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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 벌레 이야기
이청준 지음, 최규석 그림 / 열림원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내용 ★★★★★
편집 ★★
※리뷰는 제 개인적 견해이니 단순 참고용으로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제목 - 밀양 - 원제『벌레 이야기』
작가 - 이청준삽화 - 최규석
분류 - 소설
출판 - 열림원
정가 - 6,800원
내용 - 어느날 유괴 되어버린 아이, 그런 아이를 찾고자 자신을 강제적으로 일으켜세운 어머니. 싸늘하게 발견된 아이의 시신, 이내 잡혀버린 범인. 복수심과 용서, 그 가운데에서 헤매는 어머니를 방해하는 신앙이란... 신 앞에서 무엇이 옳은 것일까?
좋은 점 - 신앙에 대한 양면성을 신랄하게 보여줌
심플하고 묵묵한 서술로 그 막막한 상황을 표현했음
아쉬운 점 - 쓸데없이 값을 올린 삽화의 양
쓸데없이 값을 올린 종이의 질
여담: 이런 책들이 일본의 문고판처럼 나와야 많은 이들이 정신적 양식을 쌓아올릴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파란 글씨는 스포일러성 글이니 적절히 판단하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만화가 지망생이다. 평소에 즐기는 장르로는 현실을 지극히 파헤쳐서 우리들의 삶을 반성하게 하는 것들을 꼽을 수 있다. 그런 필자의 편협한 독서경향을 깨보고자 이번에는 사람사이의 정,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구해보고자 서점에서 눈을 굴리고 있다가, 밀양을 발견했다. 평소 문화생활을 그리 많이 하지 않는 방구석폐인 아닌 방구석폐인인지라 밀양이 무슨 영화인지도 몰랐고, 포스터나 간단한 스틸컷들만 보고 인간의 정을 표현한, 사랑이야기일줄알고 이 책을 골랐다. 원제가 벌레 이야기라고 봤으나 별 이상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책을 집어 계산을 했고 귀가하며 읽어나갔다. "이거... 살인사건속 사람들의 모습을 서술하는 소설이었잖아...?" 그렇다. 필자는 뭘 골라도 이런 것만 고르나보다. 유괴 및 살인사건 속 피해자의 어머니의 갈등과 파멸을 그린 소설, 밀양 - 원제 『벌레이야기』를 그렇게 접하게 되었다.
서문에서 작가는 본 이야기가 실화에 근거해 만들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한 유괴살해범이 사형집행을 앞두고 인터뷰 중 자기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화로운 마음으로 떠나고, 자신에게 고통받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겠노라고 말했다는 사건. 그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본 소설은 유괴와 살인사건을 다루지만 그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그 속에서 고통받은 개인의 모습을 담아내고있다. 그런고로 범죄소설이면서 범죄소설이 아닌 그런 모습을 보이고있다. 굳이 말하자면 비극의 휴먼스토리라 할 수 있겠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라면 그리 좋아하지 않을 형태를 이루고있지만, 필자에게 본 소설은 정말 공감이 가는 작품이었다. 본 소설에서 모든 범죄적인 사건들은 증거와 알리바이를 정확히 나타내지 않고 뉴스가 흘러가듯 어렴풋이 보여주면서 해결된다. 그후 살해당한 아이의 아버지의 시점에서 아내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매우 묵묵해 되레 참담한 기분이 독자에게 와닿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런 있을 수 없지만 생겨버린 묘한 공감대 속에서 진짜 갈등은 시작된다.
아이가 학교에서 나와 학원에 가는 중 실종되어버린 후, 화자의 아내(이하 엄마)는 충격에 빠졌으나 이내 아이를 찾기 위해 자신의 일까지 접어두고 아이를 찾을 방도를 모색하며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그러나 이내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고 그 용의자가 나타나게 된다. 엄마는 또다시 용의자에의 복수심과 분노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온갖 수단을 강구한다. 그런 중 용의자가 범인으로 확정되면서 의도치 않은 법적인 보호를 받게 된다. 복수의 대상을 잃은 엄마는 자리에 그대로 눕게 된다. 그런 때에
이웃에 사는 김 집사가 찾아와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는 그저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엄마를 일으켜 세워준다. 이제는 아이의 넋을 위해 자신을 일으킨 엄마는 끝없는 기도 속에서 용서의 마음을 찾는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마음에 대한 증거를 찾고자 범인에게 찾아가 용서를 하려한다. 하지만 범인은 이미 신앞에 용서를 받았고, 그 누구보다 평안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이미 범인은 용서받았고, 그로인해 용서할 수 없게 된 엄마는 다시 목적을 잃고 좌절감과 배신감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신과 인간, 신앙과 인간사에 대한 애절한 절규를 내뱉는다.
그렇게 다시금 신과 멀어진 엄마는 범인의 사형집행일에 라디오의 인터뷰를 듣게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므로써 커다란 짐에서 벗어나게된다.
