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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평점 :
데키우스가 이제서야 다 본 것이냐는 듯한 표정을 하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졸라 재밌지?"
이렇게 짜임새 있고 탄탄한 책이라니. 평범하다면 평범할 일상 속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기쁨과 희망. 이 책은 이를 다 담고 있다.
평범함 속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이야기들과 이를 수집하는 청소 도우미의 이야기다.
자신을 그냥 청소 도우미일 뿐으로 취급하는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 재니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여동생과도 멀리 살고, 남편은 한없이 무능력하고, 자식과는 서먹하다. 이러한 우울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이야기 수집이라는 은밀한 취미를 갖는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편의 책처럼 저장해서 기억한다.
매일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B 부인을 만나고 '베키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일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청소를 아주 잘했어'로 정리되지 않을 그녀의 여정을 함께 해 나간다.
청소하러 가는 집 사람들과의 각별한 우정, 특히 B 부인과 재니스의 유대감, 지리 선생님을 닮은 버스 운전사와의 새로운 시작, 여동생과 아들과 개선되는 관계, B 부인이 들려주는 베키 이야기, 사랑스러운 반려견까지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왜 이 책을 그토록 예찬했는지 읽는 내내 공감했다.
재니스는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죄책감으로 평소 자신감 없고 소심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얄미운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한마디씩 쏘아주고 농담을 받아치는 모습을 보면 당당하고 활기찬 면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픔을 극복해 나가며 점차 활달해지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절로 행복한 웃음이 난다.
외국 소설들은 번역체 때문에 읽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는데, 이 책은 정말 잘 읽힌다. 특히 '그래그래그래 부인', '아니아니지금안돼 남편'과 남편의 문자에서 틀린 맞춤법은 번역의 노련함이 느껴졌다.