 따라가듯 이어진다.

서로 골을 내어주지 않기 위해 견제하고, 빈틈을 노리며,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는 모습은 경기와 닮아 있다. 경기를 뛰는 건 그들인데, 읽는 내가 숨 쉴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잔디가 깔린 그라운드가 아니라 진흙탕이다. 심판의 레드카드조차 무시한 채 서로를 끌어내리려는 두 사람의 싸움은 처절하고, 저열하며, 때로는 찌질하기까지 하다.

명관은 결코 정의로운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우상이었던 강민에게 밀려 절벽으로 추락했던 명관이 다시 절벽 위로 기어오르는 모습은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파우사』는 휘슬이 울릴 때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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