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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 자기 몫을 되찾고 싶은 여성들을 위한 야망 에세이
김진아 지음 / 바다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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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물론 이들이라고 해서 바보는 아니며, ‘뭔가가 잘못됐다‘는사고와 행태에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
느낌 정도는 갖고 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는 사회에 대해 그런 의심을 품는 행위는 자칫 그 자신을 바보라고 인정하는셈이 될 수도 있기에, 이들은 그런 생각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다. 고로, 음흉함은 그들의 제2의 천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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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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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진희와 함께할 때면 미주의 마음에는 그런 식의 안도가 천천히 과거나갔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그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미주의 행복은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그녀가 그 말을 할 때, 그래서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문제라는 것인지, 삶의 조건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는 것인지 말이다.
하민은 종종 그 말을 했다. 나는 살다‘라는 동사에 ‘열심히 라는 부사가 붙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hard‘는 보통 부정적인 느낌으로 쓰이는 말 아닌가. hardworking‘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는 게 일하는 건 아니니까. 나는 하민이 어떤 맥락에서 그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자기를 몰아붙이듯이 살았다는 것인지, 별다른 재미 없이 살았다는 것인지, 열심히 산다는 게 그녀에겐 올바르다는 가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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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라니, 지금의 이경은 생각한다. 배려라니. 그 거짓말은 수이를위한 것도,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남고 싶은 욕심이고 위선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이경은 몰랐다수이는 그런 식의 싸구려 거짓을 받아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사실도이경은 그때 수이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한다.
- P52

손가락 하나 잡지 않고도, 조금도 스치지 않고도 수이 옆에 다가서면 돌이 반응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수이의 손을 잡았을 때,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창고 구석에서 수이를 처음 안으면서 이경은 자신이 뼈와 살과 피부를 가진 존재라는 것에 감사했고, 언젠가 죽을 때가 되면기억에 남는 건 이런 일들밖에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둘이 함께한 첫해의 여름은 그렇게 흘렀다. - P13


나는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모래를 사랑했고, 운이 좋게도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았다.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 P181

 내 마음속, 그 모든 확신이 적힌 카드들을 들춰 보면서 나는 그 카드의 뒷면에 쓰인 말들을 읽었다. 나는 다그치는사람,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 오해하고 단죄하는 사람, 자신이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는 사람, 누구보다도 모래에게 마음을 기댔던 사이 모든 사실을 부정했던 사람…..…셋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마른 몸으로 울던 모래를 떠올렸다. 그날 모래의 말과 눈물이 나약함이 아니라 용기에서 나왔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깨닫게 됐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그 고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할 권리가 없다는 것도.

 피치 못할 선택을한 사람들에게 자신들 삶의 모순을 또박또박 말하는 건 잔인한 짓이될 테니. 그 시간들을 거치지 않은 인간으로서 그런 비판을 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알았다. 나는 고의로 그 말을 했다. 너처럼 부족함 없이 자란 이내 말에 모래는 고개를 돌렸다. 그 말이 모래를 어떻게 아프게 할지 모래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모래도 알고 있지 않나, 공무의 형이 공무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공무를 향한 그의 학대를 용인해준 아버지가 어떤 인간인지도, 그걸 알면서도 모래가 공무의 감정보다도 공무 아버지의 감정을 먼저 살피는 것 같아 나는 불편해졌다.
"그 사람 감정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
모래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나를 달래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 지금 가장 괴로운 사람들이아."
나는 모래의 그 순진한 태도에 화가 났다. 어떻게 나에게 그 사람들을 이해하라고 강요할 수 있지. 어떻게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수 있지.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니. 너무 나쁜 사람들을 너무 나쁘다고하지 그럼 뭐라고 얘기해?"
"난…..…" 모래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난 단지 공무가 걱정될뿐이야. 크게 상처받은 것처럼 보였어, 아까 공무, 그 사람들을 비난하는 만큼 공무가 덜 아프다면 나도 그렇게 비난할 거야. 그런데 그건아니잖아."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어린 나는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더 착한 아이가 되면, 훌륭한 아이가 되어 민폐 그 자체인 내 존재에 대한 빚을 갚을 수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부모를 이해하려고노력하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부모가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나를 그저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다고 인정하는 것보다는이라도 알아낼 수 있다면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가짜 이유라도 만들어서 믿고 싶었다.
공무의 글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습관이자 관성이 되어 계속 작동하는 것 아닐까.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사랑을 하면서 이경은 많은 일들을 사랑에 빠진 사람의 입장에서이해할 수 있었다. 수이의 단단한 사랑을 받고 나니 그렇게 두려워하던 사람들의 시선과 자신에 대한 판단이 예전만큼 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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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무시당하면 안 된다‘ 라는 명제는 한국 남성의 집단적 히스테리가 응축된 지점이 아닐까? 실은 당신들이 더 큰권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해도 남성들은 요지부동이다. 감히 말하건대 "보편이 되기 위해 동일시할 수 있는 대상도 없었고, 여성을 타자화함으로써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자원도 없는 식민지 남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 P31