"이제 와서 제가 왜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제 영혼은 이미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거두어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영혼뿐 아니라 네 육신의 일부는 이 땅에서 다시 생명을 얻어 태어날 것입니다. 저는 저의 눈과 신장을 살아 있는 형제들에게 맡기고 가니까요."
"다만 한 가지 여망이 있다면 저로 하여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에도 주님의 사랑과 구원이 함께 임해주셨으면 하는 기원뿐입니다. 저는 그분들의 희생과 고통을 통하여 오늘 새 영혼의 생명을 얻어 가지만, 아이의 가족들은 아직도 무서운 슬픔과 고통 속에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이나 저 세상으로 가서나 그분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아이의 영혼을 저와 함께 주님의 나라로 인도해주시고 살아남아 고통받는 그 가족 분들의 슬픔을 사랑으로 덜어주고 위로해주십사고······."
아이의 실종 후 받은 충격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찾기위해 강제적으로 자신을 일으킨 엄마, 아이의 시신 발견 후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자신을 일으킨 엄마, 범인이 잡힌 후 분노와 복수심으로 자신을 일으킨 엄마, 용서를 위해 꺼져가는 마음의 불을 붙인 엄마. 그런 엄마를 일으켜 세운 것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신앙인 김 집사였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은 신앙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신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했고 결국은 크나큰 슬픔 만을 안기고 말았다. 이런 부분은 신앙의 양면성을 드러냈다고 생각된다.
필자의 부친은 초,중,고를 신부가 되기 위한 길을 걸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교육환경 및 생활환경 탓일까, 당신의 사고는 거의 신앙과 연결되어있고, 현실을 셩경이라는 이상 속에 맞추려 하시는 경향이 강하다. 현실과 이상을 너무 가깝게 여기고 있다. 바로 이런 것이 신앙의 양면성이다. 이 소설에서는 이런 부분이 신랄하게 묘사되고있다. 현실의 고통 아픔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엄마와 그런 그녀에게 끝까지 신앙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변화를 강요하는 김 집사, 이 둘의 대화를 읽고 있자면 신앙의 길이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있지는 않을까, 적당한 절충안이 없는 맹목적인 신앙은 되레 우리에게 잘못된 길을 제시하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끝에는 소위 말하는 개독교(천주교도 개신교도 기독교에 속하기에 이 말은 천주교인인 필자에게도 큰 정신적 데미지를 주는 말이지만 사용하겠다.)였다. 물론 흔한 일이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일이기에 뉴스에 나오고 욕을 먹는 것이지만, 사실 종교인들 중에, 신앙인들 중에 목적을 잃고 이리저리 막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 결과는 어떻든 나오는 말은 이렇다.
"주님의 뜻입니다."
개독교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신앙으로써 나설 자리가 아님에도 나섰고, 상대에의 특수한 환경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교리에 맹신하여 상대의 기분을 고려치 않고 신앙을 강요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본 책은 독자의 기분을 씁쓸하게 만들면서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런 사회참여적인 문학! 필자는 정말로 좋아하는 모습이고, 그러해서 본 작품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게 되었다.
이런 좋은 내용의 책에 삽화가 들어가있었다. 원체 분량이 짧은 책인지라 삽화를 늘리고, 페이지당 글줄 수를 줄여 책의 볼륨을 만들어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정말 최악의 조합이라 생각된다. 그저 책값을 부풀리기 위한 술수라고 생각된다. 물론 삽화가 쌩뚱맞거나 그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필자는 소설을 읽고 싶었던 것이지 그림책을 읽고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림책은 그림이 매번 다르기라도 하지, 본 책은 대여섯 가지의 삽화를 요리조리 편집해서 넓게 분포한 것 같았다.
그와 더불어 종이의 질도 조금은 쓸데 없이 좋게 만든 것 같다. 대충 100g정도 할 것 같은 종이에 페이지에 텅비어있는 레이아웃을 숨기고자 백그라운드까지 깔아 인쇄비와 제작비를 올렸다. 차라리 글줄 수를 늘려 페이지 자체를 줄이고 공허해보이는 여백을 줄여서 쓸데없는 인쇄비용을 낮추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책은 요즘 트렌드인 에코디자인에서도 한참이나 벗어난 편집디자인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삽화의 불투명도를 낮춰 백에다 살짝 깔고 그 위에 글을 채워 페이지도 줄이고 잉크의 사용량도 줄이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게 했다면 책의 원가역시 60%정도로 줄어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 책의 내용은 지극히 현실참여적이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주는 대단히 좋은, 위대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편집이나 디자인은 수준이 너무 떨어진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문학계가 약세를 이룬다고 값을 올리는 갖가지 방법을 구사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게 낫지 않을까? 포장지 값이 전체 생산비의 50%나 되는 그런 휘황찬란한 사치의 시대는 10년 전에 끝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