고백은 용기와 솔직함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권장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주로 고백하는 남성을 기준으로, 지극히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조성되었다. 사실상 젠더 권력과 위계에 의한 권력을 동시에 가진 남성들에게 고백은 여성을 다루는수단에 가깝다.
남성 본인의 의도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이런 형태의 고백은거절하기 까다로운 상황을 만들어 여성을 궁지로 몰아간다. 남성이 고백해서 얻는 최악의 결과는 거절뿐이지만, 여성은 날벼락 같은 고백을 거절할 경우 예상되는 불편과 불이익을 고민해야 한다. 얼마나 불공평한가? 갑의 위치에 있는 남성들은 함부로 고백해도 괜찮은 상황을 한껏 이용한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와 같은 말이 어떤 경우에는 세상 모든 욕설보다끔찍할 수 있다. - P26

하고 의식 있는 사람이 언제까지 ‘나는 불쌍한 사람이다‘라고
‘자기 연민을 드러내는 일은 일종의 ‘도취‘다. 객관적 위치를망각하게 만들고,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면죄부를 부여한다.
동시에 주변으로부터 과도한 인정을 원한다.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 손해 보고 희생하고 있음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이 이들이자기 연민을 드러내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에 공감해 주지 못하면 가족이든 애인이든 부하 직원이든 괴롭힌다.
그 억울함‘ 중 가장 인정받고 심지어 조장되기까지 하는 것은 연애 혹은 결혼 못 한 남자들의 자기 연민이다. 사회적으로도 그들을 제일 불쌍한 사람 취급한다. 아침 라디오 방송 디제이를 맡은 김제동 씨는 아직도 ‘못생기고 연애 못 해서 불쌍한 나라는 콘셉트로 웃기려 한다. 동년배 싱글 여성 예능인이그런 콘셉트를 잡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김제동 씨처럼 똑똑외치고 다닐 것인지 의문이다.
- P78

‘정상‘이자 ‘보편‘의 위치에서 사회를 규정하고 약자에 대해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던 이들이,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그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 ‘끌어내림‘을 당한 이들은 "표현의 자유가없다" "무섭다" 등등의 말로 억울함을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그들의 작품을 통해 ‘보편의 위치에 서서 대리 만족하던 독자내지 소비자들은 그들의 충실한 지원군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도구화하지 않고서는 힘을 얻지 못하는 언어라면, 그 언어의 토대란 얼마나 빈곤한 것인가?
대중을 상대로 언어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내가 쓰고싶어서‘ 혹은 ‘그게 가장 적확하다고 느껴져‘ 혐오를 담은 발화를 한다? 고민 안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P142

폭력적인 장면이나 처연한 분위기를 살리는 장면에서 여자를폭력의 제물로, 배경적 소재로 써 왔던 게 한국 문학 특유의 버릇이었던 것 같다.

문학 평론가 김명인 교수는 2018년 10월, 이외수 작가의단풍)에 대해 "어떤 금기를 위반하는 일이 새로운 윤리를 만드는 일이 될 때 문학의 금기 위반은 정당화될 수 있다. 반면에어떤 금기는 그것을 위반하는 일이 오히려 낡고 타락한 기성의윤리를 옹호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라고 진단했다. - P188

평소에는 시가와 비교적 사이가 좋거나, 아니면 시어머니로부터 육아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왜 명절에만 문제가 생기느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명절은 단순히 부부와남자 부모 간의 문제가 아니다. 명절 행사는 곳곳에 퍼져 살던남성 혈족들이 각자 핵가족 형태의 정상 가족을 이끌고 모여드는 식으로 이뤄진다. 개인 간의 계약이나 룰이 개입되지 못하고, 서열화된 관습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이 관습을 수호하는사람들은 대체로 질서를 바꿀 생각을 못 한다. 혈연 이외에는공통점 없는 사람들이 모여 그저 눈치만 보다 보니 하던 대로‘
하게 되고, 시대에도 안 맞는 가부장제 축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 P207

한 예로 지난 2017년 8월, SNS에 샤넬 백을 올린 한 작가의 글을 보고 "된장스러운 호들갑에 똥 밟았다" 라며 비아냥대다 거센 비판을 받은 중년 남성 논객이 있었다. 그를 비판하는사람들은 그가 올린 사진 속 산악자전거가 대체 얼마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자전거, 낚시, 오토바이, 게임 아이템 등 온갖 것에 돈을 쓰는 사람들이 왜 샤넬에는 질색할까? 남성들의 스타벅스 혐오는 더 황당하다. 2019년 6월 기준 전국 스타벅스 매장 수는 1,300개에 이른다. 스타벅스 매장이 이렇게 많아졌음에도 여전히 스타벅스를 가는 이유가 허영심 때문이라며, 일종의 사치재로 취급한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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